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시장 '선지국밥' 골목
인심과 정이 살아있는 곳
예전부터 부전시장은 나물시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부전역에 완행열차가 쉬어가던 시절.
기장,일광에서 온 촌부들은,부전역 앞에서 직접 가꾼 나물을 내다팔곤 했다.
그래서 항상 부전시장은 싱싱한 나물들로 넘쳐났었다.
오죽하면 이들이 나물시장을 형성한다고 해서 부전역 입구를 따로 기장시장이라 했을까?
이들은 열차 시간 때문에 항상 아침을 거르고 부전시장을 찾았다.
새벽에 가지고 온 나물을 다 팔 때 즈음이면 해가 중천에 뜨곤 했다.
그 때 촌부들의 시장기를 해결해 주던 것이 그 시절 10원,20원 하던,부전시장의 시원한 선지국밥이었다.
부전 지하철역에서 서면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영남약국과 새부산약국 사이 골목.
그 곳에서 조금 올라오면 바로 7~8집의 선지국밥집이 보인다.
예전에는 죽이 맛있어서 죽 골목으로도 통했던 곳이다.
"오이소, 여가 맛있어예"
"여가 원조라예"
골목에 들어서니 정신이 없다.
목소리 큰 할머니에게 끌려 들어가 보니 마침 이 골목의 원조집이란다.
"40년쯤 전부터 했는데예,그 때는 난전에 천막치고 선지국을 팔았지예.
손님들은 기다란 나무의자에 서로 무릎 부디치가메 먹었고예"
"그 때는 모두 몬살았지. 돈은 주는 대로 받았고예. 요새는 잘 묵고 잘 사는기지 뭐…"
갑자기 옛 생각이 나는지 말 많던 원조집 할머니가 숙연해진다.
분위기를 바꿔 '이곳만이 가지는 선지국 맛의 특징'을 물었다.
그러나 잘못 물었다.
한 10여분을 계속 이곳 선지국 자랑만 해댄다. 요약해 보니
"한우의 신선한 피를 직접 받아 굳히므로 선지가 좋고,갈비 주위의 한우기름으로 국을 끓이니 구수하며,
신선한 야채를 사용하니 시원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단골을 위해 새벽 4~5시부터 국을 끓이기 시작하여 밤 9~10시까지 계속 은근한 불에 국을 끓이므로
국물은 진할 대로 진해서 '한 수저에도 피로가 확 풀린다'며 자랑이다.
선지국에 막걸리 한 병을 시킨다.
뚝배기에 선지국이 찰랑찰랑 한 고봉 들어앉았다.
고봉 위에 큼지막한 선지가 송송 썬 파와 함께 올려져 있다.
국물 위로 붉은 기름이 동동 뜨는 것이 침이 절로 고인다.
한 입 떠먹는다.
진한 소고기 국물이 입안 가득 퍼지며 구수하기 짝이 없다.
가끔 파가 씹혀 신선하고 향기롭기까지 하다.
느끼한 맛은 매운 양념 맛에 사라진지 오래다.
국물의 매운 맛이 입술 언저리를 쏘듯이 자극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다.
막걸리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고 선지 한 입 뚝 떼어 입에 넣는다.
살강살강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선지 특유의 비린 맛은 맵싸한 선지국물에 의해 없어지고,
그래도 느끼하다 싶을 땐 깍두기 한 입 씹어 먹으니 입 안이 오히려 개운하다.
옆자리의 주부들이 "콩나물과 무가 사각사각 해서 맛있다"며 좋아들 한다.
계속 불을 넣어 끓이는데도 야채가 짓무르지 않는 것은 '중간 중간 야채를 계속 새로 넣어주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국에 짠 내가 없이 시원한 것 같다.
맛있게 먹으니 그저 좋은지 "좀 더 잡소" 하며 묻지도 않는데 그릇을 채간다.
아이고, 앞에 놓인 선지국이 또 한 그릇이다.
이 곳은 동네인심처럼 더 달라고 하면 '무한정 리필'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렇게 주고도 참 착한 가격이다.
부전시장 선지국밥 골목.
아직도 옛 인심과 정이 듬뿍 묻어 있는 곳.
부전장을 보다가 출출할 때면 필히 이 골목에 와서 추억과 사랑을 먹어봄직도 하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