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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석 / 연세대·의사학
이 책은 저자가 지난 수년 간 특별한 관심을 집중해 수행한 동아시아 의학사 연구의 성과를 모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 일본, 한국에서 서양의학이 수용된 과정을 비교하며 근대성과 의학의 관계를 캐묻고, 또 이들의 관계가 세 나라에서 다르게 나타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관련분야 자료와 연구를 광범위하게 섭렵해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낸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이 글이 단순히 주례사 서평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편집자가 요청한 '논쟁적 서평'이 되기 위해서 이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의 전체적 논지와 관련된 논의로 시작하겠다. 저자의 중요한 논지는 한국의학사를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에서의 민족주의는 두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一國 중심의 역사서술을 말하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 서술함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측면은 한말, 일제 아래의 역사를 제국주의의 억압에 대한 한민족의 저항이라는 구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제국주의 지배가 과정과 결과에서 한민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전제된다. 요즘 역사학계에서 논의되는 민족주의 극복은 바로 이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집착한 근대한국의학사 이해
그렇게 본다면 저자의 근대한국의학사 이해는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민족주의적’이다. 저자는 일본과 선교사들이 도입한 서양의학을 한민족의 몸에 대한 제국주의의 지배라는 관점에서 시종일관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것이 제국주의의 폐해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을 비롯한 19세기의 제국들이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성립되었고, 저자의 지적처럼 “민족주의적 쇼비니즘”(57쪽)에 물든 선교사들이 일제의 지배를 돕는 상태에서 식민지 조선의 역사서술이 민족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의료선교사들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에비슨이 “근대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공중위생과 사회의학이 떠맡았던 과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깊이 느끼지 못했다”(292쪽)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선교라는 종교적 동기에서 내한하고 정부조직의 바깥에서 활동한 일개 의료선교사에게 조선의 공중위생과 사회의학 건설을 이룩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국주의라는 말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를 지극히 선호하는데 때로는 그 말의 외연이 너무 넓어 무엇을 지칭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예컨대 저자는 “의학교를 병원의 관리 하에 두는 것”도 “의학적 오리엔탈리즘”으로 규정하고 있는데(288쪽) 의학교를 병원의 관리 하에 두는 것이 왜 오리엔탈리즘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의학교와 임상병원의 관계가 이와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당시(1880년대) 미국도 병원과 의학교의 관계는 다양했다. 의학교가 병원에 부속된 관계는 미국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유형이었는데 그것이 조선에서는 왜 오리엔탈리즘으로 규정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반대로 일본의 후원으로 지석영이 설립을 주도한 의학교는 병원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이는 오리엔탈리즘적 관계가 아닌지도 의문이다. 사실 저자는 지나치게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에 집착해 그 틀에 의해서만 근대한국의학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한편 이 책에는 사실과 다른 진술이나 학문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저자는 “도가주의를 국가의 공식적 교리로 삼은 한나라”(73쪽)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한제국이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채택했다는 학계의 일반적 견해와 어긋나며 더구나 국가의 소멸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도가사상을 한제국과 같은 거대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채택했다는 진술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고증학에 대한 저자의 개념도 납득하기 어렵다. 저자는 “그것[전통의학]을 중국철학에 구속시켜 이해하려는 고증학적 태도”라거나 “중국 고대 철학의 언어로 한의학을 설명하려는 고증학적 입장”(36쪽)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이는 고전에 대한 실증적이고 엄밀한 문헌학적 연구 학풍이나 방법을 고증학이라고 보는 일반적인 정의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이해다. 또 저자는 '漢書藝文志'에 열거된 7개의 의경을 모두 독자적인 의학파와 동일시하고 있는데(74쪽 주26) 이 각 의경을 추종하는 의학파가 모두 존재했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일부에서 말하는 황제내경학파도 현재로서는 가설에 불과하다.
전통의학에 대한 진술, 동의하기 어려워
우리나라 전통의학에 대한 저자의 진술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저자는 한국의 전통의학이 “'황제내경'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다(37쪽)고 진단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의학은 후기로 갈수록 복잡하고 두꺼운 이론적 의서를 기피하고 이용하기 간편한 실용의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론적이기만 하고 실용적 가치는 별로 없는 '황제내경'은 널리 읽히는 책이 아니었고, 따라서 드물게만 출판됐다.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출판된 '황제내경'은 낙질 한두 권에 천만 원을 호가할 정도의 희귀본이다. 반면 조선시대의 대표적 실용의서인 '제중신편'은 인사동에서 십만 원 정도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또 저자는 “서양의학사는 동아시아의학사와는 달리 정통의학 대 대체의학 사이의 대립의 역사”(318쪽)였다고 규정하고 코스 섬에 기반을 둔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아테네의 주류의학에 대한 대체의학이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아테네는 의학의 중심지가 아니었으며 아테네에서 통용되던 의학은 중요한 의학파들이 근거를 둔 이오니아나 시칠리아의 의학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상에서 몇 가지 문제가 되는 진술들을 살펴봤지만 이외에도 보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한 부정확한 진술들이 적지 않다. 참신하고 중요한 문제제기를 통해 한국의학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부분적으로 부정확한 진술들로 인해 책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적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필자는 연세대에서 '단세포 군항체를 이용한 이질아메바 항원의 분석'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중원에서의 초기의학교육(1885-1908)', '조선 개항이후 韓醫의 動態', '한국근대의학 도입사의 쟁점' 등의 논문이,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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