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내편 중 ‘소요유’ 를 읽고>
소요유의 의미를 보면, ‘소요’는 별다른 목적 없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는 뜻이고, ‘유’는 한자 ‘놀 유’라고 한다. 즉 소요유는 별다른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논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 중 혜자와 장자의 대화가 가장 인상깊었다.
“당신은 살쾡이를 본 적이 있느냐? 살쾡이는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면서 사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덫에 걸리기도 하고,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저기 태우는 저 구름을 가릴 만큼 크지만 쥐 한 마리도 못 잡는다. 그대는 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유유자적하지 않는가? 이 큰 나무는 도끼에 잘릴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 자가 없으니 세속적인 쓸모가 없긴 하지만 괴롭게 여길 것이 하나도 없도다!”
이 문장은 장자가 말한 문장으로, 사자성어로 무용지용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즉, 나는 살쾡이의 삶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덫에 걸리고, 그물에 걸리는 일이 일차적으로 생각하면 안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부딪히고 도전하는 일이 현대 사회에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장자의 의견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태우는 쥐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말을 현대사회와 결부해 생각해보면 기회가 있어도 잡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과연 우리가 행복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장자의 의견인 별다른 목적 없이 괴로움 없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도 어느 정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유연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오는 기회까지 날려버리며 괴로움 없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지금 세상에서는 언젠가 큰 괴로움으로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연하게 기회는 잡고, 하지만 또 너무 악착같이 사는 것은 아닌 그런 삶이 장자의 의견과 조화를 이룬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