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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트 제단화] 열었을 때 143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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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회화와의 두번째 큰 차이점은 인물이 이상화되지 않고 개성을 가진 존재로 재현되었다는 점이다.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도 그렇지만 닫힌 화면에 그려진 주문자 부부의 실물크기 초상은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제단화의 일부분으로 등장한 주문자 초상은 이후 독립 초상화로 발전하여, 중세의 익명성에 묻혀 있던 개인이 천년만에 이름과 개성을 가진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얀 반 에이크는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천년 만에 등장한 이름과 개성을 가진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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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상징, 빛나는 사물의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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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피니 부부 초상] 143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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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사실주의적 풍경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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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롤랭 수상의 성모] 1435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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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사이에 두고 수상의 뒤쪽으로는 그가 부르고뉴에 소유한 포도원을 연상시키는 언덕, 작은 성당, 광장 등이 보인다. 아기 예수 뒤편으로는 고딕 대성당과 첨탑이 밀집한 대도시가 펼쳐져 있다. 화가의 다른 그림처럼 이 작품에서도 일상적인 사물은 종교적인 상징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상 뒤 풍경은 물질적인 지상의 세계, 예수 뒤편은 정신적인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며 이 둘이 강 중앙의 다리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은 이러한 의미에 맞추어 했을 수도 있으나, 풍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화가는 관찰과 사생에 근거한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선 원근법에 따라 사물은 멀수록 작아지고, 공기 원근법에 따라 원경의 사물은 흐리고 푸른 기운을 띠는 것으로 묘사되어 깊이감과 거리감을 전달한다. 강에 비친 그림자 표현에서는 수면에 비치는 광선을 효과적으로 포착한 인상주의적인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얀 반 에이크를 비롯한 북유럽 미술의 원근법은 이탈리아 미술의 수학적 원근법과 비교하면 정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는 모눈종이 위에 정확한 비례로 작아지는 사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직관에 의한 원근법을 구사했다. 이는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해부학에 의거한 구조를 파악해서 인물의 현실감을 만들어내려고 한 데 비해, 그를 비롯한 북유럽 미술가들에게 사실성은 정확한 세부묘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에서는 화가의 붓으로 짠 옷감, 화가의 손길이 지문을 만들듯이 촘촘히 지나가 만들어진 피부, 만지면 뽑힐 듯한 모피 등이 살아서 저마다 다른 파장의 빛을 발하고 있다.
얀 반 에이크는 생전부터 이탈리아에서도 유화의 발명자로, 사실적인 초상화가로 높이 평가되었고, 그에게서 유화를 배워 이탈리아에 소개했다고 바자리가 기록한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나 보티첼리, 기를란다이오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16세기 들어 영향력이 감소했다. 이 시기에는 북유럽 회화 전반이 이탈리아 미술에 비해 침체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플랑드르에서 얀 반 에이크의 이름이 잊혀진 적이 없고, 카렐 판 만더(Karel van Mander)의 기록에서 그는 북유럽 미술 전통의 설립자로 추앙되었고, 북유럽의 화가 대부분의 미술 수업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상해석에 집중되었던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최근 들어 기법, 후원, 사회적 기능 등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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