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Horace N. Allen, 미북장로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렌 선교사는 본래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중국 해안가에 정착하여 의료선교사역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해안가에는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정착하여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곳도 그에게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알렌 선교사는 8개월 동안 상해와 남경 일대를 헤매다가, 조선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조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미국선교부에 편지를 씁니다. “나의 조선 입국을 허락해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단신으로라도 들어가겠습니다.” 알렌은 1884년 9월 20일 드디어 제물포 항구에 도착하여 한국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알렌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한 미국공사관의 공의라는 직분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의보다는 왕실의 시의가 되면 더 좋은 선교를 펼칠 수 있음을 알게 된 알렌은, 고관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기도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때가 왔습니다. 그가 조선 땅에 온 지 2개월이 막 넘은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으로 민영익이 자객의 칼에 맞아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14명이나 되는 한의사들이 전전긍긍 손을 쓰고 있었으나, 출혈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우왕좌왕하기만 하였습니다. 알렌은 의료기기를 다루면서 선교의 기회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민영익을 치료하였습니다. 그 결과 민영익은 소생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알렌 선교사는 조정의 신임을 받게 되어 왕실의 시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조선선교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민영익은 생명의 은인인 알렌 선교사에게 감사하여 십만 냥을 주었고, 알렌은 이 돈을 기초로 병원을 마련하였는데 이 병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입니다. 그 후 이 병원은 제중원이라고 개명하였고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 선교사도 알렌의 도움으로 알렌의 집에 거하면서 조선선교를 위해 준비할 수 있었으며, 초창기 조선에 들어온 대부분의 선교사가 알렌의 도움으로 조선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선교의 기회가 올 것을 기대하며 믿고 기도로 준비하던 알렌을 통해 조선의 선교는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