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곡양수덕사석조상 铁器时代 · 曲阳修德寺石造像
출처: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허베이성 취양시 수덕사 탑은 북위부터 당나라까지 한백옥의 석조 불교 조형물입니다.
1953년 허베이성 취양현 남서쪽 수덕사의 탑 밑에서 발견되었고, 1954년에는 송나라 절터 아래에서 석조상들이 발굴되었으며, 총 2,200여 점의 조각상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247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위(北魏) 신구(神龜) 3년(520)부터 당천보(唐天寶) 9년(750)까지 230년 동안 북위, 동위, 북제, 북제, 수나라의 5대에 걸쳐 동위, 북제, 수나라가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은 작은 단량체상이며 일반적으로 잔류 높이는 약 20~30cm입니다. 반제품과 소량의 돌도 함께 나옵니다. 수덕사 석조상의 발견과 출토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불교 고고학의 중요한 수확입니다. 석조품은 현재 고궁박물관과 허베이성 박물관에 주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 출토 백석 석가다보불좌상(북제) 높이 29cm, 폭 17cm
수덕사 기년조상 중 수대업 연간이 48구로 가장 많고 북제 천보 연간이 33구로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수덕사 석조상의 소재는 석가와 미륵보살신앙 위주에서 아미타불과 보살신앙을 중시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 출토 백석쌍관음보살입상(북제) 높이 12cm, 폭 10.5cm
무량수불과 아미타불 조상은 북제에 나타나 수나라 때 미륵보살의 수를 넘어섰습니다. 연대기에서 보살상의 비율은 북위의 35%, 동위의 75%, 북제의 82%, 수의 93%입니다. 이러한 증가하는 경향은 하층민의 신앙적 요구와 불교의 세속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스타일링에서도 날씬한 몸매에서 방이의 왜소하고 통통한 몸매, 볼륨감 있고 늘씬한 몸매로 변신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불의는 원래 포의박대(褒衣博帶)에서 경박투체(轻体透體)와 간결한 의문의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조각상의 얼굴, 북위의 자애롭고 엄숙함은 당나라의 평이한 친밀함으로 대체되었습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 출토 백석관음보살상(북위) 27.5cm
북위 석조상의 소재는 주로 미륵보살(7구)이고 관세음보살(4구)과 석가불(2구)이 그 뒤를 잇습니다.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조각상은 네모난 얼굴, 앞쪽으로 기울어진 머리, 가늘고 긴 목, 엄숙하고 자상한 표정으로 북위 말기의 새로운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옷 주름은 두껍고 무거우며 대부분 삼각형이거나 겹칩니다.
광배는 배 모양으로 몸을 들어올리고 연꽃과 화염무늬를 장식합니다. 불상은 대부분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으며, 불의 자락은 겹겹이 호 모양으로 불좌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보살상은 치마 밑에 양장식 회곡문을 만들었습니다.
정광 2년(521) 조자(趙子)는 미륵상과 효창(孝昌) 원년(525)에 관상음상을 만들고, 관대는 밖으로 휘날리며, 치마 옷자락의 양끝은 예각으로 뻗어 있고, 모양은 균형 잡힌 형식미를 추구합니다. 이것들은 북위 말기 불교의 융성을 반영하고 동위 조상의 다양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했습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 출토 백석관음보살입상(동위)은 높이 29cm, 폭 13cm로 동위 석조상 미륵상이 격감(1구)되고 관세음상이 증가(13구), 석가다보병좌상(4구)과 사유보살상(9구)이 있습니다.
동위조상의 변화는 흥화연대에서 시작하여 무정연대에 이르러 정형화되었습니다. 무정 6년(548) 추중화조좌불상은 가사가 얇아지고 옷주름은 쌍구음선을 사용하였으며, 불좌를 덮고 있는 불의의 자락은 불규칙하게 접힌 회전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체 이미지의 모양은 간략한 경향이 있고 머리 부분의 비율이 작아 북위 조형물이 북위 조형물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냅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 출토 백석 반가사유보살좌상(북제) 높이 33cm, 폭 18.5cm
북제 석조상은 무량수불과 아미타불(각 1구)을 비롯해 쌍석가상(1구), 쌍사유보살상(8구), 쌍관세음상(8구), 쌍보살상(19구) 등 양존상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보살상은 이 시기 전체 조형물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북제조상의 양식은 동위(東魏) 무정(武定) 연간에 계승되어 천통(天統)을 전후하여 조성되었습니다. 조상은 근육이 볼록하고 얼굴이 통통하며 옷주름이 간결하고 이중 갈고리 방법 대신 음실을 자주 사용합니다. 가사피복불좌가 점점 짧아집니다. 모양이 약간 무겁고 불의가 가벼워졌습니다.
▲ 하북 곡양 수덕사에서 출토된 백석보살 제자입상(북제)은 높이 40cm, 폭 26cm로 수당 석조상 수나라 때 무량수라는 역명이 아미타로 완전히 바뀌어 삼존상이 나오고 보살상의 비율이 증가했는데 이중 쌍보살상은 34구, 미륵보살은 1구뿐이었습니다.
불상의 모양은 여전히 정교하고 보살상은 대부분 거칠고 관복이 간단하며 옷주름이 간단하고 모양이 둔합니다. 당나라 조상들의 주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아미타불과 쌍아미타불이 전체의 약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조형물의 형태는 포동포동하고 편하며 부드럽고 다양한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4세기 중엽 후조 때 불도징(佛圖澄)의 선교 활동과 함께 현재 허베이성 스자좡(石家庄) 지역에서 불교가 성행하여 당시 북방 불교의 요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유구한 문화 전통과 함께 현지에서 한백옥이 많이 생산됩니다. 이것은 정주를 중심으로 한 불교조상공예의 발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였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딩현 북제 영효사 터와 탕현, 왕두 등지에서 여러 차례의 한백옥 석조상이 출토되었는데, 명확한 기년이 있는 것은 대부분 동위 이후에 딩저우 불교 조상이 전성기에 접어들었고 수나라와 당나라까지 쇠퇴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이 기간 동안 북방 조형물의 시기, 유형 및 지역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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