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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1953) - 손창섭 - |
[줄거리] |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진다. 동욱, 동옥 남매가 바로 비에 젖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원구는 어느 날 거리에서 친구 동욱을 만났을 때, 그는 몰골이 초라했고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자조적 웃음을 능글거렸다. 동욱은 동생 동옥이 초상화를 그리며 산다는 말을 했고, 동옥이가 가엾다고 한다. 어깨가 처져 걸어가는 동욱을 보며 원구는 연민을 느낀다. 원구가 처음으로 동욱의 집을 찾아가니, 남매가 사는 집은 그야말로 폐가와 다름없었다. 을씨년스런 집 안의 풍경이 비에 젖고 있었고, 동옥은 무표정하게 원구를 바라본다. 원구는 오빠와 친구임을 말하지만 우울한 표정은 여전했다. 동욱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구는 동욱을 만나 다시 되돌아간다. 집 안은 비가 새어서 들통을 받쳐 놓았고, 사는 꼴은 말이 아니었다. 동욱은 음식을 만들면서 동생을 마구 욕한다. 빗물 들통이 쏟아질 때 동옥이 절름발이임을 알 게 된다. 그 뒤로 비가 와 가게를 열 수 없는 날이면 자주 동욱의 집을 찾는다. 만남의 횟수가 늘수록 동옥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져 미소를 지어 보인다. 원구는 그림 이야기를 묻기도 하면서 동옥에게 정을 보낸다. 오빠 동욱은 여전히 동생을 경멸하듯 함부로 말을 한다.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자꾸만 화가 난다고 동욱은 말한다. 동욱과 함께 잠잘 때, 동욱은 잠꼬대로, 원구가 동생에게 적선으로 결혼해 줄 수 없는가 하녹 말하는 것을듣는다. 그런 며칠 뒤, 동욱이 찾아와서 술 먹기를 청한다. 그는, 동생이 초상화 그리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자신은 목사의 꿈을 버리고 군대에나 자원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또 횡설수설 원구더러 동생과 결혼할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 뒤 동욱이에게 잠깐 들렀을 때, 참담한 형편을 듣게 된다. 동옥이 초상화 일을 해서 번 돈을 주인 노파에게 빌려 주었는데, 주인 노파는 그것을 떼어먹고 달아났을 뿐 아니라, 이 집까지 팔아 먹고 가는 바람에 새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옥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고, 동욱은 악에 받쳐 동생을 꾸짖었다. 비가 와서 장사를 못하게 된 원구는 동욱을 찾아간다. 그러나 새 주인은 두 사람이 모두 집을 나갔다고 말해 준다. 동욱은 외출 후 소식이 끊겼고, 기다리던 동옥도 며칠 전 나갔다는 것이다. 넋을 잃고 집을 나오는 원구의 등 뒤로 주인 사내는, 동옥이 얼굴이 밴밴하고서야 어디 몸을 팔아도 죽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원구는 주인 사내가 동옥을 팔아 먹었다고 격분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허청거리며 밭둑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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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 |
동욱 →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 지망생으로 1.4후퇴 때 동생 동옥과 함께 월남한다.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 주문을 받아 생계를 꾸려가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입대를 하게 된다. 동옥 → 소아마비로 이상 성격이 된 동욱의 동생.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지만 오빠가 가출하자 그녀 역시 떠나버린다. 원구 → 이 글의 화자이며 동욱의 친구. 그 역시 월남해 리어카로 잡화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동욱 남매에게 애정을 베푸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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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단계] |
※ 원구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과거 동욱 남매의 일이 시간의 순차적 흐름에 의해 구성됨. 발단 : 비가 내리는 날이면 원구에게는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회상됨 전개 : 원구의 황폐한 동욱의 집을 방문하여 동욱과 그의 누이동생 동옥을 만남 위기 : 동옥의 자조적인 웃음과 그들의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을 못하게 됨 절정 : 동옥은 노파에게 돈을 떼이고, 세 들어 살던 집마저 떠나게 됨 결말 : 원구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이미 그들은 떠나고, 그는 자책감에 빠져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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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전후소설을 대표하는 것으로, 절망의 시대 분위기가 빚어낸 비인간적이며 무기력하고 참담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과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삶을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물질적 · 정신적 상처와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즉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로 인한 절망이 단순한 인간애로 극복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 주고 있다.
<비오는 날>에서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이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는 등장인물이 처해 있는 전후시대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질척거리는 거리에 내리는 비는 그대로 시대적 부정성을 뜻한다. 청명한 날이 없는 시대, 그들을 계속 무겁게 누르는 불운을 비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절망의 시대를 껴안은 채 고통받는 존재들을 질척거리는 비를 맞고 사는 것으로 극화한 것이다.
<비오는 날>은 소외된 변두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인 삶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여주인공 동옥은 절름발이로, 이들은 현실 상황이 주는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인물이어서 불행한 생활 조건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다. 그녀는 육체적 불구임과 동시에 정신적 외상을 입은 존재이다. 그녀는 웃음이 없고, 칙칙하게 내리는 비처럼 그녀의 정신 또한 비에 젖어 있다. 정상이 아닌 불구는 삶에 있어서도 현장에서 밀려나 소외와 고독의 참담함에 시달리게 한다. 동욱 역시 정신적 불구자이다. 가난에 지쳐있고, 불투명한 미래에 낙망하며,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며 행동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렇게 불행에 지친 자아는 동기간의 애정까지도 말살하게 된다.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저주하는 일은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때에 가능한 정신 상태이다.
동욱과 동옥 남매는 결국 마지막 생활의 터전에서나마 이탈되어 저주의 땅으로 내몰리게 된다. 동욱은 목사의 길에서 자원입대로 인간의 삶을 떠나고, 동옥도 결국 자기를 내팽개친 자들에 의해 최소한의 인간적 삶도 허용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된다. 이들의 이러한 고립은 결국 시대와 사회의 병리현상 때문이다. 허무와 절망의 자의식, 내일이 없는 사회적 무력감, 극도의 경제적 궁핍 등이 남매로 하여금 자폐적 개인화로 내몬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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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단편소설, 전후소설, 실존주의적 소설 ● 배경 : 전후의 황폐한 피난지인 부산 동래 부근의 외딴 마을로, 비극적 삶의 공간 장마철 비오는 날의 음울한 분위기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비오는 날과 동욱 남매의 비극을 냉소적이고 허무적으로 간결하게 그림. 소외된 인간상을 피학적 어조로 묘사함. ● 갈등구조 : 동욱, 동옥 남매와 원구 등의 인물과 그 주위를 둘러싼 전후의 황폐한 환경과의 갈등 ● 주제 ⇒ 전쟁이 가져다 준 인간의 무기력한 삶과 허무의식 전후 사회의 절망의 분위기와 파탄된 삶의 모습 ● 출전 : 『문예』(195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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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문제] |
1. 이 작품에서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제재를 찾아 쓰고, 그 제재가 등장인물들의 어떤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비. 이 작품에서 '비'란 단순한 비가 아니라 이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지배하고 나아가 전후의 암울한 상황을 암시하는 요소이다. 그리하여 작자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 속에 처한 동욱 남매의 비정상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이 인간의 삶과 의식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를 냉소적이고 허무한 시선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비의 눅룩한 분위기에서 연상되는 불쾌감, 우울함이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무기력함이나 허무, 절망적인 정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2. 이 작품에서 원구의 위상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말해 보자. ⇒동욱 동옥 남매를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인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는 전쟁의 참상에서 얼마간 떨어진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또한 전쟁이 준 상처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중에는 가판 장사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곤궁한 처지에 빠진다. 원구가 볼 때, 동욱, 동옥 남매는 자신의 투영된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그 또한 동욱, 동옥 남매와 다를 바 없는 내면 풍경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3. 동옥이가 원구의 방문에 무표정과 무관심을 표한 까닭을 말해 보자. ⇒원구가 손님으로 찾아갔는데도 동옥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동옥의 사회성 결여를 말하는 것으로, 그녀가 그렇게 된 까닭은 지독한 가난과 육체적 불구 때문이다. 이런 조건은 그녀를 폐쇄적이게 하여 자폐적 자아로 만든다. 그녀가 냉소를 띤 듯한 표정을 짓고, 거만해 보이는 듯한 것도 이런 데서 말미암은 무표정에서 기인한다.
4. 목사가 되려하면서도 술을 마시는 동욱의 내면 풍경을 주제와 관련하여 말해 보자. ⇒동욱이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극단적 불행에서 벗어나 정신적 안정을 얻으려는 것이다. 파탄에 이를수록 정신의 귀의처를 얻고자 하지만 그 불행의 근원의 시대에 있다. 시대의 절망이 크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큰 것이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현실 상황의 반영이요, 목사가 되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의 탈피를 뜻한다. 동욱은 극도의 처참한 환경에 내몰려 있는 상태이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초월을 꿈꾸지만 현실 속에 내팽개쳐지는 것이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라 할 때, 그 전형을 동욱이 보여준다.
5. 이 작품의 문체는 어떠하며, 이것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것이다'라는 종결 어미의 사용은 사건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독자들의 의식 속에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의해 환기된 내레이터의 감정을 전달한다. 무기력한 원구라는 인물의 눈에 비친 동욱과 동옥의 비정상적이고 불구적인 삶은 원구의 의식에 의해 진술됨으로써 보다 더 암울한 것으로 처리되는데, 이때 '것이다'라는 종결 어미가 쓰인다. 작품의 이러한 문체는 지적 비판이나 서정적 묘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정서 환기를 목적으로 하며, 따라서 사건을 간접적이고 속도감 있게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의식 속에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의해 환기된 정서를 전달해 준다.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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