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은 비틀스 해체 후 솔로 활동에 나섰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작은 사진 오른쪽)는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티스트 커플처럼 보였다.
팬이자 암살자 “내가 죽였다” 너무도 당당
[일요신문]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스를 이끌었던 존 레넌은 1970년 그룹 해산 후 솔로의 길을 걸었고, 반전 운동의 핵심적 인물이 되었으며, 뮤지션을 넘어 정치적 셀러브리티의 길을 걸었다. 그의 노래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였고, 오노 요코와 함께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티스트 커플처럼 보였다. 하지만 1980년, 그는 4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에게 다섯 발의 총을 쏜 남자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당시 25세였던 그는 레넌의 팬이자 동시에 강박증에 사로잡힌 암살자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넌이 아내 오노 요코 그리고 다섯 살 된 아들 숀 레넌과 함께 살고 있는,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빌딩. 오후 손님은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였다. <롤링스톤스>에 실릴 레넌과 오노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아파트를 찾았던 그녀는 3시 30분에 일을 마치고 떠났다. 그 다음 DJ인 데이브 숄린과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한 레넌은 오노 요코와 함께 ‘레코드 플래닛 스튜디오’로 떠날 예정이었다. 오노가 부른 ‘Walking on Thin Ice’ 믹싱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때가 오후 5시 40분이었다.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아파트에서 나와 리무진에 타려는 레넌에게 몇 명의 팬이 다가왔다.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었고, 레넌은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들 중 한 남자는 앨범 재킷 위에 사인을 요구했다. 사인을 해준 후 레넌은 “더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미소 지으며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그의 이름은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약 5시간 후, 자신에게 사인을 해준 스타를 잔혹하게 살해한 바로 그 남자였다.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그는 레넌을 만나기 위해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뉴욕까지 긴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다. 초행은 아니었다. 그는 4개월 전인 8월에도 레넌을 죽이기 위해 뉴욕에 온 적이 있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고 하와이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엔 단단히 마음먹은 듯했다. 그래서 아파트 밖에서 레넌을 기다렸고, 뭔가 결심을 하려는 듯 직접 대면까지 했으며, 놀랍게도 그가 레넌에게 사인을 받는 장면을 포토그래퍼 폴 고레쉬가 우연히 찍기도 했다.
그는 오전 내내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며 고민했던 듯하다. 그러면서 유모와 함께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숀 레넌에게 접근해 손을 가볍게 만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후에 잠깐이나마 레넌을 만났고, 이후 다시 기다렸다. 코트 속에 차터 암스 38구경 리볼버를 감추고서 말이다. 레넌이 돌아온 시간은 오후 10시 50분이었다. 오노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생각이었지만, 아이에게 굿나잇키스를 하고 오겠다며 집으로 향했던 것. 그때도 아파트 주변엔 몇 명의 팬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팬들과 잠깐이라도 만날 생각으로, 빌딩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도로에서 내린 후 걸어갔다.
이때 빌딩 정문 근처의 아치웨이(지붕이 있는 길) 아래의 어둠 속에서 채프먼이 걸어나왔다. 그는 레넌의 등 뒤에서 총을 쏘았다. 3~4미터 뒤였다. 첫 발은 빗나가 건물 창에 맞았다. 하지만 두 번째 총알은 그의 등 왼쪽에 명중했고, 이후 총알들도 레넌을 관통했다. 그가 사용한 할로우 포인트 총알은 인체로 들어가 조직에 엄청난 손상을 입히는, 강력한 탄환이었다. 채프먼이 쏘기 전에 “미스터, 레넌!”이라고 레넌을 불렀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확실하진 않은 사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사격 자세를 취한 채 다섯 발의 총을 쏘았고, 레넌은 그 중 네 발을 맞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빌딩 정문의 로비 쪽으로 걸어갔지만 곧 쓰러졌다. 품에선 방금 전에 작업했던 카세트 테이프가 쏟아져 나왔다.
건물 수위인 제이 해스팅스가 뛰어나왔다. 흥건한 피를 본 그는 레넌의 셔츠를 찢어 지혈을 하려 했지만, 상처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유니폼 재킷을 벗어 레넌의 상체를 덮은 후 피로 물든 레넌의 안경을 벗기고 경찰을 불렀다. 건물 도어맨인 호세 페르도모는 황급히 달려가, 총을 든 채프먼의 손을 발로 찼다. 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채프먼은 코트와 모자를 벗었다. 경찰이 왔을 때 자신에겐 그 어떤 무기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행동이었다. 페르도모는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채프먼은 대답했다. “예. 존 레넌을 죽였지요.” 그리고 인도에 앉았다.
곧 경찰이 와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채프먼은 전혀 저항하지 않았고, 그가 사용한 총은 길에 떨어져 있었으며, 그의 손엔 샐린저의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몇 분 후 또 한 팀의 경찰이 도착했다. 그들은 앰뷸런스를 부를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경찰차에 태운 채 루즈벨트 호텔로 달렸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레넌에겐 맥박도, 호흡도 없었다. 소생술을 행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사망 시간 11시 15분. 검시 결과 혈액 감소성 쇼크가 사인이었다. 총격에 의해 대동맥이 잘렸고, 혈액의 80퍼센트가 출혈된 상태였던 것이다. 의사의 사망 진단이 이뤄지자, 병원 전체엔 비틀스의 노래 ‘All My Loving’이 흘렀다.
뒤늦게 달려온 오노는 레넌의 죽음을 접하고 병원에 주저앉아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했다. 극심한 고통을 잊으려는 행동이었다. 이때 간호사가 레넌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가져다 오노에게 건넸다.
그때서야 그녀는 안정을 취할 수 있었고, 의사에게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TV를 통해 아빠의 죽음을 접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병원엔 ABC 방송사의 뉴스 프로듀서였던 앨런 와이스가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응급실에 와 있었다. 그는 레넌의 죽음을 방송사에 알렸다. 풋볼 경기 중, 캐스터인 하워드 코셀은 6년 전에 레넌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경기 중에 비극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망설였지만 결국 작전 타임 시간에 입을 열였다.
“이것은 단지 풋볼 게임일 뿐이며, 누가 이기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방금 말하기 힘들 정도로 비극적인 뉴스가 전달됐습니다. 존 레넌이 총에 맞았고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사망했습니다. 이 뉴스를 전했으니, 이젠 더 이상 중계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오노 요코는 짤막한 메시지를 언론에 전했다.
“존 레넌의 장례식은 없을 겁니다. 존은 인류를 사랑했고 인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존을 위해 그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러브, 요코 앤 숀.”
하와이서 뉴욕까지 온 암살자 채프먼(오른쪽)이 총을 쏘기 전 존 레넌(왼쪽)에게 사인을 받고 있는 모습.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Imagine - World Version
https://youtu.be/L7IP4UlXvG8
첫댓글 참 안타까운소식을 전해듣고 그때는 마음이 우울햇어요~~팬이었는데 그럴수가있나 해서요~~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 40대가 고비이네요~~
누구든 언제든, 아무 관계도 없는 인간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총 맞아 죽을 수 있는 아름다운나라..지금도 총기 판매가 합법인 미국 ㅠㅠ
@춘수 그래서 가끔은 총기난사사고소식이 전해지고 있지요~무고하게 희생당한사람들이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