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신형 전차 능동방호 장치가 폭발하며 날아오는 RPG-7 대전차 로켓탄을 요격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영상 캡처
북한이 지난달 27일 열병식에서 적 대전차미사일이나 로켓을 요격할 수 있는 능동방호체계(APS· Active Protection System)를 처음으로 장착한 신형 전차를 공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날아오는 적 대전차 무기를 직접 요격하는 능동방호체계는 10여년전 우리 군에서도 K2 ‘흑표’ 전차용으로 개발했지만 비용·파편 문제 등으로 채택을 포기했던 장비다.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 전차들이 서방세계의 신형 대전차 미사일에 대거 파괴되면서 능동방호체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어 군 당국이 북한 신형 APS 의 성능 분석 및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능동방호체계는 전차·장갑차 등의 기갑 차량이 대전차 로켓·미사일 등의 공격을 받기 전에 능동적으로 위협체를 무력화해 공격을 막는 방어 체계다. 직접 요격해 파괴하는 ‘하드 킬’ (Hard Kill) 방식과, 교란해 무력화하는 ‘소프트 킬’(Soft Kill) 방식이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7일 열병식에 앞서 지상에서 발사된 RPG 대전차 로켓이 전차를 향해 날아가자 전차에서 대응탄을 발사, 대응탄이 로켓 근처에 폭발하며 요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RPG 대전차 로켓은 중동지역 등 전세계 주요 분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마법의 알라봉’으로 불리는 보병 휴대용 무기다. 북한군도 대량 보유중이고 개량형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북한은 이어 27일 열병식에선 포탑 전방에 신형 APS를 장착한 M-2020 신형 전차들을 등장시켰다. M-2020은 지난 2020년10월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신형 전차로, 미국 M1전차와 닮았지만 이란제 줄피카3 전차를 모방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M-2020의 APS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차 T-14 아르마타의 ‘아프가니트’ APS와 비슷한 형태다. ‘아프가니트’는 대전차 미사일·로켓은 물론 이보다 훨씬 빠른 날개안정철갑탄까지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입증되지는 않았다.
전차 전면(앞부분)은 물론 측면, 그리고 부분적인 상부공격 방호 능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전차 상부는 장갑이 전면이나 측면보다 얇아 신형 대전차 미사일의 주 공격대상이 되고 있어 이에 대한 방호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활약중인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나 국산 현궁 대전차미사일은 모두 상부 공격 방식이다.
북한 전차의 신형 APS가 일부라도 상부공격이나 철갑탄 방어능력까지 있다면 우리 군 대전차 무기들의 타격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는 중대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북한 APS가 아직까진 러시아 아프가니트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는 전문가 분석이 많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은 “북 APS는 탐지장비 구성과 요격탄 크기가 러 아프가니트와 매우 유사하다”며 “하지만 요격시험에서 철갑탄 등보다 훨씬 느리고 가벼운 RPG-7을 요격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 APS가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됐다가 문제가 많아 곧 퇴장한 구 소련의 ‘드로즈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2023년7월27일 열병식에 첫 등장한 능동방호 장치, 전면 증가장갑 등으로 무장한 북한군 신형 전차./조선중앙통신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K2 전차 개발 때 440억원을 들여 국산 능동방호체계(KAPS)를 개발했지만 1개당 10억원이나 드는 비싼 비용과, 많은 파편에 따른 아군 피해 등을 이유로 채택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전의 교훈 등으로 폴란드 등 전차 수입국에선 능동방호체계 장착을 원해 국내에서 현대로템과 한화시스템 등을 중심으로 다시 APS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폴란드에 1000대의 K2 전차를 수출하는 현대로템은 오는 2026년 이후 폴란드 현지 제작 K2 전차에 국산 APS를 장착하기 위해 10년전 개발된 KAPS에 이스라엘 최신기술 등을 접목한 개량형 KAPS를 개발중이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3월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약 360억 규모의 ‘차세대보병전투차량 다중 위협체 대응 지능형 능동방호 기술’ 과제 계약을 체결했는데, 2026년까지 ‘복합형 능동방호기술’과 ‘지상용 지향성 방해기술’을 개발해 지능형 능동방호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현대로템과 한화시스템 2개 업체가 따로 다소 다른 성격의 APS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여서 방위사업청 등 정부 당국에서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살리고 미래전에 대비하기 위한 통합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대전차 무기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수출형 뿐 아니라 한국군에 도입될 K2 개량형 전차에도 능동방호체계 장착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폴란드 등 수출형 K2 전차에는 APS 장착계획이 있지만 정작 한국군 K2에는 구체적인 ‘하드 킬’ 방식 APS 장착계획이 없는 상태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 입수한 군 내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 신형 대전차 미사일 ‘불새5′의 장갑 관통력은 100~120㎝에 달해 기존 K1 계열 전차뿐 아니라 K2 전차의 정면 및 측면 장갑도 모두 뚫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새5는 기존 불새4의 성능을 개량한 것으로, 지난 2021년 9월 열병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2021년 10월 북한 국방발전전람회에선 이스라엘 스파이크 대전차 미사일과 유사한 ‘북한판 스파이크’ 미사일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북 대전차 미사일 중 처음으로 ‘상부 공격’ 능력도 가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10월 현대로템 경남 창원공장에서 개최된 ‘K2 전차 폴란드 갭필러 출고식’. 2026년부터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되는 K2 전차 수출형에는 APS(능동방호체계)도 장착된다. /현대로템
현재 APS는 이스라엘 라파엘사의 ‘트로피’, 엘빗사의 ‘아이언 피스트’가 세계 시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독일 등의 전차는 트로피를, 이스라엘 일부 장갑차는 아이언 피스트를 장착하고 있다. 최근 호주 장갑차 사업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장갑차는 아이언 피스트를 장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