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속 사랑 이야기 (세종과 형님 양녕대군 형제사랑)
ㅡ양녕대군과 정향ㅡ
양녕대군은 태종의 맏아들로 일찍이 세자에 책봉이 되었으나, 셋째인 충녕대군(세종대왕)의 현명함을 알아채고 둘째인 효령대군과 함께 왕위를 양보한 인물이다.
그는 왕위에서 물러난 후 호방한 무리들을 모아 토끼를 몰고 여우를 잡는 등 날마다 사냥을 일삼았고, 시와 여인을 사랑하고 팔도를 유람하는 진정한 풍류객이었다.
세종 즉위 후. 얼마 뒤 양녕대군은 임금에게 평안도를 다녀오겠다 하였으나, 세종은 그곳에 어여쁜 여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이를 만류하였다.
그러나 끝내 양녕대군의 뜻을 꺾지 못한 세종 임금은, 만약 형님이 색을 조심하고 탈 없이 돌아온다면 돌아오는 날 잔치를 열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에 양녕은 필히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즉시 연로변의 각 고을과 평양 전체의 수령들에게 자신에게 술과 여자를 권하는 자는 엄히 다스리겠다는 공문을 띄우고는 평안도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형님의 성정을 잘 아는 세종은 아름다운 평안도를 다녀오면서 술이나 여자를 대하지 못한다면 양녕에게 필시 한이 남을 것이라 생각하여, 비밀리에 미색을 동침시키라는 어명을 내린다.
그러자 감사는 미색이 평안도에서 으뜸이고 기특한 꾀도 있는 열여섯 살의 ‘정향’이라는 기생을 준비하였다. 그리고는 이튿날 객사의 정남쪽에 담 한 곳을 허물어 마치 비바람에 손상된 것처럼 꾸미고, 담 밖에도 한 채를 수리하여 그녀가 거처할 집을 만들어 놓았다.
드디어 양녕대군이 평양에 당도하였다. 객사로 들어와 사방의 산들을 두루 바라보니 풍경이 몹시 아름다웠다. 조금 후에 감사가 앞으로 와서 절을 올리고 진수성찬인 큰 상을 내왔지만 양녕대군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후 담이 무너진 곳으로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닭다리를 물고 앞으로 달려와 양녕대군이 앉아 있는 마루 밑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여자가 장대를 들고 고양이를 쫓아서는 거의 뜰 가운데 이르렀다가 좌우에 있는 나졸들이 큰 소리로 꾸짖자 멈추었다.
이에 양녕대군이 나졸을 시켜 여자를 가까이 오게 하니, 나이는 17~18세쯤 되어 보였는데 용모가 아주 뛰어났다. 그녀는 소복을 입고 뜰 아래에 꿇어앉아서 울며 하소연했다.
“소녀는 금년 18세이옵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산 지 반년도 못 되었는데 저 요망한 고양이가 죽은 남편의 상식에 쓸 닭다리를 물고 가기에 분한 나머지 지엄하신 분이 마루 위에 계신 줄도 모르고 그만 이렇게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을 목숨을 살려주시기 비옵니다.”
그 여인은 꾀꼬리처럼 혀를 교묘하게 놀리니 아름다운 목소리가 구슬퍼 말마다 애처롭고 소리마다 슬프게 들리었다. 또한 구름 같은 머리는 치렁거리고 눈물은 뺨을 적시니, 예쁜 자태와 고운 말소리가 양녕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녀를 포졸들은 꾸짖었으나, 양녕대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날이 저물고 객사에 외로이 앉아 있던 양녕대군에게 생각나는 것은 오직 고양이를 쫓아온 젊은 여인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잊을 요량으로 밖으로 나와 산보를 하였으나, 소복을 입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가 끊임없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울며 하소연하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완연하였다.
잊으려고 해도 잊기 어려웠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이 났다. 결국 양녕대군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사립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는데, 등불이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그가 창문을 뚫고 들여다보았더니 그녀가 등불 아래 혼자 앉았는데 참으로 꽃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미색이었다.
양녕대군은 일견에 춘심이 동하여 방문을 밀치고 들어갔으나, 놀란 그녀는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양녕대군은 자신은 낮에 본 대군이라 소개하며 자신이 그녀에게 반한 애달픈 심정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양녕대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소첩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어찌 대감의 존귀함을 모르오리까?
다만 소첩의 지아비가 나이 겨우 10여 세로 부부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혼례를 올린 지 몇 달 만에 갑자기 죽었는데 지금 거의 반년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몸을 돌아보면 큰 인륜이 이미 정해졌기에 한번 죽기를 맹세하였습니다.
삼가 비옵건대, 대감께서는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시어 절개를 끝까지 지키도록 해주옵소서. 사람이 비천하다하여 가문의 부끄러움이 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고는 벽에서 은장도를 뽑아 자결하려고하였다.
이에 양녕대군은 황급히 그 칼을 빼앗아 던지고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씻어주었으나, 그녀의 절개에 다시 한 번 감동한 그는 이대로는 놔주기가 아까워 다시 한 번 이렇게 간청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병이 날 것인데 어떻게 하지? 너는 과연 나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을 셈이냐?” 양녕대군의 말을 들은 그녀는 한숨을 쉬며 결국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고, 양녕대군은 크게 기뻐하며 그녀와 동침을 하였다고 한다.
역시나 정향과의 동침은 마치 선녀와의 하룻밤처럼 달콤하고 황홀하였다. 이후에도 대군은 밤마다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와 남몰래 나누는 애정이 꿀 같이 달고, 그녀의 온갖 교태가 대군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형을 생각하는 세종이 꾸민 일임을 까맣게 모르는 양녕대군이었다. 대군은 날로 그녀에게 빠져들어 이미 10여 일이 된 줄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때는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계절이 되었고, 양녕대군은 다음날 성천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마음먹고 정향에게 사실을 말하였다.
이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답하였다. “대감께서 돌아가시는 날 소첩은 서울로 따라가서 밥 짓고 물 긷는 여비가 되어 일생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동생과의 한 약조를 어길 수 없었던 양녕은 이를 거절하였고, 정향은 흐느껴 울며 정인의 표시로 자신의 치마폭에 시조를 남겨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녀의 부탁에 양녕대군은 이별의 슬픔을 담은 시 九難歌를 그녀의 치마폭에 써 주고는 한양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었다.
留別丁香九難歌 難難. 爾難我難. 我留難爾送難. 爾南來難 我北去難. 空山夢尋難 塞外書寄難. 長相思一忘難 今相分再會難. 明朝將別此夜難 一盃永訣此酒難. 我能禁泣眼無淚難 爾能堪歌聲不咽難. 誰云蜀道難於乘天難 不如今日一時難又難.
어렵고 어렵구나. 너도 어렵고 나도 어렵구나. 나는 머물기 어렵고 너는 보내기 어렵구나. 너는 남으로 오기 어렵고 나는 북으로 가기 어렵구나. 공산(空山)에 꿈 이루기 어렵고 변방에 소식 전하기도 어렵구나. 임 생각 잊을 일이 어렵고 오늘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도 어렵겠구나. 내일이면 이별이니 이 밤 지내기 어렵고 한잔이면 이별이니 이 술 들기도 어렵구나. 내 울지 않아도 눈물 금키 어렵고 네 노랫소리 목메이지 않기도 어렵구나. 뉘라서 촉도길이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 하더냐. 그보다도 오늘 이별이 더 어렵고 또 어렵구나.
한양에 당도하자 세종은 양녕에게 큰 연회를 베풀었으나, 정향을 잊지 못한 그는 떠들썩한 연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양녕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던 세종은, 비밀리에 정향을 한양으로 불러 대기시켜 놓고는 기생들에게 양녕대군의 시를 노래하게 하였다.
시조를 들은 양녕대군은 어리둥절하였고 세종은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양녕대군은 정향과 세종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은 후, 아름답게 치장하고 그를 기다리는 정향과 감격의 재회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양녕대군은 세종의 배려로 사랑하는 여인 정향과 함께 자식을 낳으며 백년해로 하였다고 한다. 임금이 될 운명으로 태어났으나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한 양녕대군,
그러나 임금이 되어 백성을 다스린 세종보다 사랑하는 한 여인의 남자로, 풍류를 즐길줄 아는 선비로 한 세상 살다간 그의 삶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