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과 고난...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당 카페 출입을 막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오직 혼자만 식당 카페만 이용이 가능하고 또 누가 만나자고 하면 부담을 느끼게 하고...
아무리 효능이 좋고 예방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없는 백신이라 하더라도 백신을 맞고 안맞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며 선택이다. 그런데 백신패스는 이 백신의 목적이 예방이 아니라 통제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고 또 사실상 강제접종이다.
더구나 이 백신은 부작용으로 2000여명이나 죽어나갔고 (이것도 빙산의 일각. 신고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얼마나 많을련지 모름)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갖고나 심각한 휴우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그 누구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료비는 고스란히 본인과 본인 가족의 몫이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노바백스도 자신이 없는지 면책권을 요구해서 각국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받아냈기 때문에 제약사에게 책임지라고 할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불량살인백신을 강제로 맞추기 위하여 미접종자 또는 부스터샷 거부자들을 압박하려고 백신패스까지 도입했던 것은 위헌이고 인권탄압 인권유린 인권말살 자유억압 역차별이다.
그 부당한 대우와 부당한 역차별을 받으면서까지 만 18세 이상의 인구 3~4프로가 백신을 단 한번도 맞지 않았다.
(백신을 맞은 96~97프로중에서 백신 맞기 싫은데 백신패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맞은 경우도 다수일 것이다. 난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대들은 스스로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 개돼지처럼 순응했는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 그대들이 저항했으면 백신패스라는 제도 자체가 도입이 안되었을수도 있고 백신패스가 도입되었더라도 금방 없어지게 할수도 있었을텐데...)
어찌되었던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백신을 맞고 안맞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인데 백신패스 제도로 개인의 신체결정권을 박탈했던 것이다.
백신를 맞지 않은 것은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만 18세 이상의 성인 3~4프로 백신을 맞지 않았는데 백신을 맞지 않은 이유는 가지각색일 것이다.
“신앙적인 이유로” “위험해보여서” “신뢰성과 안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잘못되도 그 누가 책임을지지 않아서” “부작용 염려 때문에 ”
본인은 이 다섯가지가 모두 다 해당된다.
그중에서 신앙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내가 알고 있기에는 이 백신들 속의 성분에 “낙태아의 세포주” 가 들어있다고 알고 있다. “낙태”는 엄연한 살인행위이고 “낙태”는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다.
따라서 “낙태아의 세포주”가 들어있다는 것 자체가 이 백신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이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백신이 부족하게 된다면 많은 낙태가 자행될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만 자행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의 양심”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이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낙태”를 찬성 또는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낙태는 살인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입니다” 라고 외칠지라도 백신을 맞은 그리스도인들은 “낙태아의 세포주”가 들어 있는 그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그 낙태죄에 참예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지금이라도 이 가증한 백신을 맞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환난과 고난이 다가오더라고 이 가증한 백신을 맞지 않기를 소망한다.
신앙적인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데 “백신패스”로 생활의 제약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패스” 제도라 시행되는 내내 “고난”을 겪은 것이다.
백신 맞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 하고 백신을 맞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어떠한 고난과 환난이 다가오더라도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님 한분 만 바라보면서 저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굳건하게 이겨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