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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태풍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또 올라오고 있다는데 제발 그냥 빗겨 가면 좋겠습니다. 아직 회복도 하지 않았는데 엎친데 겹치라고요?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덕인가, 아직 더위도 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흐린 하늘에 더위까지, 여름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로 다 끝나면 좋겠습니다. 태풍도 더위도 흐린 날씨도 이제 물러갈 만한 때 아닌가요? 가을을 보고 싶습니다. 9월도 중순인데 말입니다. 약수터 시원한 물에 얼굴과 목을 쓰다듬지 않아도 되는 날씨로 가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순으로 넘어가는데 말입니다.
K -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의 위상은 오히려 세계적 문화 팬데믹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오직 한 분야만 제외하고는 아마도 과연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긍정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직 한 분야, 그것만 제외한다면 정말 완전체인데 말입니다. 그게 어딘가요? 우리의 민주주의도 빠른 시간 내에 정착하였지만 아마도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듯합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저들을 먹여 살리느라 우리 국민들이 꾹 참고 수고하고 있으니 대단한 국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꼴사나운 싸움 구경 더 안 해도 되는데 우리가 그 값까지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아무튼 또 주말입니다. 나갈 일도 없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이 그립습니다. 하기야 하늘이 노래도 마음은 파랗게, 건강하고 즐겁게 주말을 맞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주말을 빕니다. *)* 김종우 목사 드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편 127 : 1)
<리미트>
오래 전에 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감정을 뭐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하늘이 노래졌다고 할까요? 잠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이 캄캄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사색이 되어 들어온 아내를 진정시키며 상황을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그 날 이사를 왔기에 주변 지리도 잘 모릅니다. 이른 밤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어린 딸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 근처 시장에 갔습니다. 잠시 물건을 사는 동안 돌아서니 딸이 없어진 것입니다. 일단 아파트 경비실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송을 부탁했습니다. 다섯 살 여자 아이를 잃었습니다. 발견하시는 분은 아파트 경비실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한 시간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와서 아이를 확인하라고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날도 어두워졌는데 웬 일로 아이가 혼자서 울며 두리번두리번 걸어가더랍니다. 그래서 방금 전 방송을 들었기에 아파트 경비실로 데려왔답니다. 온몸에 맥이 팍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자식을 잠시라도 잃어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종 아동 찾기 운동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려서 아이 지문을 등록해두면 훨씬 쉽고 빠르게 찾을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를 발견한 사람의 마음이 먼저일 것입니다.
아동 납치, 유괴, 실종 등의 사건입니다. 신고를 받아도 비록 경찰이기는 하지만 남의 일로 받았을 수 있습니다. 사실 내 가정과 내 아이 사정이 우선일 테니까요. 내 아들이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1순위이고 다른 아이 사정은 2순위입니다. 마땅히 주민의 안전과 복지를 생각해야 하는 직업상의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건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방책을 생각하고 의논하고 결정하여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내 자식에게 일어난 사건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당황하고 이성적 사고방식에 혼돈이 오기 쉽습니다. 소위 정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뭔가는 해야 하는데 그 뭔가가 뭔지 모릅니다.
유괴 납치 사건 얼마 후 범인인 듯한 사람이 자기에게 전화합니다. 이 작자가 어떻게 내 아들에 대해서 알지? 더구나 아들을 데리고 있답니다. 놀랍고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선물 택배가 배달됩니다. 경찰들이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하며 선물 포장을 풉니다. 놀랍게도 어린아이 손가락입니다. 일단 납치당한 아이의 것이라 짐작하고 유전자 검색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수상해서 아들이 가지고 놀던 종이접기 하나를 유전자 검색용 물건들 속에 껴 넣습니다. 얼마 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정작 신고된 여아의 손가락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종이접기에 있는 지문의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담당을 맡은 경찰인 ‘소은’의 아들의 것입니다.
납치범은 신고한 피해자와의 협상을 소은에게로 옮겼습니다. 피해자 주변에는 경찰이 너무 많이 붙어있으니 받아내야 할 돈을 쉽게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담당경찰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의심할 리도 없을 것이고 다른 경찰들을 따돌리기도 쉽다고 생각했겠지요. 머리 좀 쓰는 납치범입니다. 소은이는 사실을 보고할 수도 없습니다. 아들의 생명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상사, 동료들을 피하며 범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합니다. 납치범이 경찰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담당경찰이 자기편 경찰을 따돌려야 합니다. 결국은 소은은 자신이 이놈들을 찾아내서 끝장을 내야겠다 결심합니다. 피해자 아이 엄마가 물었었지요. 당신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의 심정을 헤아립니다. 잡아 죽일 겁니다.
내 아이가 귀중하듯 다른 사람의 아이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등하게 여기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내 아이가 우선입니다. 한 여아를 유괴 납치한 사건이 접수됩니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아이의 병력도 나오고 가족의 지난 행적도 나옵니다. 얼마 전 가족이 필리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이의 난치병을 치료하였습니다. 불법 장기이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맞는 장기를 찾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였겠지요.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보다는 타국에서 하는 것이 보다 빠르고 손쉬운 길이었습니다. 돈만 있다면 길은 있을 터, 그러나 여기서든 거기서든 불법은 불법입니다.
그것을 빌미로 장기 밀매업자들은 더 욕심을 부리며 더 뜯어내려 합니다. 불행히도 이 일에 경찰인 소은이가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옥이 된 마음으로 아들 찾기를 벌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맞는 장기가 그리 쉽게 나타나겠습니까? 불법은 누군가의 불행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소은은 동료들을 피하며 악전고투를 합니다. 구성이 조금은 억지 같고 대처하는 방식에 현실성이 부족하다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건 자체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줍니다. 영화 ‘리미트’(Limit)를 보았습니다.
영생의 길, 아시나요?
전에 결혼생활에 대한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닌 듯한데 상황이 평소와 달라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강의를 듣는 청중 가운데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같이 섞여 있어서 처음부터 하나님을 언급하며 진행하기가 다소 부담스러웠습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질문해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실 질문도 아닙니다. 답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또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지요? 무엇이 사람이 되었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남자와 여자로 구별될 수 있었을까요? 동시에? 아니면 시간 차를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그런 우연이 두 번씩이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비입니다. 더구나 남자와 여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하신 일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도 지혜도 없습니다. 더구나 요 4 :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 눈에 보이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알려고 한다 한들 아마 방법조차 찾기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당신을 알려주시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소위 계시의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계시’란 펼쳐서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보려고 해봐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열어주시든지 아니면 당신 자신이 무엇인가 우리 눈에 보이도록 어떤 형태를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봅니다. 창 18 : 1 - 2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즉 당신이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예를 보겠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아람 나라 왕의 하는 말을 다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니 전쟁을 해도 이스라엘에게 패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람 왕이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 엘리사의 거처를 포위합니다. 선지자의 사환이 나와 보고는 겁에 질려 선지자에게 고합니다. 왕하 6 :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6 - 17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멘! 여기서는 사람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게 한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이 역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똑같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나님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즉 겉보기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가 힘들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아무리 당신 자신을 증거해도 믿지 않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처럼 될 수 있는 분입니다. 전능하신 분이니까요.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내내 하나님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으니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보이는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이냐고 물리칩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개할 때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전지전능’이란 말은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알고 못하는 것이 없이 다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우리 눈에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또는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시 139 : 1 - 4 “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아멘! ‘무소부재’란 ‘없는 곳이 없다’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나 계시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기도하는 나의 기도도 들으시며 동시에 부산에서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도 들으십니다.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은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성도의 위기도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동시에 여기도 계시고 거기도 계실 수 있는 분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계실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고백합니다. 시 139 : 8 - 9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아프리카에 있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과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계신 분이니 우리에게 오라 가라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계신 곳에서 동시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어느 곳을 지정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오라 하십니다. 절기를 지켜도 정하신 곳에서 지켜야 합니다. 신 16 :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시간 장소 사람 어느 것 하나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당신의 사람으로 창조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배역하자 한참 기다리시고 노아를 택하십니다. 그러나 그 후손도 하나님에게 등을 돌립니다. 다시 세월이 지나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한 사람을 택하거나 부르시는 겁니다.
아무튼 아브라함 후에 그 자손들을 특별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세상에 하고많은 사람들이 있고 여기 저기 나라와 민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를 부르십니다. 창 12 : 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제 우리는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곧 아담을 택하여 언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었고 맡기신 세상을 뱀 곧 마귀에게 빼앗겼습니다. 그 후 죄가 관영한 아담의 세계를 심판하시고 노아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합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또 한 사람 모세를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구태여 하나를 불러서 일하십니까?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고 그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창 2 : 8 - 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자, 그 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를 해하게 하는 나무도 있었으니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의를 주셨습니다. 16 - 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당신의 사람이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도 그것입니다. 다만 그 말씀하신 것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신 5 : 33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아멘! 어디서 오래 산다고요? 하늘나라가 아니고 ‘땅에서’입니다.
다른 곳을 보겠습니다. 신 11 :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그렇지요? 뭐 하기만 하면? 8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그리하면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면 그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도 그것입니다. 요 3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자녀가 영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요 6 :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도 우리는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요 17 :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선 알 것은 영생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모르고는 영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도 오래 전부터 당신의 백성이 바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호 6 :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가능하지요.
서두에서 말씀한 것처럼 우리는 육체를 가진 존재이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두 가지 사실이 가능하게 해줍니다. 하나는 요 1 :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므로 말씀을 알면 됩니다. 그리고 요 1 :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에 비추어 보건대 둘째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하신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요 17 :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정리해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또 그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 방법도 예수님을 아는 방법도 바로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더구나 감사하게도 그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또한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 백성의 역사와 하나님 백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계획 속에 바로 천국 비밀, 즉 영생의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놀라운 비밀은 하나님 백성만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 이외에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영생과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 집에 우리 자녀들이 아닌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들어와서 헤집고 논다면 부모로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기분 나쁘지요.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마 7 : 13). 마 7 : 14절에서도 말씀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어렵지요.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찾는 사람도 적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성경 속에는 영생과 천국의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나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비밀이고 우리는 그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한 나라, 한 민족, 한 사람을 택하여 당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 등등. 사도 바울도 이 사실을 알고 그렇게 부탁하였습니다. 딤후 2 : 2 “또 네가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잘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다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많은 유대인들 중에서 먼저 열두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전하여 점점 그 수가 늘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보내신 목자인 예수님을 통하여 12 제자가 부름을 받았고 그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전파되었고 다음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계에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하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 이루어질 계 1 : 1절에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 이루실 말씀 곧 계시가 여기서도 동일한 순서로 나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천사에게 다음으로 사도 요한에게 그리고 나서 그 종들에게로 이어집니다. 잘 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먼저 하늘에서 전달되고 다음으로 어떻게 땅으로 전달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에게 넘겨주십니다. 다음 예수님은 천사에게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하늘 곧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천사도 모두 영으로 영계에 있습니다. 잘 생각하면 이 천사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바로 ‘진리의 성령, 보혜사’입니다. 요 14 : 16 - 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어쩌면 번거롭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 믿습니다. 예수님이 이 천국 비밀을 암호와 같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왜 드러내놓고 말씀하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시느냐고 묻지요. 그 때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마 13 : 10 - 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그렇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천국 비밀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시 ‘저희’라고 불렸던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저희’가 이방인, 불신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거 아닙니다. 어디서 나뉩니까? 같은 밭, 곧 같은 백성 가운데서 나뉩니다. 오늘로 말한다면 같은 교회에서 갈라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저희’가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영적 지도자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멸시하고 핍박하고 나아가 결국은 죽이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알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참으로 웃기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의 눈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꾸짖은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 15 :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즉 그들은 ‘장로들의 유전’ 다시 말해서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아버린 자들이었습니다. (마 15 : 1 - 10)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당시 어쩌면 그들만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 특권을 누린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자기 임의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2 :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하나님의 맡기신 성도들을 가르친다면 하나님의 눈 밖에 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경고하셨지요. 마 7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멘! 자기는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옛날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부른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즉 그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하나님께로 물리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신약의 비밀인 이 천국의 비밀을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자 영생의 길을 아십니까? 가장 기본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대로 깨닫고 알고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십니까? 혹 옛날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구약의 약속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오신 목자를 몰라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약의 약속대로 오시는 목자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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