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 상식] 가치(Value)
단어는 대부분 다의적이지만 가치라는 단어만큼 여러 가지 층위에서 두루 사용되는 말도 드물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가치는 ‘중요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일례로 가장 가치가 큰 선수, 즉 MVP(Most Valuable Player)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기둥 선수다. 선수 생활 내내 본인의 의사로 팀을 잠시 떠난 것 이외에는 한 번도 트레이드되지 않았던 마이클 조던이나 선동열이 그런 선수다. 프로 선수라면 가치를 몸값과 거의 동일시할 수 있다.
학문에서 가치라는 말을 쓸 때는 단순히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평가의 의미가 포함된다. 객관성이 중시되는 학문에서 가치는 일단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요소가 아니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연구자의 가치관이 연구 과정에 개입될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가치중립의 자세를 요구한다. 바꿔 말하면 아무런 선입견이 없이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학교 재단을 소유한 사람이 사교육에 관한 정책을 입안한다면 가치중립을 기대할 수 없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는 사람이 한국 현대사에 관한 교과서를 꾸민다면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일관적인 가치중립, 이른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실은 객관성의 대명사인 자연과학에서도 가치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과학의 주요 방법인 관찰은 언뜻 생각하면 객관성을 의심할 수 없을 듯하다. 자유주의자가 관찰하거나 사회주의자가 관찰하거나 돌은 돌이요 물은 물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실증주의가 힘을 잃으면서 자연과학적 관찰도 객관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명한 예가 빛의 이중성이다.
고대부터 과학자들은 빛을 입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빛은 소리나 물결처럼 간섭과 회절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이때부터 빛은 파동으로 여겨졌으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파동이라면 매질이 필요한데, 우주 공간은 거의 진공이므로 아주 먼 별빛이 지구까지 전해질 수 없게 된다. 결국 고민 끝에 물리학자들은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빛은 월, 수, 금요일에는 입자이고 화, 목, 토요일에는 파동이라는 농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바꾸어 말해 빛은 입자로 관찰하고자 하면 입자로 보이고 파동으로 관찰하고자 하면 파동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관찰은 생각만큼 객관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이론이 개제되게 마련이다(때로는 관찰자 자신조차 그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 과학자들은 과학적 관찰도 이론 의존적(theory-laden)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보는 만큼 아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한 가치중립이란 불가능하다.
경제학의 분야로 넘어가면 가치는 상품이 지니는 속성을 가리킨다. 상품의 가치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사용가치는 상품의 쓸모나 용도와 관련된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상품이고, 햄버거는 간이식사로 먹는 상품이다. 이와 달리 교환가치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을 나타낸다. 일상생활에서는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보다 중요하지만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다. 경제학에서 가치라는 개념은 곧 교환가치를 가리킨다.
사용가치는 원칙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 한대는 햄버거 100개의 가치가 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카메라보다 햄버거 하나가 더 소중하다. 사용가치와 달리 교환가치는 객관적으로 양화(量化)될 수 있고 측정이 가능하므로 학문의 주요한 개념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환가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아무리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도 모든 상품에는 공통의 요소가 있다. 다각형의 면적을 측정할 때는 우선 다각형을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분할한 뒤 삼각형들의 면적을 더하면 된다. 즉 삼각형은 모든 다각형의 공통적인 요소다. 상품에서 그 삼각형의 역할을 하는 게 무엇일까? 일단 화폐를 떠올릴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 한 대의 가격이 50만 원이고 햄버거 한 개의 가격이 5천 원이라면 1대 100의 교환비율을 얻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폐는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한다. 화폐 자체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을 주고 카메라라는 상품을 사지만 카메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카메라를 주고 돈이라는 상품을 사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는 여러 가지 상품을 매개하는 편리한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상품의 진정한 가치는 ‘노동’으로 측정된다. 한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입된 노동량이다. 물론 상품을 생산하는 데는 노동 이외에도 원료나 생산도구가 필요하지만 그것들도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노동가치론이라고 부르는데, 마르크스가 초기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적용한 개념이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시대와 크게 달라졌으나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마르크스는 가치와 생산이 분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생산된 가치와 소유는 사적이라는 점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 점은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다수의 생산 대중이 갈수록 빈곤해지고 소유의 소유자들이 갈수록 부유해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병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