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들의 농간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삼국지에서는 후한이 그러하였으며, 또 많은 이들이 촉한도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허나 필자는 촉한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황호가 간신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나, 주체가 과연 황호였느냐 하는 것이다.
보통 군주가 환관에게 의존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라 볼 수 있다.
하나는 환관이 권력화되어 군주조차 어쩌지 못하는 경우인데, 후한의 영제와 십상시가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권신들에 둘러싸인 군주가 최측근인 환관을 신뢰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유선이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유선은 즉위 시절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기회조차 없었다. 제갈량 시절에야 워낙에 나라가 혼란스럽고, 유선의 나이 또한 어렸기에 섭정이 부득이한 측면이 있었다고 치자. 좀더 나아가서 장완 시절까지도 아직 직접 통치를 하기에는 미욱한 부분이 있었다고 이해해보자.
하지만 비의-동윤 시절에 이르르면 유선이 아니라 다른 누구였더라도 이제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군주의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들고 제위에 오른지도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제아무리 군주 자신이 모자라다고 해도 신하들에 의한 연이은 섭정은 너무한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상황 그렇다보니 유선은 가장 믿을만한 인사인 황호를 내세워,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동윤이 죽은 뒤, 친유선인사인 진지를 시중에 임명하고, 염우에게 군권의 일부를 위임하여 강유를 견제하였던 일련의 조치들은 황호의 농간이라고만 생각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너무나도 왕권강화와 부합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윤 사후, 촉의 재상정치는 막을 내렸고, 사실상 유선의 친정체제로 넘어갔다.
결국 황호의 국정 농단이라는 것은, 유선의 묵인하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물론 황호가 저지른 비리까지 유선이 동의한 것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유선이 황호에게 놀아나 타락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유선은 단지 그럴듯한 황제노릇 한번 해보고 싶었을 뿐이고, 황호는 유선의 아바타였을 뿐.
첫댓글 자건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긴하지만요. 유선이 멍청한군주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촉의 재상정치가 길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고구려의 연개소문처럼 황제를 압박하며 한 재상의 정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유선스스로 큰 그릇이었다면 위를 더 치지 못하더라도 정치적 기반이나 군사적 틀을 좀더 잡아줄수도 있었을텐데....
어쩃든 유선의 상황이 매우 슬펐다는건 사실이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유선공사 만세 ㅠㅠㅠ
그런데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발언권과 자율권을 인정받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의 지시를 100% 따라 성공하는 것보다, 차라리 성공확률이 낮아지더라도 자신이 주도하고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그런데서 인생의 행복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선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이 뭔가 주도하고 리드하고픈 욕심을 가지지 않았었나 합니다. 특히 황제라면 역대 호걸같은 황제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테니 당연하기도 하구요.
유선의 입장에서 쓴 글을 맞지만, 유선현군설따위를 주장하는건 아님. 오히려 유선이 범군 이하였기에 저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거임. 현군이었다면 자신의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재상정치를 끝까지 유지했을테고, 유능한 군주였다면 친정체제가 되었을 때 자신의 역량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음. 즉, 현군도 명군도 아니었다는거.
유선이 뭔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겠지요. 제갈량이야 워낙 인재가 없던 촉나라에서 거물급에 속했으니 거의 의존했다시피 했을테고 장완 비위까지도 선주를 따랐던 신하였으니 인정할만 했으나 자건님 말씀대로 제위에 오른 지 20년쯤도 되고 동윤도 죽으니까 슬슬 황제노릇 제대로 해보고 싶던 차에 황호가 곁에서 쿡쿡 찔렀겠죠ㅇㅇ 어느정도 유선이 친정을 하고 싶어서 황호에게 권력을 실어준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ㅇㅇ!!
자건형의 말이 맞는 부분이 많지만, 황호가 아주 아바타는 아니었을 겁니다. 황호도 어느정도 머리가 있었으니 최고 환관에 유선의 측근이 되었겠죠. 유선을 도와주는것도 있지만 그 중간에 자기 세력도 키우면서 사리 사욕을 체웠을 것입니다. 유선은 왕권 강화를 원했지만 결국 황호가 유선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였고 그 과정에서 각종 비리를 처지르면서 조정 대신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황호의 세력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겠죠. 처음에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유선이었지만, 결국 눈이 멀이 황호에게 놀아나게 되었을 겁니다.
고종이 흥선대원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성황후라는 카드를 들고나왔다는 설과도 맥락은 같이하지 않나 싶습니다. 뭐 어땠든간에 아바타라는건 맞는것 같고... 중요한건 유선이 그렇게까지 깊은 정치적인 계산을 할수있을만큼 역량이 되는 군주냐는부분에서도 납득할수가 없음..
깊은 정치적 계산까지야 -ㅅ- 동윤-비의-진지가 연달아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가능해진 일일뿐 -ㅅ- 비의가 암살당하지 않았거나, 강유가 정치에 적극 관여했더라면 유선은 끝까지 바지황제였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