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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힐(Bald Hill) 트레킹은 재스퍼(Jasper)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멀린호수(Maligne Lake)를 기점으로 하는 트레일이다. 멀린호수는 캐나다로키에서 옥(玉)과 같은 곳이라 하여 벽옥(碧玉)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재스퍼’(jasper)라 이름지어진 재스퍼 시내에서 멀린레이크로드(Maligne Lake Road)를 따라 약 50km 떨어져 있다.
볼드힐 트레일은 울창한 더글러스전나무 숲길의 호젓함을 누리며 산정에 올라 산봉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멀린호수와 재스퍼국립공원 일원의 아름답고도 웅장한 산봉들을 맘껏 조망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 ▲ 볼드힐로 이어지는 산림도로. 길 양옆은 곰과 엘크와 같은 큰 짐승이 살 수 있을 만큼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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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힐 트레킹은 기점인 멀린호수로 다가서는 드라이브 코스만으로도 캐나다로키 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재스퍼 시내를 끼고 흐르는 아사바스카강(Athabasca River)을 건넌 이후 약 10km 지점의 도로변에 위치한 멀린캐니언(Maligne Canyon)은 원시적이면서도 괴이한 협곡의 전형을 보여주고, 이후 메디신호수(Medicine Lake)에 이르기까지 약 35km 길이의 도로변은 엘크와 같은 동물뿐 아니라 운이 좋으면 야생 곰에 이르기까지 야생짐승들이 울창한 숲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연전시장 같은 곳이다.
메디신호수는 여름에는 빙하수가 흘러들어 수량이 넉넉하고 아름다운 호수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호수 아래쪽의 수로를 통해 물이 거의 다 빠져나가는 독특한 호수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예전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이곳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캐나다로키를 파고든 광산업자들은 한여름의 멋진 호수 풍광에 관광지로 개발할 꿈을 꿨다가 겨울철 다시 찾았을 때 물이 사라진 모습에 깜짝 놀라 관광지 개발의 꿈을 접었다는 얘기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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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로를 따르며 이렇게 다양한 풍광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볼드힐 트레킹은 멀린호수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자마자 도로 오른쪽 산림도로 입구에서 시작한다. 초입에 볼드힐 트레일 안내판(Moose Lake Loop 3.6km, Trapper Creek 3.6km 1~2hours, Maligne Pass 32.4km, Bald Hill 10.4km 4~6hours)이 세워져 있고 건너편에는 화장실이 갖춰진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캐나다로키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멀린호수는 ‘악한’, ‘나쁜’과 같은 의미의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캐나다로키를 대표할 정도로 아름다운 빙하호수다. 유람선 여행뿐 아니라 요트와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고, 주변에 스키장이 있어 겨울철엔 스키어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 ▲ 플라토형 평원에서 돌밭길을 거슬러 정상으로 오르는 트레커들. 뒤로 멀린호수가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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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시작되는 산림도로는 예전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던 언덕배기까지 약 2.5km 길이로 이어진다. 한동안 길 왼쪽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더글러스전나무가 우거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길가에 엘크와 같은 야생동물들의 배설물이 눈에 띄곤 해 궁금함과 더불어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산길 주변에 간간이 보이는 텅 빈 목장은 예전에 말을 사육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완경사의 산림도로를 따라 2.5km 가면 왼쪽으로 갈림목이 나타난다. 왼쪽 숲속 길은 예전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는 지름길로 멀린호수와 주변의 산봉이 바라보여 조망이 좋다. 곧장 뻗은 산림도로(2.8km)에 비해 1.5km 짧은 지름길이지만 시종일관 가파르기 때문에 등로보다는 하산로로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 ▲ 정상 아래 플라토. 고산식물들의 낙원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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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뻗는 산림도로는 한동안 더글러스전나무 숲에 가려 보이는 게 전혀 없으나 산림도로 오른쪽으로 빠지는 에블린크릭(Evelyn Creek) 갈림목을 지나 해발 2,000m를 넘어서면서 로키의 설산들이 눈에 들어오고 등 뒤로 멀린호수는 숲속의 연못처럼 예쁜 풍광으로 내려다보인다. 호수 뒤편의 붉은빛을 띤 레피크(Leah Pk.·2,803m)~샘손피크(Samson Pk.·3,076m)~멀린마운트(Maligne Mount·3,224m)~브라주산(Mt. Brazeau·3,470m) 산줄기는 캐나다로키의 성소(聖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멀린호수를 보호하는 성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산림도로는 위로 오를수록 경사가 가팔라지다가 언덕배기에 올라선다. 예전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는 언덕마루는 키작은 전나무 숲이 조금 가리기는 하지만 멀린호수 조망이 멋지게 펼쳐지고 그 양옆과 뒤로 캐나다로키의 수많은 봉들이 솟구쳐 가슴 설레게 한다. 볼드힐도 한눈에 들어온다. ‘민둥산’이란 의미의 이름답게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릉이 불쑥 솟구쳐 올라 밋밋한 느낌도 자아내지만 멋진 조망을 기대케 한다. 산릉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 뻗은 능선 상의 두 번째 봉이 정상이다.
- ▲ 좌)마모트 한 마리가 볼드힐 정상으로 향하는 우리가 낯선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멀린레이크로드는 엘크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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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대에서 볼드힐 오르는 길은 두 가닥. 테라스 지형을 이룬 산허리를 가로지르다 볼드힐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첫 번째 능선마루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길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테라스 지형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른 다음 산릉을 따라 하산하는 코스가 볼드힐 일원의 자연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듯싶다.
취재팀이 볼드힐을 오른 6월 말에는 사면 곳곳에 눈이 덮여 곧장 오르는 길 대신 왼쪽 테라스형 지대를 가로지르다 정상을 향해 급경사 된비알을 올려쳤다. 테라스형 지대는 7~8월이면 천상화원을 연상케 할 만큼 수많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야생화 군락지 주변에 자그마한 연못들이 자리잡고 있어 한층 더 아름다웠다.
- ▲ 볼드힐 정상에서 환호성을 외치는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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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이 산불감시초소 자리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박이 뒤섞인 폭우가 퍼부어 조망에 대한 기대를 꺾는 듯하다가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면서 테라스 지형 일원의 야생화들이 고개를 치켜들어 풍광은 한층 아름다웠다. 게다가 산 아래로 멀린호수와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바라보여 캐나다로키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었고, 정상으로 오르는 사이 허리를 곧추세운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모트를 만날 기회도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