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구 계명대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강의를 듣고 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우산을 쓰고 나섰지만 비바람에 옷도 젖고 신발도 젖어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막상 강의를 듣고보니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강의 주제는 '아틸라, 유럽을 삼키다'였다. 세계사는 중학교때 잠시 배우고는 손을 놓아 '아틸라'라는 이름도 생소하였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북방 초원에는 기원전 17000년경부터 투르크족이 동서로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동쪽으로 향하던 투르크족은 기원전 1100년경부터 대거 중국의 서북부에 있는 칸수나 오르도스 초원지대로 이동하는데 이들이 중국이 말하는 흉노족이다. 몽골 초원에서 중앙 아시아를 거쳐 남러시아와 동유럽 일대의 광대한 초원에는 다양한 유목민의 공간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북방민족을 물리치고 억압해야 할 무지하고 흉악한 오랑캐로 여겼다. 그러나 북방 유목민들은 정착 농경민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이지만 결코 야만인은 아니었다. 실제로 기마술과 야금 및 금속가공 기술은 중국인들보다 앞서 있었다.
동투르크족인 흉노는 몽골고원을 차지하며 최초의 스텝제국을 건설하고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에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진나라 때 그들은 이미 오르도스와 몽골고원, 천산산맥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실크로드 중심축을 장악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진에 이어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흉노의 공격에 시달렸을 뿐 흉노를 제압하지는 못했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위당했다가 뇌물을 주고 가까스로 빠져 나오기도 하였다. 이후 공주와 공납을 보내 굴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다가 한 무제 때에 와서는 다시 흉노와 전쟁을 시작하여 근 50년 동안 계속되었다.
한편 흉노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에 이어 등장한 한과 쟁패하면서 세력을 떨치다가 몇차례 내분으로 약화되면서 결국 실크로드의 지배권을 중국에 빼앗기고 만다. 기원전 48년 1차로 동.서 흉노로 분열되었고, 동흉노는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 북쪽에 머물렀고, 한나라와 타협하기를 거부한 서흉노는 중앙 아시아쪽으로 이주하였다. 동흉노는 한 세기 뒤에는 다시 남북 흉노로 분열되었다. 서흉노는 몽골고원에서 서투르키스탄으로 이동하면서 1세기말에는 중국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다가 2세기 중반쯤에는 더 서쪽으로 옮겨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후 이들은 사라져버린듯했지만 서투르키스탄에 정착한 서흉노는 약 200년 후 투르키스탄의 여러 족속들을 복속시키고 새로운 정체 조직체를 구성하여 이란, 그리스 등 인도-유럽 문화와 접촉하면서 4세기 중반에 갑자기 '훈(Hun)' 이라는 이름으로 흑해 북부에서 나타나 처음으로 유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훈족이 흉노족과 동일한 집단인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나 훈족이 초원생활에 익숙하고 전투능력이 뛰어난 기병을 거느렸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아틸라(395~453)가 태어난 것은 훈족이 서유럽으로 진출한지 20년이 지난 때였다. 마침 이탈리아 전역이 서고트족에 의해 유린당하자 훈의 군대가 개입한다. 로마군과 훈 원병은 406년 가을 플로렌스 남부의 파에술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소수민족들은 훈의 위협을 피해 라인 강을 넘어 갈리아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당시의 외교 관례에 따라 아틸라는 410년경부터 서로마 황제인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삼은 라벤나 궁정에서 자랐다. 아틸라는 로마제국의 문화를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혔던 것이다. 422년 훈은 발칸원정을 시도하고 비잔틴을 패퇴시켜 연간 금 350리브레의 공납을 부과한다. 훈족의 전성기는 강력한 지도자 아틸라가 활약한 5세기 전반이었다. 그는 지금의 루마니아에서 시작해서 동으로 카스피해, 서쪽으로는 라인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초기에 훈족은 게르만족을 떠밀어 이주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은 직접 동사 로마제국을 공격했다. 그들은 동로마를 공격하여 여러 도시를 함락시켜 공납을 강요했고, 서로마를 치기 위해 갈리아의 오를레앙까지 진격했다. 아틸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훈족의 전성시대는 끝나지만 '야만인' 아틸라가 가했던 무시무시한 위협은 서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개략적인 스토리는 이상과 같지만 상세히 기술하자면 수십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어제 아틸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사가 준비한 ppt 자료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냥 듣고나면 얼마가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연결과 기억의 지속을 위해서였다. 오늘 아침에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을 PC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제 촬영했던 자료가 몽땅 사라진 것이었다. 폰에 있던 것을 pc에 폴더를 새로 만들어 옮겨놓고는 용량 때문에 폰에 남아있던 것을 지워버렸다. 그리곤 pc 폴더로 들어가서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사진 하나를 지운다고 드래그 해서 휴지통으로 보내버렸더니 전체가 감쪽 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한꺼번에 묶음으로 옮긴 탓으로 하나를 집었는데도 전체가 함께 움직였던 것이다. pc 폴더에서도 사라져 버렸고 폰에서도 이미 지워진 상태라 낭패였다. 사라진 자료를 되살리기 기능이 'cont Shift'인지 'cont Z'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잘못 만졌다간 어제 대구까지 올라간 일이 허사가 된다. 혹시 휴지통에 남아 있나 찾아 보니 다행히도 오롯이 남아 있어 '복원'을 눌러 건져 올렸다. 하마트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될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