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들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안에서 밖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집 『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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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속고 절망에 위로 받을 때가 있다
던져진 절망을 위로삼아 치유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행위의 사슬이 수많은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가 싹트게 되는데
우리의 살아온 흔적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막막한 길 위에 서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도 배신당한 채
우리는 지금 길 위에서 과연 길들여지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고,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공존하는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서
희망 쪽으로 바늘이 움직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들의 기우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안으로의 길, 그 향기에 젖어보고 싶은
하오 어느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