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마다 태고의 숨결이 살아 숨쉰다. 백두대간 지하 속에 화려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세월의 화석이 살포시 속살을 드러내고, 연이은 해안의 비경은 나그네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강원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동해안의 관문으로 불리는 삼척. 역사의 향취와 풍류, 수려한 풍광이 공존하는 곳이어서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980년대까지 곳곳에 산재한 탄광과 시멘트 공장이 호황을 누리며 번성했던 삼척은 한때 국내 5대 공업도시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탄광이 줄지어 문을 닫으면서 지역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탄전지대의 경제회생을 위해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주민들의 이탈현상은 계속됐다. 폐특법 시행직후 8만6000여명이던 삼척시의 인구는 급기야 지난 2008년 7만명 선까지 줄어들었다.
재도약에 부심하던 삼척은 최근 LNG생산기지, 한국남부발전 종합발전단지 등 대형 국책사업을 잇따라 유치하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3년전부터 인구가 증가세(2011년 6월 기준 7만2308명)로 돌아선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해양레일바이크가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각종 관광개발 사업이 잇따르는 것도 또하나의 청신호다.
‘지하 금강산’ 연상케 하는 대이동굴지대
기묘한 형상의 동굴 생성물을 간직하고 있어 신비함을 더하는 대금굴 내부.
삼척하면 가장 먼저 동굴이 떠오른다. 대이동굴군지대를 비롯, 국가지정 문화재나 지방기념물 등 관리 대상 동굴로 지정된 곳만 55개에 달한다. 학술가치가 다소 떨어지는 소규모 동굴까지 포함하면 삼척지역엔 모두 82개의 동굴이 산재해 있다. 도시 인근 산골짜기마다 동굴이 있는 셈이다. 환웅(桓雄)이 백두산 신단수(神壇樹)가 아닌 삼척으로 내려왔다면 사람되기를 소망하는 곰과 호랑이를 어느 동굴에 넣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억만년전의 신비를 간직한 대이동굴군 지대는 백두대간의 주능선 중 하나인 덕항산에서 동북동쪽으로 4㎞ 이상의 V자형 협곡을 형성하고 있는 신기면 대이리에 위치해 있다. 환선굴을 비롯해 관음굴, 사다리바위 바람굴,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큰재세굴, 물골동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7개 굴이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동굴지대다.
환선굴 내부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기형 휴석(옥좌대), 종유석(도깨비 방망이), 동굴산호, 월유 등 많은 동굴생성물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지하수가 동굴을 통해 오십천으로 유입되는 수로형 굴로 추정되는 대금굴은 환선굴에 비해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그러나 내부에 높이 8m의 폭포를 비롯해 석순·석주·동굴진주·곡석 등 동굴 생성물이 환선굴보다 많이 있어 신비함을 더해준다.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내부 140m 지점까지 들어가는 이색적인 체험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관람객 1000만명 돌파, 동굴에서 숙성되는 명품 와인은 덤
강원 삼척 대이리 덕항산에 있는 동양 최대의 석회 동굴인 환선굴 내부.
동굴 규모가 워낙 웅장하고 기묘한 형상을 한 동굴생성물이 많다보니 이곳은 언제나 북적인다. 1997년 10월과 2007년 6월 각각 개방된 환선굴과 대금굴의 누적 관람객수는 1003만여명(2011년 6월기준)이다. 입장료 수입만도 356억원을 넘어섰다. 동굴 주변 풍광이 환상적인 것도 입장권 매진사례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삼척시는 동굴과 폐광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 ‘동굴 와인’ 개발, 1~2년후 본격 출시할 계획이다.
와인의 최적 보관 온도는 13도. 천연 동굴과 폐광의 갱도 속이 연중 이와 비슷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점을 고려한 포석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큰 해발 1244m의 육백산 자락과 도계읍 신리 ‘너와마을’ 등지에서 맛과 당도가 뛰어난 머루와 포도가 많이 생산되고 있는 점도 적극 고려됐다. 현재 삼척지역의 포도와 머루 재배면적은 각각 50㏊와 10㏊에 달한다. 애주가들은 벌써부터 석회동굴 보고(寶庫)에서 숙성된 명품 와인을 맛보는 일을 상상하며 들떠있다.
동굴에 대한 호기심을 보다 충족시키려면 성남동 168-3번지에 위치한 동굴전시관을 찾는 것도 좋다. 삼척 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 가량의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동굴전시관은 2002년 삼척세계동굴엑스포의 주행사장 역할을 한 시설이다. 1·2층에선 세계유명동굴과 영화 속의 동굴, 동굴의 문화연출, 동굴의 과거·현재·미래 디오라마 및 학술관련자료, 동굴내 서식동물인 박쥐의 생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3·4층 주제영상관에선 대형 아이맥스(I-MAX) 영상을 통해 환상의 동굴 체험도 할 수 있다
내설악 뺨치는 국내 최고의 계곡 산행지
삼척시 무건리 이끼폭포는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다.
동굴의 매력에 흠뻑 빠진 후 발길을 돌려 경북 울진군과의 경계지점으로 향하면 응봉산(鷹峰山)을 만나게 된다. 울진 방면에서 보면 산세가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예부터 응봉으로 불렸다. 지역민들은 ‘매봉’이라 부른다. 해발 999m의 이 산은 주로 전문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과 험준한 협곡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백암산·통고산·함백산·태백산 삿갓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동해 바다를 향해 골골이 뻗어있는 계곡의 풍광은 단연 압권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덕풍계곡.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에 위치한 덕풍계곡은 ‘용소골’ ‘문지골’ ‘굉이골’ 등 크고 작은 물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응봉산을 오르는 길목인 ‘용소골’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이곳이 내설악 백담·수렴·구곡담 계곡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신라 진덕왕때 의상대사가 날린 ‘나무 비둘기’가 덕풍계곡 용소에 떨어지면서 비경이 만들어 졌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 나온 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원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골 깊고 물 맑은 산기슭을 걷다보면 일상에 찌든 마음속 응어리도 자연스레 풀린다. 수려한 계곡의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응시하며 산천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플라이 낚시꾼의 모습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제왕운기 잉태한 천은사, 조선왕조 창업의 산실 준경묘·영경묘
미로면을 찾으면 역사의 향취에 매료된다. 미로면 내미로리 785번지에 위치한 천년고찰 천은사. 고려 충렬왕때 이승휴 선생이 한민족 역사 대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해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모든 건물이 불에 타 1972년 중창됐다. 향토사학자들은 “벚꽃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사찰입구의 자갈 오솔길을 따라 유유자적 걷다보면 권부세력을 비판했다가 정계에서 쫓겨나 은둔하던 이승휴 선생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찰 뒤 등산로를 따라 쉰움산을 오르는 등반객들도 많다.
천은사 인근인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와 하사전리에는 강원도기념물 43호인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 (永慶墓)가 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부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 이곳에선 매년 4월20일 전주이씨 문중의 주관으로 제례가 올려진다.
덕항산과 두타산 사이에 있는 준경묘 일대에는 금강송 군락지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지난 2005년 시민단체들이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이곳을 선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이곳 금강송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이기도 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숨막히는 절경
삼척항과 삼척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새천년도로의 야경은 황홀한 느낌을 받게 한다.
동해안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삼척 해안도로를 달려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백사장을 감싸안 듯 밀려오는 파도와 해안가 절벽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고, 먼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어선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여름철 피서객들은 근덕면 초곡항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 후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의 생가와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기념관을 자주 찾곤 한다.
울진에서 7번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잠시 들리면 새벽·저녁 시간대 사진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가곡천 하류의 속섬을 볼수 있다.
사진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삼척 월천리 속섬의 저녁풍경.
인근 신남마을에 위치한 해신당 공원도 이채롭다. 신남마을은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해지는 곳이다. 해신당 공원에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남근조각이 서 있다.
남근 조각이 줄지어 서게 된 것은 애바위전설 때문이다. 그 옛날 결혼을 약속한 신남마을 처녀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서 해초를 채취하던 중 거센 파도에 휘말려 바다에 빠져 죽은 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이후 한 어부가 바다를 향해 오줌을 싼 후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얘기다. 이 마을에선 이때부터 정월대보름이면 나무로 실물모양의 남근을 깎아 처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해신당 공원에서 10여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장호항을 찾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은 아름다운 항구와 해안가 기암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특히 장호항은 문어·임연수어·방어·청어·곰치·개복치·학꽁치·해뜨기 등 다양한 어종의 활어 집산지여서 누구나 횟감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장호마을에는 매년 12만여명의 체험 관광객들이 찾아 주변 풍광을 감상한 후 고동잡이, 투명카누, 바다래프팅,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등을 즐긴다.
바다를 보고 달리는 철로자전거 인기폭발
대금굴로 향하는 모노레일 주변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다.
장호항 윗동네인 근덕면 용화리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해양레일바이크 체험을 할 수 있다. 근덕면 궁촌리∼용화리 사이 5.4㎞ 구간의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해양레일바이크는 사전 예약 없이 타기 힘들다. 1시간여 동안 해저도시벽화터널, 무지개터널, 빛의 향연터널 등 3개의 터널과 해송숲을 거쳐가며 해안절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오르막길에선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전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지난해 7월 개장한 이후 1년 만에 탑승객이 45만명을 돌파한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도 7500여명이나 방문했다.
삼척시는 단체여행뿐 아니라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면서 입장료 수입만 30억원이 넘어서자 올해 유·무인 카메라 포토존를 신설해 운영하는 등 시설 보강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은 “대금굴 등 주변 관광명소를 연계한 1박 패키지 관광상품도 덩달아 인기를 끌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궁촌에 도착한 관광객 상당수는 인근에 위치한 공양왕릉을 둘러본다. 고려왕조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왕릉은 당초 허름한 무덤이었으나 1837년 헌종 때 삼척부사 이규헌에 의해 개축되면서 위엄을 갖췄다.
‘관동 제1루’란 명성 얻은 죽서루 등 볼거리 다양
관동 제1루 란 명성을 얻고 있는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竹西樓)에는 사계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안가를 돌아 삼척 시가지에 접어들어 꼭 찾아봐야 하는 곳은 성내동 9-3번지에 위치한 죽서루(竹西樓·보물213호)다.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강가에 자리잡은 죽서루는 어느 시기에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 알려져 있기 않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의 죽서루 시(詩)가 남아있는 점으로 미뤄 1190년 이전부터 이미 죽서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누각 전면의 ‘죽서루’와 ‘관동 제1루’란 현판은 숙종 41년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누각 내에 게시된 ‘제일계정’(第一溪亭) 현판은 현종 3년(1662) 부사 허목의 글씨다. ‘관동 제1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조선 중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과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에 그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밖에도 삼척 지역에는 새천년해안유원지, 척주동해비, 맹방명사십리, 수로부인공원, 이사부 사자공원 등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삼척 증산동 참재 일대 2만9069㎡ 부지에 조성돼 8월2일 문을 연 ‘이사부 사자공원’에는 해안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타워와 산책로 등이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찾기에 더없이 좋다.
해양관광 개발 봇물 이룬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삼척 장호어촌체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바다래프팅을 즐기고 있다.
삼척시는 보다 많은 체류형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체험형 레포츠 시설과 해변 리조트 시설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오는 2013년까지 민자 194억원을 포함, 모두 256억원을 투입해 궁촌~용화간 1㎞ 구간에 로프웨이를 설치할 계획이다. 로프웨이가 설치되면 바다 위에서 해안 절경을 내려다보며 오갈 수 있게 된다. 로프웨이의 출발·도착지점에는 유리공원, 하늘공원, 산책로, 주차장 등의 시설도 설치될 예정이다.
삼척시는 해상 로프웨이 설치가 완료되면 해양레일바이크 및 유람선 체험과 연계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할 방침이다. 2014년에는 삼척 해변 인근 와우산 10만여㎡ 부지에 콘도 500실, 아쿠아월드, 연회장, 비치호텔, 컨벤션센터, 해양심층수 스파 등을 갖춘 해양 리조트가 들어선다.
가는길/
수도권~삼척 : 영동고속도로→강릉JC→동해고속도로→동해TG→삼척
부산~삼척 : 경부고속도로→경주TG→포항(7번 국도)→영덕→울진→삼척 또는 부산(경부고속도로)→금호IC(중앙고속도로)→영주TG→봉화→태백→삼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