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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육체구원
- 携 擧 편 -
携擧는 말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란을 받은 후 구름 속으로 끌려 올리어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휴거는 해석에 따라 믿음이 흔들리고(動心) 더 나아가 패가망신도 당하는 예가 비일비재 하였다. 그 원인은 전반 時期論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휴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휴거를 받을 수 있는가가 중점이거늘, 그 시기가 환란전이냐 후냐 만을 가지고 치열한 쟁론을 하며 무수한 세월을 삭히고 있을 뿐, 정작 휴거비결에 대한 해답에 있어서는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聖句 的 해답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실로 사단마귀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이제 보다 더 바르고 밝은 휴거론을 위하여 언로를 따라 내려가 보자.
소개할 내용은
시기 = 환란전인가 환란 후인가.
방법 = 무슨 힘으로부터 공중으로 뜨는 것인가.
장소 = 山인가 敎會堂인가 가정(집)인가.
대상(비결) = 어떤 자들 즉, 무엇을 해야 휴거를 맞을 수 있나.
하는 것들을 다뤄 나갈 것이다.
[휴거의 개념]
휴거는 한민족이 이 세상에서 다른 한 세상으로 대 이동을 뜻함.
공중으로 휴거된 자들은 주님을 영접하여 그곳에서 다소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推定 되며 그동안 이 지구상은 많은 환경변화와 정화가 돼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곧이어 휴거자들은 신부로 단장된 후 천상으로부터 지상에 안착되어 주님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권을 누리며 신혼의 단꿈으로 들어갈 것이다.
[휴거의 단초]
계시록에는,
지상에서 천국까지의 그림이 섬세히 그려져 있으나,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그리스도인들의 최대관심사요 하나님의 위대한 성업이신 이 휴거가 누락되어 보인다. 그러나 계시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면 휴거가 빙산의 일각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것을 만질 수가 있었을 것이다.
휴거야말로 神書(聖書)의 오묘함을 맛볼 수 있는 최상의 진수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記者와 年代와 立場이 서로 다른 가운데서 기록된 이 바이블이속의 휴거는, 목수의 먹줄처럼 일직선으로, 그리고 실에 뀐 진주처럼 줄줄이 딸려 나오는 광경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휴거를 [신비한 계획(비밀)]이라고 하심.
<계10:7개역>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10:7공동>
이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터인데 그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해 주신 대로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완성될 것이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
여기<계10:7>에서 주의할 점은, 많은 이들이 관주(이)를 따라 아모스로 가보지만, 아모스는 일곱째나팔에 대한 휴거를 다루질 않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흐름이 끊기고 결국 미로에 빠져 휴거 줄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일곱째나팔이라는 단어와 이와 함께 연결돼있는 비밀이라는 단어를 한데 묶어 꼬~옥 잡고 진리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야 할 것이다.
이제 일곱째나팔과 비밀이라는 단어 줄을 꼭 잡고 따라 내려가서 그 심오하고 비밀한 진리를 들어보자.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 <고전15:51>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하여 불사의 옷을 입을 것이다. 이 얼마나 심오한 사건인가!! 이<고전15:51>에서 마지막 나팔과 산자가 홀연히 변화하고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것이 바로<계10:7>에서 말씀하신 일곱째 나팔이요 이것이 신비로운 비밀한 계획의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본줄기를 약간 비켜서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보겠다.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암3:7>
그렇다.
어찌 이런 대 사건(성업)인 휴거를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시지 않고 시행하시겠는가. 아모스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구약에다가 휴거의 그림자를 미리 크고 뚜렷하게 비춰주셨다.
그러면 먼저 구약의 대 선지자의 그림을 보고 가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그래야만 그 어려운 휴거의 비밀을 안전하고 쉽게 푸는 지름길이다.
[휴거의 모형]
구약의 출애굽사건은 휴거의 모형임
많은 믿는 이들이 출애굽 사건을 두고 말하기를, “이는 세상의 不信者가 교회에 입교하는 것을 나타내는 예표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것은 기성교단들이 우리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모형이다.”라고 그렇게 말들을 하고 있으나 이는 바른 해답이 될 수가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구약의 휴거 맛보기
애굽이라는 단어는 검은 땅 이라는 뜻이며, 이는 어둠의 죄악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출(탈)애굽은 한민족이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대이동을 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휴거의 예표였다.
출애굽사건의 본문은 방대함으로 옮기지 못함이니 이점을 감안하기 바라며 또 출애굽사건과 휴거와의 비교를 상세히 기록치 못하는 필자의 실력을 아쉬워하며 있는 만큼만 보기로 하겠다.
구약의 모형과 신약의 실제간 대비 표
*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이끌어냈다. => 이는 말세에
있을 계시록에 기록된 두증인의 예표이다.
* 애굽땅에서의 재앙들은 => 계시록에도 기록되어있다.
* 히브리인들은 고센땅에서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처럼 =>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이 시험 당할 때 면제를 받았다.
* 밤에 집안에서 어린양을 먹는 것은 => 어린양이신주님도 만찬을 저녁에 하셨
으며, 만찬(살과 피)은 주님의 몸과 같이 변화 될 예표다.
* 밤에 애굽을 떠나는 것은 => 휴거 될 때에는 해와 달이 총담과 같이 어두워
짐을 말함.
* 장정만 60만명 정도와 그 외의 많은 유형(?)들이 포함된 출애굽은 => 휴거되는
수와 여러 유형의 부류들(구약시대의 율법주의자들)이 휴거될 것이다.
(여기서 반론이 제기될 것이냐 이는 따로 변론을 하기로 함)
*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들고 나가는 것은 => 이는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부활하여 산자와 같이 이 땅을 떠나는 예표이다.
* 애굽을 떠나 에담에 장막을 치니 구름기둥, 불기둥은 => 즉 우리가 휴거되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져 불(심판예표)이신 주님을 만나는 그림이다.
(구름=보좌)(불=하나님은 불이시니...)
먼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역으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우리는 미(不)신자세계에서 교회로 올 때 어린양을 먹고 입교했다는 말인가??
또한 예를 들어서, 장로교인이 여호와의증인으로 옮겨 갈 때 밤에 해골을 들고 갔다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다 어리석게도 속았던 것이다.
출애굽사건은 말세에 있을 휴거의 모형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의 선물이었다.
이제 다시 본줄기로 돌아와 계속해 나가려면, 위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일곱째나팔이라는 단어와 이와 함께 묶인 비밀이라는 단어를 꼬~옥 잡고 진리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야 할 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이어 나가보자.
그러기 위해선 다시 휴거의 단초인<계10:7>으로 시작이 돼야할 것이다.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되면, 하나님의 신비스런 비밀의 현상(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 구체적 광경은 계시록에는 없고 그 광경은 자기의 종 곧 선지(예언)자 들에게 가야 볼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계시록에 기록된 나팔은 일곱 나팔 까지 있으며, 그 중에 여섯째 나팔까지는 재앙의 성격이강하나, 그러나 그 용어는 환란의 나팔이라고 하면 타당 하겠다. 그 이유는 나팔에 뒤이어[일곱 재앙의 대접]이라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이제 그 신비스런 비밀한 현상을 보기위해서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롬1:1>
사도바울은 베냐민처럼 도상에서 난산하여 모친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막내아들처럼 예수의 만삭동이 막내제자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난산하여 예수의 실물도 못 본채 하나님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나팔의 비밀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풀어 공개해 놓았다. 이는 실로 한 줄의 관주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일곱째 나팔 때에 신비스런 휴거의 비밀한 장면이 계시록에서는 제하여져 없고, 다만 그 종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 것이 성경의 매력이요 또한 알아서는 안 될자 들 곧 짐승들 때문에 답을 여기저기 흩으러 놓은 것을 볼 때에 이 또한 신서임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택한 자들을 위해 때를 따라 개봉하시는 주님의 경륜 앞에는 무릎이 절로 굽어진다. 그러므로 성경은 열린 비밀이다.
이제 휴거의 단초인<계10:7>에다가 연이어<고전15:51>을 대비시켜 놓고 보면 문장문맥의 올바름과 또한 휴거의 비밀한 실체가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 <계10:7>
▲위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은
▼아래 바울이 말하는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 <고전15:51>
지금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나팔과 위 사도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한 일곱째 나팔과는 동일한 나팔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요, 여기서 나팔과 비밀이라는 단어가 동일하게 대두되었기에 문장문맥의 연관은 보다시피 자연스러운 가운데 아무하자가 없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보여준 본문에 나오는 변화는, 눈 깜빡하는 순간에 변화 된다는 말씀이며 변화 체의 신비한 비밀은 어는 소설 속에서도 찾아볼 수없는 기이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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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전 휴거론 자들에게 필자가 묻기를, “님들은 휴거 될 때에 그 몸 그대로 휴거 됩니까?” 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고전15:51>이곳을 대주며 자기들도 불가불 변화 되어 휴거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는 단적으로 그들도 마지막 나팔이 불기 전까지는 휴거가 안 된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시인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단에 빠지면 어학수준이 떨어져 쉬운 문맥도 바로 못 보며, 그것을 바로 잡아 줄라치면 본문을 정면부인 내지 비틀어 버리며 종당은 그 심각한 宗敎病을 들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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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거 시 기]
휴거의 시기는 환란 후에 있음.(시기론)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 <살전4:15>
휴거의 시기는 주의 [강림]하실 때이며, 이때 그 누구도 부활 전에는 [결단코] 아무도 먼저 휴거가 절대로 없다는 성령의 말씀인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라고 하신 이 말씀 속에서, [우리]라는 단어에는 바울도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란 전에 휴거 된다는 자들은 바울보다 도 더 신령한 자들이라는 말밖에 안 되는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나팔]이 나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일곱 나팔은 환란을 의미하며, 일곱 대접은 재앙을 의미하는 것을 꼭 유념하고 휴거를 다뤄야 할 것이다.
환란과 재앙을 분별하자. 그래야 혼돈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자들은 환란 전 휴거는 이방교회 중에 이긴 자로 말하며, 환란 후 휴거는 본방 유대인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로 보아 이들을 이방인이라고 해야 타당하며 이들 데살로니가 사람들 즉 이방인들도 나팔이 불기 전에는 결단코 휴거가 없는 것을 보아 유대인의 휴거는 환란 후 마지막 때라고 운운 하는 것은 비 성서적임이 들어나는 것이다.
몸이 변화된 자(산자)들은 죽었다가 부활된 자와 [함께]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다.
[결단코]이방인이나 본방유대인이나 間에, 마지막나팔이 울려야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 변화된 자들과 다 같이 함께 올려가는 것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대 종 예수님을 만나보자.
+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 <행4:30>
하나님본체의 동등 됨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대종 예수도 휴거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휴거의 시기는 환란 후에 있다고 예수께서 친히 못 박아 말씀하심.
명심해야할 대목이다. (마태복음24의 본문은 필요부분 중간 삽입)
지금부터 주 예수께서 그려주시는 휴거의 명화를 보기로 하자.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21>
창세 이후 전무후무한 환란이 있다는 주님의 생생한 육성이시다.
환란 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 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이 환란은 말세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알곡과 쭉정이를 가(거)르는 자동여과기에 해당하다고 봄이 합당할 것이다. (여기서 같은 알곡이라도 각자의 행위가 다르니 상급(보상)은 또 다를 것이다)
+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2>
휴거가 환란의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예상보다 다소 앞당겨 휴거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요 기쁜 소식이시다. 여기에 택하신 자들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아야할 것이다. (택한 자들에 대하여는 별도 취급함)
+29 그 날 [환란 후에].즉시..... (이하는 아래로)..... 예수께서 친히 전무후무한 [환란 후에] 휴거가 시작된다고 말씀하심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데도 한번 오각 된 휴거 론은 주님이 고쳐준대도 못 고치는 종교병인 것이다.
29연결....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9>
이는 천재지변으로써 온 세상이 총담 같은 어둠속으로 묻히는 것을 모든 만물들도 볼 것이며, 이때 이동물체는 거의 동작을 멈춘 상태일 것이다.
항간의 소문에는 이때 버스기사가 휴거 되어 충돌로 혼란 등등 운운하나 이는 낭설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는 미물도 천지개벽을 감지하는 법이기 때문에 버스는 이미 휴거 전에 정차되어 있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실로 어두운 밤이며 이때부터 휴거는 시작 될 것이다.
+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 이니라 + <출12:42>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두운 밤에 탈애굽한 것처럼 우리도 캄캄한 밤에 인도를 받아 이 땅을 떠날 것이다. 행여 그 시각이 낮이라면 해를 가려서라도 캄캄케 하실 것이다.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의식은, 이웃(가까운 같은 교우)가족과 함께 집에서 밤에 집도해야 한다. 예수님도 성전을 피하여 밤에 다락[방]에서 약 두 가정 정도의 조촐한 숫자와 유월절을 보내셨다. 여호와의 밤을 상기하시기 바라마지 않는다.
유월절을 무식하나마 비유로 이해를 하자면(이해를 바람), 한국 사람들이 멍멍이 한 마리 잡아놓고 그날 한날에 해치우는 숫자 정도가 약 12명~15명 정도^^ (그렇게 우리도 양 한 마리를 충분히 흡족히 각자가 충당해야함)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가정(집)교회의 모형인 것이다.
교인들은 식구의 개념을 강하게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형교회는 식구의식은 고사하고 서로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형국이다.
또 다른 휴거의 모형인 방주는, 사람들이라고는 식구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당신도 제사장이기 때문에 만찬을 자기 집에서 집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찌니라+
<벧전2:5> 참조=><벧전2:9>
출애굽 당시 밤에 양을 먹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생명으로 대치되어 주님의 영광된 몸과 같이 신령체로 변화될 실제를 말씀해주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구약의 출애굽 장면을 일일이 옳길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이제 주님이 이르신 휴거의 내용을 요약하면,
<마태복음>
24:21 창세 이 후 전무후무한 환란이 있음.
24:22 택하신 자들의 육체를 구하기 위해 환란 날수를 줄임.
24:23 24:24 24:25 24:26절까지는 거짓 것들이 출현, 미혹.
24:27 예수께서 번개처럼 출현, 예시
24:28 주검과 독수리
24:29 해와 달이 어두워지며 별들이 떨어지고 권세가 흔들림.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때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마지막나팔)와 함께 천사들(복수)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휴거대상)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흩어진 자들)
또 다른 번역본을 참고해보자.
<표준새번역24:29>
<인자의 오심>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곧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성구다.=><인자의 오심>(< >은 소제목임)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인자께서 환란의 날이 지난 뒤에야 오신다고 해설이 아닌 본문은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택한 백성들의 휴거는 환란 후에 있다고 주 예수께서 친히 못 박아 말씀하셨음을 보고서도 환란 전 휴거론 자들은 이를 믿지 못할 것이다.
<행2:20,21>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 아멘, 주 예수여 환란 날에 나를 구원하소서 )))
[성도들의 환란]
출애굽에서 보여주는 환란과 재앙
애굽의 바로왕이 모세에게 받은 것은 재앙이나,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의 바로왕에게 받은 것은 환란이다.
모세가 애굽왕에게 내린 재앙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 재앙은 하나님의 노하심요 하나님의 심판이다. 반면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의 바로왕에게 받은 고초는 말세에 닦아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을 환란의 예표다.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가 고달퍼 형제의 사랑이 식어져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출2:13;14>
이는 곧 말세에 다시 있을 예표이며 이것을 주님은 다시 예언하셨다.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患難(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9~14>
또 출애굽 바로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돌 굽는 일로 바로왕에게 환란을 당하여 자기들의 형제 모세를 원망하는 일은 위에서 보신대로의 예표이며, 그리고 자기의 원수는 곧 같은 교인 같은 식구일 것이다.
+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0:21;22>
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 볼 대목은, 애굽의 바로왕이 출애굽직전에 벽돌을 굽는 역사를 묵상해 볼 대목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드날리려고 하는 짓거리다.
+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4>
이렇게 말세에는 두 종류의 건물을 짓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그 하나는 흙(육체)벽돌(규격=율법)로 높이 짓고 깃발을 하늘 꼭대기 까지 닿게 하여 그 깃발에 예수의 이름을 빼버리고 대신 사람의 이름을 날리는, 그야말로 무너져 없어질 바벨탑을 쌓는 자들 이 있는가 하는 그 반면에, 어떤 이들은 예수를 머릿돌(산에서 손으로 뜨이지 않은 돌 = 자연석<단2>)을 삼고 자기를 신령한 산돌로 드려져 거룩한 성전을 견고히 짓는 무리가 있는 것을 보아 알 것이다.
[환란을 주시는 결정적 요인]
14萬 4千의 數가 未達이므로....
<계6:9> 어린양의 다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언에 충실한 탓으로 순교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6:10 그들은 모두 큰소리로 주님을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 거룩하시고 진실하시며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시는 주님, 땅 위에 있는 자들이 저희들에게 행한 악한 일을 심판하시기를 왜 그렇게 더디 하십니까? 저희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복수를 언제나 해주시렵니까?"
6:11 그러자 그들에게 예복인 흰 두루마기가 한 벌씩 주어졌으며 이런 말이 그들에게 들여 왔습니다. "아직도 땅 위에 사는 너희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 순교를 당하여 너희들의 대열에 들어올 사람들이 있으니 그때까지 좀더 쉬며 기다리라."
6:12 어린양이 여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 나는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양은 검은 천처럼 시커멓게 변하고 달은 핏빛으로 붉어졌습니다.
6:13 그리고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마치 설익은 무화과 열매가 큰 바람에 흔들려 떨어질 때처럼 산산이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6:14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던 하늘은 두루마리를 말아서 걷어치운 것처럼 사라지고 산과 섬들이 다 흔들려 제자리에 놓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6:15 그러자 땅 위의 모든 왕과 세상의 지도자들, 부자와 군대의 고위장성들,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들, 노예와 자유인들이 모두 뒤범벅이 되어 동굴과 산의 바위 밑에 몸을 숨긴 채
6:16 산을 향하여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 우리를 가리워다오.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겨 다오.
6:17 하나님과 어린양의 큰 진노의 날이 왔구나. 그 진노에서 살아남을 자가 누구란 말인가?"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무슨 부언설명이 필요하랴!!
患難前 携擧論者들은 자기들이 먼저 휴거되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을 할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크나큰 착각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천년왕국에서 왕권을 행사하는 무리는, 환란전 휴거론자들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해 목베임을 당한 자들이 천년동안 왕노릇을 하는 것이다.
환란전 휴거사상은 한시라도 빨리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수단]
하늘 구름을 타고오심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땅의 족속들은 주님이 많은 성도와 천사들에 둘러싸여 권위와 권능으로 오심을 보고 압도당해 기절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중간생략.....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마26:64>
주님은 sky수중구름이 아닌 하늘의 하늘들(삼 층천구름?)에 있는 구름을 타고오시리라. (이만희씨가 이끄는 무료 神學院? 의 오류는 이런 비밀한 곳을 보지 못함으로 발생함.)
[휴거의 원리]
방법 = 무슨 힘으로부터 공중으로 뜨는 것인가.
사람이 공중으로 끌려올라가는 휴거의 힘은??.... 이는 성령의 힘이나 또는 나의 공로나 그 어떠한 자력의 힘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천사가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다.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여기서도 나팔이 나옴을 유념해 둬야 할 것이다.)
31절 말씀을 근거로 말하자면, 환란전에 휴거된다는 자들은 택한 백성이 아니라는 론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마지막 나팔과 함께 천사들로부터 받들리어 휴거되는 것이다. 이는 단 일(1)회 뿐이다.
[장소와 비율]
휴거의 장소와 휴거되는 비율(확률).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24:40,41>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눅17:43>
여기서[밭]과 [맷돌]과 [잠자리](침상)에서 라는 단어들이 나오는 것은, 이는 가정 즉 집안의 집기들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휴거가 될 것이다. 침상과 맷돌은 가정을 단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말세에 흰옷입고 산으로 올라간다던지 교회당이나 또는 신부나 목사나 교주들 앞에 가야 되는 줄로 착각하지 말며, 또 한곳 에서 몽땅 집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각 처에서 동시에 올라가나, 그러나 한 곳에서 단체로 들림 받는 것이 아니다.흩어져있는 나그네 같은 성도(택한 자)들을 천사가 모으는 것이다.
가정에서 휴거 되는 이유.
666짐승의 표를 피하기 위해서 자기 집으로 숨어들어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이는 즉 환란임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예표인 것이다. 지금 이북과 중국의 가정교회를 연상하시면 될 것이다. 그들은 낮에는 밭에서 태연히 일하고 밤에는 침상에서 잠을 자나 예배는 지하 가정에서 드린다고 한다.(들은 얘기임)
우리는 내일 종말이 온다해도 사과 나무심기를 포기 하지 않아야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다시 중국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을 성경은 말씀 하고 계신 것이다.
+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행8:1~3>
말세에도 정부가 아닌 바리새인들이 성도를 잡으려고 각 가정까지 뒤지고 다닐 것이다. 만약 정부에서 종교를 손대면 이제는 한국정부는 전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종교의 파워는 나라 하나 정도는 손쉽게 전복시킬 만큼 막강해졌다.
(예수님은 정부가 아닌 바리새인을 주의 하라고 하셨다<마23참조>)
재림도 몸의 변화처럼 순식간임.27+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번개가 치면 누구나 볼 수 있듯이 주님은 일순간에 나타나시어 萬人이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이므로 그렇게 나타나지 못하는 주제들은 거짓그리스도 거짓 보혜사 또는 거짓선지자들이다. 이제 그들의 미혹을 물리쳐야 한다.
현재 한국도 자칭 보혜사(예수)가 수 없이 많으며, 또 사기여호와왕국 사기신천지가 있음에 이를 주의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과학상식을 빌려 말하자면,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 몸의 變化나 또 마태가 말하는 주님의 강림이 번개처럼 찰나의 순간일 터인데 왜 휴거는 [밭]에서 또는 [맷돌]에서 그리고 밤에 [자다가] 들려 올려가는 것일까, 번개는 일순간인데 휴거는 왜[밤][낮=밭] 하루 1일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ㅡ[밭]=(낮)직업. 직장 일은 즉 낮을 말함.
ㅡ[매를 갈다가]=(조석)이는 아침방아 또는 저녁방아를 말함.
ㅡ[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밤)쉼 피로를 품, 안식을 함.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은, 종이에 둥근 원을 그려놓고 원안에 열십자(수직수평)선을 그은 다음, 수직의 상에다 (낮)이라고 쓰고 그곳을 한국이라고 가정을 하면, 수직선 하단은 (밤)이 될 것이고 장소는 미국쯤 될 것이며, 원의 左와 右의 위치는 朝夕이 될 것이다.
성도들의 몸의 변화와 주님의 강림은 순간적이나, 휴거는 해도달도 총담같이 검어 캄캄한 가운데 모든 물체는 숨을 죽이고 멈춰있을 그때에 택함 받은 성도들은 천사들과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서서히 도도하게 오를 것으로 사료된다.
휴거는 남녀가 물론 구분 없이 올라갈 것이나. 그러나 신앙의 젖먹이는 사절이다.
본문에는 둘 중의 하나만 선택되었고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열중에 다섯만 혼인 잔치에 참여를 하여 휴거의 비율은 50:50 이며, 젖먹이는 시집을 못 가는 법이다.
휴거의 시기를 간추려 요약해보면,
▷사도요한은 =>신비스런 비밀이 [일곱째 나팔]에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사도바울도 => [마지막 나팔]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오라간다고 했고
▷예수께서도 => 창세 이후 전무후무한 [환란 후]에 들림을 받는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친히 시기를 알려 주셨고 그 직계제자들도 하나같이 휴거의 시기에 대하여는 구음이 하나일진데 그 누가 휴거의 시기를 오리가리 토막토막난도질을 쳤을까...... 그런 자들은 참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제자들과 휴거 론은 입을 맞추어 한목소리를 내야한다.
※ 우리는 여기서 환란전시기론에 대하여 되새김질을 해보자.
지혜는 고사하고 생각도 집어 치우고 단순하게 계산을 해보자는 것이다.
▷ 만약 휴거가 환란 전에 있다고 한다면,
환란 후 휴거론 자도들도 같이 휴거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을 위해 환란도 각오한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휴거가 환란 후에 있다면 그 환란 전 휴거론 자들은 참으로 황당할 노릇이요, 또한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음이다.
▷또 한 환란 전 휴거론 자들에게는 계시록이 무용지물 격이며,
▷[환란 전]이라는 시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한부 종말론이므로 내일도 휴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니, [환란 후]론 자들 보다는 믿음의 뿌리가 흔들려있는 것은 理論상(진리면)으로도 자명한 사실이다.
주님을 위하여 환란과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 휴거가 환란전에 있다면 환란후 휴거론자들이 왜 들림을 못 받을 수 있겠는가... 환란을 각오한 자가 주님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휴거의 대상과 비결]
종말에 이루어질 휴거의 시기에 있어서는 앞서 말씀드린바 대로 창세 이후로 전무후무한 대 환란 후에 있음을 말씀드렸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들림(휴거)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휴거는 천년왕국(천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 때문에 이 왕국 문 안으로 들어가려면 천국열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중요하고 비밀한 진리는 상상외로 쉽고 확실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 천국열쇠라는 것은 바로 예수이름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천국열쇠에 대하여 문맥이 같은 구절을 찾아 읽어보자.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그렇다. 주 예수의 이름, 이것이 바로 천국의 열쇠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든지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짖어 구하시라, 그러면 시행 하실 것이다.
예수라는 이 이름은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다.
성령도 예수이름으로 구하시면 받을 진대 또한 휴거도 예수이름을 부르짖는 자가 들림을 받는다고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해 주셨다.
휴거방법의 성경적 근거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중략........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救援(휴거)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2장>
본문의 구절중 구원이라는 단어는 휴거라는 단어와 동의어나 다름이 없다고 보는 것이 바른 정독 정해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救援(구원)이라는 단어는 무조건 죄 사함이라고만 인식되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행2;21>절에 나오는 구원을 휴거로 보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행2;21>절에 나오는 구원은 곧 휴거를 일러 말씀하신 것이다.
그 증거로는,
말세라는 말이 기록되어있고 또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라고 기록한 말씀은 곧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하여 주 재림 때에는 주님이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고 다시 십자가를 지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영광의 심판주로 오시어 죄 사함을 받은 의인들을 대 환란을 주는 666짐승으로부터 구원하러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구원은 휴거를 말씀함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아래 말씀을 다시 보시면 위의 말씀에 뒷받침이 되며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이 말씀은 종말을 이야기하시는 것으로서, 여기서도 같은 문자가 나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마24;29중>+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행2;20하>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일월성신이 변할 이쯤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救援(휴거)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2;21>
이와 같이 해와 달이 변화되는 시점으로부터 예수께서는 자신이 재림하는 기점이요, 우리는 휴거되는 시점이며, 들림 받는 수단으로는 천사들로 인함이며, 들림 받는 장소는 각자의 가정이며, 들림 받는 대상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말세에 구원은 휴거를 말함이며, 이는 주의 이름을 불러야 들림을 받는 것이다.
[구약의 예표들]
아래 기록된 구약의 두 사건은 휴거의 방법을 알려주시는 은밀한 예표였다.
- 야곱의 경우
구약으로 인하여 굳히기로 들어가기.
(독자께서는<창27>을 충분히 숙지하신 후 이 글에 임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림.)
27:1 이삭이 늙으니 그의 눈이 침침하므로 그가 볼 수 없더라. 그가 맏아들에서를 불러 그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니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이러게 시작되는 <창27>이야기의 요지는,
늙은 아버지 이삭이 자기가 죽기 전에 좋아하는 별미인 산양의 고기를 먹고 난후,
장자에게 축복을 빌어 자기의 유산을 맏아들에서에게 넘겨주려는 찰나에, 차자 야곱이 교묘히 장자의 유산을 가로채는 장면을 기술해놓은 것이다.
영적 수준이 낮은 자들 눈에는 이해 못할 사기극으로 비칠지 모르나 그러나 성도들에겐 이 스토리가 바로 내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도 차후에 하나님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에 이 야곱처럼 똑같은 준비물과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이에 한 치라도 틀리면 하나님아버지에게 유산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는 다는 예고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헤아려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창27>의 내용을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만 절취해가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 그가 말하기를 "보라, 이제 내가 늙어 나의 죽을 날을 모르노라. 그러므로 이제 바라노니 무기들, 즉 네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로 가서 내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가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혼이 너를 축복하게 하라." 하니<27:2~4>
이렇게 늙은 아버지 이삭이 장자를 위하여 유언을 하려는 찰나에 자기의 부인 리브가가 듣고, 이때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야곱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며 동시에 일을 꾸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담력이 적어 축복은 고사하고 발각이 무서워 주저주저하고 있을 그 즈음 그 어머니는 아들의 저주를 자기가 담보로 하고 일을 진행해 나간다.
야곱이 모친의 말대로 염소를 잡어다 그 모친 리브가에게 건네주니 그는 별미를 손수 장만하고 그 외의 준비물을 챙겨 야곱에게 들려주었다. 드디어 야곱은 떨리는 맘으로 아버지 앞에 섰다. 야곱의 이 모습은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아버지 앞에 야곱의 服裝과같이 차려입어야 하나님아버지부터 저주를 피하는 반면 약속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 리브카가 집에 자기와 함께 있는 그녀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들의 가죽으로 손과 목의 매끈한 곳에 붙이고 그녀가 마련한 그 별미와 빵을 그녀의 아들 야곱의 손에 주더라.
본문에서 맏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를 의미함이요, 의복은 성도들의 행실이며. 털가죽으로 매끈한 곳을 가리는 것은 곧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온전히 주님 안에 나를 철저히 숨기는 것이며(죄 사함) 손에든 음식은 주님의 생명을 예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별미에만 정신이 쏠려 이 귀중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마냥 밟고 지나가는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된 연유 중 하나가 바로, 삯군목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별미에 초점을 맞추어 놓고는 이를 부각시켜 별미를 미끼로 헌금을 강요함으로써 우매한 신자들의 눈을 가리는 데에 한몫을 하였던 것이었다.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진리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야곱이 상기와 같이 별미를 손에 바쳐 들고 형님의 복장을 갖춘 후, 자기 아버지 앞에 닦아 설 때에 그 두려움은 마치 하나님아버지 앞에 서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야곱은 이삭앞에 대령한 후 자기의 아버지를 불렀다.
+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하니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청하셨던 대로 행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일어나 앉으셔서 나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더라.<27;15~19>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 바로 차자 야곱이 장자 곧 맏아들에서의 이름을 도용한 사건이다.
이와 같이 앞으로 도래될 휴거 후 우리성도들이 하나님아버지 앞에 설 때에는 마치 야곱처럼, 우리의 맏형이신 예수의 이름을 들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휴거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져서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것을 다시 현실성 있게 말을 하자면, 하나님 앞에서는 첫 관문이 휴거이며, 이 휴거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스데반이 죽을 때 다음과 같이 소리를 내어 ((( 주~ 예수여......... ))) 라고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말의 경우
이제 다시 한 번 다말의 비유를 보며 이 메시지에 담긴 지혜롭고 비밀한 믿음을 소유코자한다.
다말은 결혼하여 남편이 죽었고, 이때 유대풍습의 전례대로 시아버지 유다는 시동생이장성하면 그를 주겠노라고 약조하였으나 어인일인지 이를 지내치자 다말은 창녀 복을 입고 시아버지에게 들어가 씨를 얻어 내었으나, 유다는 이 창녀가 자기 며느리 다말인줄은 눈치는 고사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므로
+ 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창38;24,25>
여기서 다말은 교회의 예표요, 시아버지 유다는 하나님아버지를 예표 한 것으로 보며, 죽은 남편은 율법을 두고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도 교회는 여자요 이 여자는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막 바로(직통) 자녀들을 산출해 내는 것이 다말의 경우와 매한가지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3>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를 위하여 자기의 다말과 같은 아내인 교회를 불로 심판하시기를 시작하실 것이다
+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서리오. + <벧전4;17,18>
+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 <약3;1>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롬14;10>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3;12~15>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12:29>
위에서 두 사건을 보았다만, 야곱은 아버지의 저주를 피하고 유산을 상속받기위해 맏형의 이름을 도용한 사실과, 지금 과부 다말이 아버지의 화형 즉 불 심판을 면하기 위해 그 아버지의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증표로 제시하여 화형을 면하는 것처럼 상기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심판자의 이름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말은 결론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굳세게 잡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불 심판을 면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다말의 경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닥칠 불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시는 또렷하고 확실한 한 폭의 彫刻畵였다.
이처럼 성부 성자 성신(령)의 이름이신 이 예수라는 단어의 성호는 심판뿐만 아니라 휴거도 되는 능력의 이름이요, 또한 그 이름에다가 모든 것을 약속해 놓으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계시록의 예언적 당부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2;13>
이 필자는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라고 하는 이 한마디의 말씀을 전하려고 지금껏 글을 써 내려오는 것이다. 다말이 깊숙이 간직한 도장은 아버지의 이름이요, 그 끈은 또 한편으로는 사랑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3;14>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지팡이는 나그네의 필수품이다. 지팡이에 대한 의미의 자료는 너무나 방대하므로 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다. 다만 한 가지 드릴말씀은, 지팡이는 능력과 권세를 예표하며, 제사장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부활을 의미함이니, 우리는 아론과 그리고 다윗처럼 왕 같은 제사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말의 결론도 야곱처럼 자기아버지의 저주를 형의이름으로 면하고, 축복의 기도로 부와 이스라엘의 원조의 영광을 안은 것처럼, 다말도 자기의 시아버지의 이름인 도장 때문에 불 심판을 면하고 이제는 유다(媤父)의 씨를 가졌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로 당당히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한 가지 사실은 다름이 아니라, 야곱은 아버지의 문전에서 저주와, 그리고 다말은 아버지의 불 심판 앞에서의 두렵고 떨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빌2;12>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마713,14>
계시록에 기록된 교회들에게 주신 메시지는 말세에 있을 일로써 우리에게 권면과 경고의 메시지이지만, 그중에 우리가 그냥 지나쳐 소홀하게 여기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주님의 이름이다.
+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3>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213>
안디바의 순교는 주의 이름을 굳게 잡고 있었기에 죽음을 당한 것이며 이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을 보여준 예표임을 잊지 말고 동시에 우리도 순교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救援(휴거)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2;21>
[우리들의 당면과제]
위 네 구절을 한데 묶어 알아듣기 쉽게 이르자면 아는 곧
((( 주~ 예수여~~~)))라고 부르며 이때 자기의 소원을 아뢰면 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이것이 주의 이름을 견디며 게으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이것이 주의 이름을 굳세게 잡았다는 증거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이것이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증거요 상급인 것이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그러면 누구든지 휴거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주의 이름으로 휴거되는 이유는,
말세에 666짐승이 나타나서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주님의 이름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때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때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이는 곧 자기 생명을 바쳐 믿음을 지킨 자로 간주되어 휴거가 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그러면 듣는 자가 믿음이 생겨 구원을 받는다고<롬10;13~18>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그러면 이 사람은 조00목사의 축복기도 백번 받은 것보다도 더 부요한 사람이다.
주의 이름을 날마다 소리 내어 부르자.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로써, 이는 大 富豪(대 부호)이기 때문이다.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富饒)하시도다 <롬10;12>
(부요 = 재물이 넉넉함)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富饒)하시도다 <롬10;12>
아멘, 할렐루야~~
휴거의 방법은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불러서 받는 것이며 이는 동일한 믿음으로써 주님이 베푸신 은혜다.
이와 같이 말세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휴거를 받지만, 이 주의이름 부름의 비밀을 모르거나 또는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여 어떤 다른 방도로 휴거 받는 방법를 들먹이려한다면, 이는 첫째 문자가 안 맞을뿐더러 문맥과 이치도 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부정한 휴거론]
휴거론이 바르지 않은 것들은 이치에 합당치 않으므로 언제나 모순점이 드러나게 마련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휴거의 시기가 환란전에 있다고 하며, 방법론에 가서는 생활가운데서 이기는 자들이 휴거된다고 강하게 선포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그 기준이 어느 선인가 하는 것이 문제점일 것이다.
이를 다시 알아듣게 말하자면, 모든 믿는 이들이 이기는 한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는 휴거에 충분할지 모르나 어떤 이는 이 기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여, 지상과 공중사이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처지로, 또 어떤 자는 지상에서 약 십 미터 또는 어떤 이는 지상에서 일 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는 꼴로 비칠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이론인가!!
이들의 크나큰 모순점은 주 예수이름의 능력보다는 자기들의 행위를 앞세우는 격이 라서 그야말로 매 집회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언제나 자기의 의를 항시 진열하는 집회가 되어버리는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물론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는 하나, 그러나 아무리 생활가운데서 이기는 능력이 크다 하여도 우리주님 능력의 이름보다 야 하겠다는 것인가를 유념하고 이기는 자를 운운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생활가운데서 이기는 자가 휴거된다는 말씀은 없는 것 같다. 이기는 자는 휴거 후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인 것이며, 이는 서로의 분량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를 휴거에 접목하는 것은 비 론리적이니 유의하여야할 것이다.
오직 휴거의 비결은 주 예수이름의 능력밖에는 없는 것이다.
<시50;15>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 아멘, 주~예수여~~그 큰 환란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누구든지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주저 말고 즉시로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라마지 않는다.
+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 <행22;16>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22:20,21>
(다음은 공력구원 편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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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느디님님, 먼저 심기불편한 말들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이곳에서 못 찾으셨다면 제가 따로 간단하게 뽑아 게시하겠습니다.
아마 이 글이면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에게 참고가 되실까 해서 올려봅니다.
-세 가지 다른 견해-
온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으로는
다비, 켈리, 토레이, 무디, 브룩스, 그레이, 게벨레인, 사이쓰, 스코필드, 등이 있다.
온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고 나서야 휴거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로는
뮬러, 고든, 심푸슨, 어드만, 무어해드, 프로스트, 카메론, 라이트, 뉴톤 등이 있다.
소수의 사람이 환난 전에 휴거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난을 통과한 다음에야 휴거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로는
허드슨 테일러, 채프만, 고벳, 펨버, 팬톤, 래더, 위트니스 리, 워치만 니(* 이 두분은 제가 추가해 기록했습니다). 등이 있다.
각각 다 믿을 만한 학자들이며 영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을 따를 수가 없으며, 만일 사람을 따르게 된다면 과연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그들은 다 하나님의 특출한 자녀들이 아닌가! 이러한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좋은 사람도 틀릴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아무데도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빛을 구해야 한다. -워치만 니-
한국복음서원 刊 -워치만 니 전집- (주제별 진리 연구 기록)
주정길님, 올리신 자료, 나로써는 처음이고요, 대신 그들이 누군지도 잘 몰라 미안합니다. 그토록 무지한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 환란 후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환란전에 휴거하면 주님도 없는 공중에서, 아니 그보다도 어떤 방법으로 휴거를 한다는 것인지...알 수가 없군요.
주님이 공중에 임하셔야 휴거가 있는것이지요,,
공중에 임하시지 않으면 휴거는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냐,, ?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그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공중으로 올라가니 내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자는 결코 올라 갈수 없습니다
부르지져님이 말씀하신 천사들을 보내어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는 것은
환란시대 구원받는 사람들은 지금 은혜시대 구원받는것처럼
믿는사람 마음에 성령이 들어가는것이 아니고
구약시대처럼 진 밖에서 믿는 자들을 보호하셨듯이 그렇게 보호하는 것입니다,,
휴거는 내안에 계신 성령의 힘이고 지상재림시는 천사들을 보내어 모으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서 천사들을 보내겠습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란전이든 후이든 각자 믿으면 될거 같습니다,,
전을 믿었다고 지옥갈것 아니고 후를 믿었다고 해서 역시 지옥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 옳고 타인은 틀렸다,, 부정한 휴거론이다,, 이런식의 글이나 토론은 부르지져님의 말대로
무수한 세월을 삭히는 행위일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기에
좀더 정확하게 주님이 보여주시지 않는 부분을 내가 맞고 너는 틀렷다
이렇게 왈가 왈부 한다는것이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그만 ^^
그러면 환란전에 간다는 근거를 주시기 바랍니다.
가롯유다 나간 뒤에 주님이 제자들만 있는 곳에서 하신 약속이 그 근거 입니다,,
주님이 다시오셔서 데려가시겠다는 것은 주님이 하신 약속입니다,,
휴거는 상급이 아니기에 연약한자는 신실한 자나 믿고 거듭난자는 다 홀연히 변화하여
주님이 공중에 임하실때 자동으로 들림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환란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서 교회가 완성되면
주님이 오시고 주님의 몸인 교회는 휴거되고
지상에서는 전무 후무한 주님의 진노가 쏟아질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 믿고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많은 근거를 댄다고 해도 부르지져님은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변론만 이어질 것이기에 여기서
멈추는것이 지혜인거 같습니다,, ^^
휴거에 대하여 그길님 자신의 모순점을 뒤돌아 점검해 보셨습니까??
저는 '부르지저'님의 1차 2차 3차 구원의 분류에도 동의를 하지 않지만, 계시록 10장의 '천사의 일곱 번째 나팔'이 살전 4장이나 고전 15장의 '하나님의 나팔' 또는 '마지막 나팔'과도 같은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리 이러한 변론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章과 節만 부탁 드렸었는데... 무참히 묵살을 당하였습니다. 너무 길어서 읽다 말았습니다만 이쯤에서 님과의 대화는 접으렵니다! 안녕히~ [휴거가 대환란 후에 일어난다는 성경 구절은 언제라도 제시해 주십시오!]
느디님님께서 무참히 묵살을 당하셨다니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1,2,3차 구원의 분류를 동의치 않으시는 것은 자유이시나,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 크게 흠잡을 만한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팔에 대하여 견해를 달리하신다니 그거야 어쩔 도리가 없구요, 그리고 이번은 느디님께서 환란전 휴거론으로 저를 무참하게 묵살을 내주시기 바라며, 끝으로 부탁하신 장절은 <마24;21~31>입니다.
하나로 된 '구원'도 '삼위일체'처럼, 영혼의 구원(罪 사함, 1차)과 생활 구원(온갖 시험과 유혹, 2차)을 거쳐 마지막 날 몸의 구속(부활과 산 채로 그 부활에 참예하는 휴거, 3차)이라면 모를까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 롬14:10)에서의 칭찬과 책망을 3차 구원으로 보시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시하신 마24:21~31은 '환란 성도', 특히 유대인의 '남은 자(remnant)'에 관한 것으로 '7년 대환란' 전에 들림 받은 '하나님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는 (저도 세대주의는 아니지만) '말씀보존학회' 쪽의 자료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 하십시오. 피차 다른 의견만 확인한 것으로 족합니다!
생활구원이라....이는 몇장몇절에 있는 말씀인지요...설령 장절이야 없더라도 이치만 맞으면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면, 느디님께선 이 생활구원을 받으셨는지, 아니면 언제 완 성되는지 의문이 갑니다. 이에 답변 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영혼 구원'(벧전1:9)과 '몸의 구속'(롬8:23) 어간의 '육체의 남은 때'(벧전4:2)를 '나그네로 있을 때'(벧전1:17) 또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벧전2:11) 동안 신앙생활을 조심성 있게 삼가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말씀을 저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신앙생활은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인데도 '완성'이라니? 그럼 '부르지저'님은 '몸의 구속'을 받으셨습니까? [롬13:11의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라'는 말씀도 '처음 믿을 때' 받은 罪 사함의 '영혼 구원'으로 부터 매일매일 가까와지는 '몸의 구속' 사이에 '그러므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생활구원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자백'(요일1:9)과 '징계'(고전11:32, 히12:10)의 용도를 모르시나요? 아무튼 이쯤에서 그치렵니다. 피차 '다름'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러면 생활구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먄, 생활구원이 넘어지면 생활구원이 징계를 먹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럽시다. 여기서 끝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