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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 맺는 달☜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순종하면 축복.
잠언24:8-34절) 지혜로운 자의 처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운(運)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성공한 사람은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운이 나빠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히 모든 일을 겪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인간에게 성공과 실패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복(福)을 받으면서도 왜 자기가 복(福)을 받는 줄 모르고, 또 실패(失敗)하는 자들은 실패하면서도 왜 실패하는지 모르니까 운(運)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축복은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복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복을 받으면서도, 왜 자기가 복 받는지를 모르는 것을 성공했다고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복을 끝까지 받을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잠언 8절부터 22절까지는 30가지 요점 중, 23번째부터 30번째까지 여덟 가지 교훈이며, 끝에 23절부터 34절까지는 또 다른 보충적인 교훈입니다.
그래서 30가지 교훈은 단순히 30가지가 전부가 아니라, 30가지에다가 보충적인 교훈이 추가로 더 있는 것입니다.
Ⅰ.어리석은 자의 특징
잠언에서 어떤 사람에 대하여‘어리석다’고 하든지, 혹은‘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나,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자기의 머리나, 인간적인 생각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스물세 번째 교훈은 악(惡)을 행하기를 꾀하는 자는 결국 사특(邪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4:8절)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란 처음부터 악한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인간의 지혜를 따라 성공하려고 하거나, 출세하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이 세상에서도 사악(邪惡)한 자 즉 거짓된 자로 판명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모든 인간은 거짓되며, 사악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지 않는 자는 사악(邪惡)한 자가 될까?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할 수만 있으면, 거짓된 방법을 써서라도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자는 마음속에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즉 양심을 속여가면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마음속에는 십자가가 있어서, 나도 십자가를 넘어서 세상으로 갈수 없고, 세상도 십자가를 넘어서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래 전 서울에서 어떤 분을 한 분 만났는데, 그 분은 저에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혜를 주셔서 많은 돈을 벌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에게 하나님이 무슨 지혜를 주셨느냐? 고 하니까 이분은 유명 브랜드 상품을 똑같이 가짜로 만드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고 있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사악(邪惡)한 죄입니다. 아마 그 후에도 회개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했더라면, 분명히 감옥(監獄)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또 전에 어느 교육감이 선거 때, 어느 후보에게 돈을 주었다고 해서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 똑똑한 사람이 그런 유혹에 넘어간 것은 그가 인간의 지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자였다면, 상대방 후보에게 어떤 형태로든 돈을 주어서 사퇴를 시키는 것은 무서운 죄이며. 그렇게까지 해서 당선되는 것이 전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과연 어디까지 해도 되는 일인지, 또 어디부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구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아무리 성공이나, 출세가 좋아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線)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은 해서는 안 되는 선(線)을 넘어서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크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이것입니다.즉 새나 물고기를 예(例)로 들어서 생각해 볼 때, 아무리 새가 높이 날고 멋이 있어도 그물에 걸리면, 소용이 없고, 물고기가 아무리 멋있게 헤엄을 쳐도 낚시 바늘에 걸리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나 물고기가 그물이나 바늘에 걸리지 않으려면, 함부로 그물 가까이에 가지 말아야 하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성공이 널려 있는 것만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그물과 낚시 바늘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스스로의 욕심을 죽이고, 또 죄를 지었을 때, 그때그때 회개하는 것이 나중에 망하지 않는 비결인 것입니다.
24:9절)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여기서 미련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가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결코 죄의 유혹(誘惑)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죄가 주는 달콤한 것만 눈에 보이고, 그 뒤에 쳐져 있는 무서운 그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게 보이지만, 그 뒤에 반드시 그물이 있고, 바늘이 있어서 한번 코를 꿰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하게 됩니다. 만일 입에 낚시 바늘이 걸린 물고기가 살려고 하면, 입을 찢고, 도망을 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에 한번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한번 죄를 지어봤으면? 하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경은 죄를 지어서 비참하게 망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여기서 *거만한 자*도 하나님의 지혜를 믿지 않고, 자기 머리를 믿는 자를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머리를 믿는 자는 그 자체가 이미 욕심에 사로잡힌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자는 일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공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사람이 나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발톱이나 이빨 같은 공격용 무기가 전부 다 뽑히게 됩니다.
우리는 이리 떼가 어슬렁거리는 들판에 있는 양(羊)이 되어 물려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도망쳐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즉 이런 사람은 공격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양(羊)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걱정은 우리가 양(羊)이 되면, 다른 사나운 사람들에게 물려 죽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양(羊)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牧者)가 되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지켜주실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양(羊)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리나 늑대의 하나님은 되어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강한 맹수가 오면, 물려서 죽게 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약(弱)한 양(羊)들은 살아남는데, 사나운 늑대나 이리는 물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하나님의 *정글법칙*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양(羊)으로 남았더라면,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망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맹수로 변했기 때문에 앗수르나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스물네 번째 교훈은 신앙은 위기 때,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4:10절)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시50:15절)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환난날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환난날에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주시며,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일 년을 살 다보면, 언제나 좋은 날씨만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때는 태풍이 몰아치거나 혹은 홍수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큰 비가 내리고, 비바람이 불 때, 든든한 산성이나 바위가 되어주셔서 안전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이 들판을 걸어가다가 큰 비를 만나게 되었는데, 가까운 곳에 큰 동굴이 있다면, 그 동굴 안에서 얼마든지 편하게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동굴이 없이 큰 비바람을 만나게 되면, 비를 쫄딱 맞으면서 추위에 벌벌 떨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것과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평소에는 그 차이를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비바람이 불고, 환란이 왔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앞으로 살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아무리 환란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속에는 언제나 따뜻한 사랑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자기 머리만 믿고, 살아온 사람은 환난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기가 꺾여 버리게 됩니다.
본문에서 *네 힘의 미약함을 보인다* 는 것은 힘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지혜의 성공은 환난이 올 때까지 통하는 것이지, 그 후에는 맥을 추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아무리 환난이 와도 무엇인가 마음에 든든한 것이 있고 이상하게 어떻게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환난날에 그 진가(眞假)를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물다섯 번째 교훈은 진정한 성공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11절)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결국 세상의 성공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 있는 것을 많이 모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부자(富者)가 되고, 학자(學者)가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성공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죽을 줄도 모르고, 죽는 길로 가는데, 그 사람을 지켜서 살게 하는 성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있는 돈이나 지식이나 인기를 모아서 내 것으로 만들면, 이것은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이고, 내 재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도와주어서 망하지 않게 하면, 결국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이지, 내가 잘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목숨 걸고 건져주면, 그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 한번 꾸벅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내가 땅에 떨어진 돈을 줍거나, 보따리를 주우면 영구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더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부(생명록)를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장부(생명록)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또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전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장부(생명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내가 멸망할 사람을 얼마나 살렸는가? 혹은 죄에 빠진 사람을 얼마나 건져내었는가? 하는 것만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람의 가치(價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미움과 악독만 가득했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사랑이 가득하게 되었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성공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모르고, 사치와 방탕을 위해서 살았는데, 어느 날 나를 통해서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면, 나의 장부(생명록)에 엄청난 가격이 기록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한 사람이라도 은혜 받고 변화되는 것이 그야말로 최고로 큰 장사이고, 수익(受益)이 높은 사업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滅亡)의 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살육(殺戮)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살륙=범죄자를 찔러죽임)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건져내야 하는데, 본인들은 그것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우리 자신이 변화된 모습입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을 죄(罪)에서 떠나 의인(義人)이 되게 했다면, 하나님은 내 장부(생명록)에 의인(義人)의 상급(賞給)의 갑절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는 사람이 되게 했다면, 예언자(豫言者)의 상급(賞給)의 갑절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 상급(賞給)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내 도움으로 은혜(恩惠)를 받고, 구원(救援)을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우리의 이 모습을 누군가는 반드시 보고, 은혜를 받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큰 상급(賞給)이 되는 것입니다.
24:12절)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이럴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은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이 있는 줄도 몰랐고, 심판(審判)이 있는 줄도 몰랐고, 특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몰랐다는 변명이 통할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이렇게 머리가 좋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성공하려고 하기 이전에 누가 나를 만드셨으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그런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인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지진(地震)이나, 태풍(颱風)이나, 기근(飢饉)이나, 혹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통해서 *최후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기서 하나님은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특히 인간들의 마음이 과연 하나님을 향하여 기울어지는지, 아니면 욕심을 향하여 기울어지는지, 저울질 하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묵직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 세상욕심으로 바람에 나는 겨같이 가벼운지, 달아보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재주나, 말솜씨나, 돈 버는 재주로 달아보지만, 하나님은 우리 중심(中心)의 무게를 보시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지키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영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탄(詐誕)은 죄를 통해서 우리 영혼(靈魂)을 도둑질하려고 하며, 또 죄를 통해서 우리 영혼을 좀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다른 것으로는 우리 영혼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담가야 하고,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야만 우리 영혼이 상하지 않습니다.
요즘 기도의 동역자 경북 지역에는 안동 간 고등어가 인기가 있는데, 고등어가 상하지 않으려면 싱싱한 고등어를 사서 안팎으로 소금을 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말로 공격을 하면, 마음이 상(傷)하게 됩니다. 즉 우리 마음이 찢어지면서 피가 흐르는데, 지혈(止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더러운 생각을 하거나, 음란(淫亂)한 것을 보면, 마음이 더러워져서 상한 냄새가 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치료받는 것이 인생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욕을 잘하고 너무나 거짓말도 잘하며, 다른 사람을 마치 종 다루듯이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영혼이 병들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위(行爲)대로 보응(報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祝福)하실 때, 세상적인 조건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장부(생명록)를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큰 복(福)입니다.
Ⅱ.의인의 처신
스물여섯 번째 교훈 역시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것으로서 자녀들에게 *꿀을 먹으라*고 권고합니다.
24:13절)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자는 이 세상에 먹을 것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아이들에게 꿀을 먹으라고 했을까? 옛날에는 요즘같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間食)이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독(毒)이 있는 것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지혜자는 아이들에게 꽃 안에 있는 꿀은 독(毒)이 없어서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 *꿀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꿀 중에도 *송이 꿀을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송이 꿀은 일단 벌이 꽃 속에서 꿀을 먹고, 이것을 자기 집에 가지고 와서 토한 것으로서 이미 한번 소화가 된 꿀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몸에 가장 부담없이 흡수가 잘 된다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가 독감에 걸리거나 혹은 며칠을 굶어서 기력이 없을 때, 꿀물을 타서 주면, 정신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꿀을 먹으라*는 말은 비유적(比喩的)인 말씀입니다.
24:14절)지혜(智慧)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에게 받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이 있지만, 이것을 부모님이나, 목사님이 한번 먹고 실천해 본 것은 완전히 송이 꿀과 같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먹기만 하면 우리에게 양분(養分)이 되고, 축복(祝福)이 됩니다. 즉 목사님이나 부모님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자신이 먼저 실천해 보고 가르치는 것과, 실천해 보지 않고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다보면, 자기 자신도 소화가 덜된 말씀을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인들도 그 말씀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힘들어 할 때가 많습니다. 즉 변비나 설사 증세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결국 말씀이 소화되는데, 이 말씀들은 자녀들이나 성도들에게 그대로 복이 되는 말씀입니다.
즉 소화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의 미래가 있게 하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가지고는 길이 열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길이 열리고, 내가 소망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만화(漫畵)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만화영화가 나오면, 따라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 만화(漫畵)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컴퓨터 게임에 빠지게 되는데, 게임을 만든 사장이 고백하기를 *자신도 게임에 중독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이야말로 중독성이 전혀 없는 순수한 하늘의 양식(糧食)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다른 것들을 끊으려고 하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중독을 치료하며, 우리를 존귀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물일곱 번째 교훈은 악(惡)한 자에게 의인(義人)의 집을 엿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24:15절)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라.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악(惡)한 자가 의인(義人)의 집을 엿보는 이유는 남이 잘사는 것이 배가 아파서 약점(弱點)을 찾아 그 집에서 쫓아내려는 가명으로 가입한 정체불명의 스파이 먹튀입니다.
이 세상은 야생동물의 세계와 같아서 강(强)한 자는 약(弱)한 자를 쫓아내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악한 세상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은 누군가가 좋은 자리에 앉으면, 그 후에는 반드시 흔들어서 나무에서 떨어지게 하는 악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흔들어도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그 자리에서 떨어트리려고 하면, 약점(弱點)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큰 약점(弱點)이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기 때문에 즉 미련하게 약점(弱點)을 키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굳이 다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힘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내거나, 다른 사람의 집(아파트)이나, 재산(財産)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악(惡)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의인(義人)과 악인(惡人)의 차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24:16절)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은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연단(練鍛)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인은 연단(練鍛)을 받으면서 주인공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의인을 괴롭히는 사람은 의인의 교관(敎官)인데, 결국 자기 사명을 다 한 후에는 없어지게 됩니다.
즉 악한 자는 의인을 시기해서 실컷 훈련시켜놓고, 자기 자신은 전혀 훈련이 되지 못해서 엑스트라로 밀려나게 됩니다. 일단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대사나 말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 드라마나 영화를 끌고 가려면, 대사만 외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져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훈련시키는 장본인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악인도 언젠가는 힘이 떨어지게 되는데, 그때 악인은 끝장나게 됩니다.
스물여덟 번째 교훈은 *원수가 망할 때,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4:17절)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우리는 이미 앞에서 약(弱)한 자를 학대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약(弱)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서 내 인격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달아보시는 또 다른 시험이 원수(怨讐)가 망할 때, 내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평소에 나를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던 원수가 망하면 속이 시원하고 기쁠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마음에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이 망하는 것을 기뻐해야 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 안에는 아주 작은 진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아야 하고, 또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악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아량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는 승자로서의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너그러운 맛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악한 자가 망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면, 하나님의 저울에 우리의 인격은 형편없이 가볍게 나타날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슬픈 일을 당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같이 슬퍼하고, 위로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24:18절)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이 악한 자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구든지 마음에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이해해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강퍅한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너무 자존심이 강한 것이 좋지 않습니다. 때로 내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교훈은 *악한 자의 성공에 배 아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4:19절)너는 행악 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행악자들은 나쁜 짓하는 자가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나 부모님은 가난하고, 복을 받지 못하며,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적으로 나간 사람은 돈도 잘 벌고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난 것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고, 행악자는 마귀의 손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지팡이가 되는 이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데 팔십 년이 걸렸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후에는 돈이나 명예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세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이라고 해서 다 망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들도 이 세상에서는 한 번 큰소리치면서 잘 살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영혼에는 복(福)이 없습니다.
24:20절)대저 행악 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악인은 장래가 없습니다. 악인이 가진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악인은 죽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복마저 다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즉 악인의 명성이나 악인의 권세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의인의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서른 번째 교훈은 반역자의 그룹에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24:21절)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은 반역적인 본성이 치료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 자신이 더 똑똑한 것으로 착각해서 자꾸만 반역을 하려고 합니다.
대개 반골(反骨)기질이 강한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개성이 강한 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강한 개성이 가루가 되어 반죽이 되어야 능력을 주십니다. 요즘 우리나라 지성인들은 엄청나게 반항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느 순간에 폐기처분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무리하게 반대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그룹에 섞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이 없고, 하나님의 영(靈)이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靈)은 언제나 긍정적인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24:22절)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자는 어느 순간 갑자기 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건물로 치면, 뼈대가 되지 못하고, 거푸집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있다가 건물이 완성되면, 버리게 됩니다. 여기서 *그 둘의 멸망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반역적인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행악자로서 성공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사람들 앞에는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저울에 함량미달이 되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Ⅲ.추가적인 교훈
24:23절을 보면,‘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30가지 교훈을 수집한 후에 또 다시 *새로운 잠언으로 수집을 한 것*입니다. 잠언 25장부터 29장까지는 솔로몬의 잠언인데,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솔로몬의 잠언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는데, 뒤에 있는 것은 후대에 모아진 것들입니다.
본문 23절부터 34절까지는 독립된 한 단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는 스타일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설명이 약간 긴 것이 특징입니다.
24:23절)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재판할 때,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되어있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합니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자기 가족이나 좋아하는 학연, 지연,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려고 하거나, 관대하게 봐주려고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권위를 엄청나게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편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욱 엄격해야 하고, 더 인정사정없이 엄중하게 책망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가끔 기독교 안에서도 목사가 잘못했는데, 다른 목사들이 감싸고 도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목사의 위상을 떨어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비난을 받아야 하고, 책망을 받아야 하나님의 종의 권위가 서는 것입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기편에 속한 사람에게서 어떤 부정이 드러났을 때는 상대방의 부정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비난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국민들이 신뢰를 하게 됩니다.
오늘날 보게 되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은 없는 거짓말까지 만들어서 비난하면서 자기편의 사람들은 단순히 탄압을 받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배나 더 엄격하게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숨기려고 하면, 나중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불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4절)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자기편이라고 해서 얼굴을 봐주고, 얼렁뚱땅 넘어갈 때, 일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런 통치자를 지지해주지 않게 됩니다. 국민들이 저주하고, 우습게 아는 사람은 오래 그 자리에 있을 수 없고 또 좋은 업적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국민들의 지지(支持)입니다. 이런 국민들의 지지는 정직한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신선함입니다. 남의 잘못이나, 물어뜯으면서 자기 자리나 차지하려고 하는 자들을 국민들은 싫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24:25절)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그를 견책한다.*는 것은 강한 자이지만, 잘못을 저지른 자는 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힘이 있는 자를 벌주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잘못한자를 벌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수행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使者)입니다.
사람들은 힘 있는 악(惡)한 자가 벌 받는 것을 통해서 정의(正義)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멋있고 아름다운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두고두고 그 자손들까지 복(福)을 받게 됩니다.
24:26절)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르게 말하는 것은 친한 사람들이 서로 입 맞추는 것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때로는 힘이 없는 여인이나 약한 사람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어떤 인사나 축복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는 정의보다 더 높은 법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정직하고, 가혹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좋습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정의란 모든 것을 다 밝히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잘 권면해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24:27절)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여기서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라는 것은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너무 내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충분히 객관화시켜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또 밭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해서 집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 속에 있는 생각을 객관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성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성급하게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9.11테러 사건이 있은 후, 미군이 알카에다의 본부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주위에 있는 우방국들의 동의와 협력을 충분히 얻어서 침공을 했습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이 침공했지만 실패했을 정도로 지형이 어려운 지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우방국의 동의를 얻지 않고 독단적으로 침공했습니다. 그 결과 미군은 결국 이라크에서 엄청난 복병(伏兵)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거의 월남전처럼 수렁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충분히 비판받을 각오를 해야 국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24:28절)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요즘 사람들은 이웃에 대하여 근거 없는 루머를 퍼트려서 곤경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명으로 뒤에 숨어서 유명한 사람에게 대하여 악플을 달아 욕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에 대한 시기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공격을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나 유명해지지 않는 이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공격당해서 곤경에 빠지는 것을 즐겨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위증(僞證)입니다. 이것은 자기 영혼을 팔아먹는 것이고, 영원히 지옥(地獄)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성공하고 잘 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배 아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복(福)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24:29절)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며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복수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려면, 그 사람과 똑같아지든지, 아니면 더 악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당한 것에 마음이 아프기에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上)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상대하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즉 속이 좁은 사람을 매일 상대하다 보면, 우리 자신도 속이 좁아지게 되고, 속이 아주 넓은 사람을 상대하면, 우리 자신의 마음도 넓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매일 상대해야지, 인간을 상대하면, 그렇고 그런 사람밖에 되지 못합니다. 결코 복수(復讐)를 생각해서도 안 되고, 선언(宣言)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그 사람이 몰라서 그렇게 했으니,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24:30-32절)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농사를 짓는 분들은 농사를 지을 때, 게으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단 며칠이라도 밭을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게 되고, 포도나무 가지는 쓸데없이 번성해서 나중에 제대로 된 열매를 전혀 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자가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의 밭과 포도원을 지나가다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잠언의 게으른 자나, 지혜 없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의 머리를 믿는 자를 말합니다. 왜 이 사람이 농사를 짓다가 이렇게 팽개치게 되었을까?
물론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본성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증권(證券)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 혹은 복권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때부터는 농사가 시시해지면서 어디서 무얼 해야 벼락부자가 될지 고민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가 하는 일을 죽어라고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벼락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농사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지혜 자가 생각이 깊었다고 했는데, *믿음의 농사*도 결국 끝없이 자기 자신과 벌이는 싸움인 것입니다. 게으른 자의 특징은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 공짜로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복(福)을 받는 것도 한순간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마음의 잡초(雜草)를 제거하고, 엉겅퀴를 뽑고, 돌을 주워내면서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농사를 지어야만 나중에 결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4:33-34절)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누구든지 허황된 공상(空想)에 빠지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공동체)나 나라나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제 우리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지는 순간부터 그 나라나 기업이나 교회(공동체)는 쇠퇴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 안에 생기고 있는 잡초나 가시덤불을 그대로 두고, 계속 잘 될 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군사처럼 훈련하는데, 자기만 성공에 도취되어 있을 때, 한 순간에 공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둑이나 군사는 준비되어 있지 않고, 방심하고 있을 때, 쳐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경성하여 믿음의 농사를 잘 짓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496장 *새벽부터 우리*
오늘의 묵상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절)
▣ 알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하나님의 동역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를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지상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고, 고장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믿는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매일 새벽 4-5시 오늘 말씀 묵상과 도움의 기도.*밤 반성과 감사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 알 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비전(vision) (잠29:18) ☞각 종 알림과 아래 내용을 협조할 때☜
각 셀(cell)공동체의 긴급기도를 공유하며. 연약한 셀(cell)지원과 상담 등 우리와 다음 세대의 행정 중앙 총괄본부가 될 것입니다. 풍성하고 다양하고 균형잡힌 육신과 영혼에게 유익한 생명의 양식 공급됩니다.
※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 셀(cell)로 다함께 자립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
(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春)(秋)심방. 실명으로 소통)
후계자 : 정현흥 목사(총신대학원 졸업). 경력 : 지혜로운아이들, 찬양사역,레크리에이션(recreation강사, 협동목사가 교갱원(공동체)을 섬길 것입니다.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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