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쿠팡물류센터 삼킨 불길… “스프링클러 제때 작동 안됐다”
진화 나섰던 소방관 1명 실종 …화재 3시간만에 큰불 잡혔다가
3시간뒤 다시 치솟아 건물 덮어… 잔불 정리하던 소방관들 긴급탈출
지하 2층 진입 5명중 4명만 대피… 경찰 “지하2층 창고 콘센트서 불꽃
평소 스프링클러 잠금여부 조사”
수도권 물류센터 또 대형화재 17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날 오전 발생한 화재는 잦아드는 듯하다 갑자기 불길이 커졌고 오후 7시경부터 꼭대기인 4층까지 번져 건물 전체로 확산됐다. 진화 작업을 하던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 김모 소방경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건물 내부에서 실종됐다. 불이 밤늦게까지 20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불길 사이로 건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났다. 경기일보 제공
17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 1명이 건물 내부에서 실종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50분경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 김모 소방경(53)이 물류센터 지하 2층에 고립됐다. 당시 김 소방경과 함께 진입했던 나머지 대원 4명 중 3명은 대피했으며 최모 소방위(47)는 탈진된 상태로 빠져나와 병원에 이송됐다.
이천 쿠팡물류센터 화재 현장. 촬영=신원건 기자
소방당국과 경찰은 물류센터의 스프링클러가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는 작업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화재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화재진압 지원 나왔다가 불 속에 갇혀
이날 화재는 오전 5시 30분경 건물 지하 2층에서 시작됐다. 쿠팡 직원 248명은 화재 직후 인명 피해 없이 모두 대피했다. 발생 3시간 만에 큰불이 잡혀 소방당국은 앞서 발령한 경보를 차례로 해제했다. 하지만 오전 11시 50분경 불길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쿠팡 물류센터 화재 17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소방 대원들이 유독가스가 주변에 많이 일자 대기 위치를 바꾸고 있다. 이천=신원건기자
당시 김 소방경 등 대원들은 지하 2층에서 잔불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대원들은 긴급 탈출 지시를 받고 대피했지만 김 소방경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김 소방경은 광주소방서 소속이지만 이날 지원을 나와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실종됐다.
소방은 김 소방경에 대한 구조 작업을 진행했지만 불길이 거세 정밀 수색이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 관계자는 “철제 선반에 올려져 있던 가연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며 화염과 연기가 발생해 김 소방경이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에 가연물이 상당히 많고 접근로가 일방향이어서 진압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소방 관계자는 “불이 상층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원들을 진입시켜 위쪽으로 번질 수 있는 지점에 배치했는데 불이 워낙 거세 불가항력적으로 번졌다”며 “건물 안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또는 외벽을 타고 불이 번질 수 있다”고 했다.
불은 이날 오후 7시경부터 꼭대기인 4층까지 번져 건물 전체로 확산됐다. 화염이 건물을 집어삼키면서 외장재와 창문이 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등 붕괴 우려가 제기돼 구조 작업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인원 416명과 장비 139대를 투입해 진화작업을 했지만 불은 건물을 다 태우고 난 뒤에야 사그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 “평소 스프링클러 꺼놨을 가능성 조사”
경찰은 화재 발생 당시 모습이 담긴 지하 2층 창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콘센트에서 불꽃이 일고 연기가 나는 장면이 포착돼 지하 2층을 발화 지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프링클러 등 물류센터 내 방화 시설이 화재 직후 정상 작동했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소방은 “물류센터로부터 스프링클러 수신기 오작동 신고가 여러 번 있었다”며 물류센터 측이 스프링클러 오작동을 피하기 위해 평소 작동을 정지시켜 놨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화재 17일 오후 20시10분경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전체에 불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이천=신원건기자
소방 관계자는 “선착대가 도착했을 때는 스프링클러가 작동을 했다”면서도 “만약 (물류센터 측이) 오작동으로 물건들과 설비가 젖을 것을 우려해 스프링클러를 꺼놓았다가 불이 난 뒤에 작동시켰다면 수신기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8월 인천남동공단 전자부품 공장에서 불이 나 9명이 숨진 사건에서도 공장 측이 스프링클러 오작동을 피하기 위해 수신기를 꺼놓은 사실이 드러나 “전형적인 인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수도권 소재 물류센터에서는 대형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해 4월 이천의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는 큰 폭발과 함께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석 달 뒤인 지난해 7월에는 용인 소재 물류센터 화재로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천=조응형, 공승배 / 이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