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선생님(픽션) -
남녀학생을 막론하고 이성인 선생님을 마음에 두고 짝사랑 한번 안해본 사람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하루의 대부분을 선생님과 같이 하니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아주 드물긴 하지만 끝내 결혼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많이 차이가 안나는 탓이기도 하겠으나 사제간의 로망을 실현했다고 보기에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 옆집에 그런 부부가 얼마전 이사와서 살고 있다. 겉보기엔 평범해보이는 부부지만 마누라와 내가 그들 부부와 가까워지며 알게 된 사실인데..
남학생과 열살 연상인 여선생이 서로 맺어진 것이란다. 동년배인 내가 그집 남편에게 차와 술을 같이 하며 캐물은 것인데 솔직하게 말해주어 알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비롯된 역사라니 길기도 하다.
처음 시작은 학교 심부름으로 여선생의 집으로 무슨 서류를 전달받아 오는 일로 갔는데..
장선생은 과수원집에 하숙하고 있었다.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이었단다.
가서 선생님을 찾으니 방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서류를 내주는데...아마 감기를 앓는 것 같았다.
본래 미모이기도 했지만 몸매도 날씬했고 학생들에 보통 성의가 있지 않아서 많은 남학생들의 로망이었을 것인데..
머리도 헝클어지고 옷도 거의 못차려입은 잠옷 차림이었는데..삼돌이에겐 그토록 매력으로 각인되었는가 보다. 겨우 열살때였다니 나도 열살때 인생과 사랑을 쬐금 알긴 했는데 삼돌이는 유난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절로 선생님말에 집중했는지 몰라도 2학기땐 반전체에서 1등을 했고 기특한 제자에게 당연 장선생의 관심이 갔을 것이고 제자는 더욱 선생님에게 빠졌으리라.
해가 바뀌어 3학년이 되었는데 반이 달라져 담임이 아니게 되었지만 혹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고 장선생은 친절히 알려주었으며...
4학년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자..당시는 아니었지만 한달후엔가 불러서 갔더니 아버지 유고를 위로하면서 삼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생은 긴 거란다. 앞으로 혹시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내렴. 하늘은 본래 크게 쓸 인물에게 온갖 시련을 주어서 단련시키는 법이니까"
장선생의 그 말은 삼돌이의 좌우명이 되었고 삼돌이가 커서도 주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할 때 꼭 쓰는 말이 되었다. 나중에 맹자가 했다는 말이란 것은 알았지만...
선생님은 5학년때 학교를 떠나 서울로 가버렸다. 서울 어디 중학교로 갔단다. 방학중에 예고도 작별인사도 없이 홀연 떠났다.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삼돌인 달랐다.
엄마의 재혼등 힘든 일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격려가 떠올라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하여 1등을 놓치지 않았으며 결국 도시의 좋은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전에 벌써 학교에서 알아둔 선생님의 서울주소로 진학사실을 알렸는데....5.6학년 때 2년동안 여덟통의 편지를 썼었지만..선생님의 답장은 전혀 없었던 터였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초인 4월 벗꽃잎이 분분지던 날 장선생의 첫 답장 편지이자 마지막편지가 왔으니...
이미 사춘기 도가니인 삼돌이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으랴.
[ 난 그 주소에 안 산단다. 사정이 있어서 먼 친척집인 그 주소를 학교에 알려서 그랬겠지만 답장도 없는데 매년 네통씩 열세번이나 보내다니 정말 미안하고도 고맙구나. 이번에 우연히 들리지 않았다면 그런 줄 영영 몰랐을 건데..글에 어두운 할머니가 네 편지를 꼬박 모아놨더구나.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공부도 잘하고 그리 좋은 장래 희망을 가졌다니 기쁘구나.
넌 정말 그동안 많은 제자중 첫손 꼽히는 제자야.
하지만 이제 홀로 설 수 있는 나이이니 선생님은 그만 잊으렴. 선생님은 먼 외국으로 떠나므로 이제부턴 네 편지를 읽을 수가 없단다 ]
우직한 삼돌이는 그랬어도 답장을 보냈다. 같은 집으로..
[선생님이 못 읽어도 답장올립니다. 첫 편지를 보낼 때도 그랬지만 선생님에 대한 사모 못지않게 제 스스로를 다그치는 약속일지 원동력이었으니까요. 이제 못 읽는다는 것을 아니 제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좋은 핑계가 생긴 것 같아 기쁘기도 하군요.
이 편지는 제 일기이자 마음의 보고서일 겁니다. 답장 기대 없는 편지란 것도 일장일단이 있네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아이쿠, 이런 거짓말을 하다니..처음엔 멀리서 보고 아~ 저런 분이 담임이 되면 좋을 건데...했지요. 정말 담임이 되었을 때도 워낙 어려선지...그냥 기분이 좋은 정도였네요.
그러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날 학교 심부름으로 선생님 댁에 간 날을 기점으로 제 인생이 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좀은 흐트러진 선생님 모습을 봐서인지 몰라도 거리감이 없어졌달까요.
..그날 이후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이 갔었지요. 물론 말씀도...그래서 전엔 꼴찌였는데..두세달만에 일등한 것 기억나실지요?
전에 제가 편지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나는군요. 제 근황과 상식적인 안부 여쭈었던 것으로 추측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겠네요. 전엔 긴 편지도 실례일 것 같아 짧게 썼는데 이젠 백장도 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열장은 넘게 쓸 것 같군요 ]
다음은 집사람이 그집 부인에게 탐문으로 알아본 보고서다.
[ 정말 특별한 제자였지요. 자주는 아니지만 매 계절마다 꼭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거예요.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는 기본이고 태어나고부터 생각나는 모든 것을 보고하는 자서전 같기도 하고 장래 희망이나 포부 공상 망상까지...정말 뭐 이런 유난한..특별한..아이가 다 있는가 했네요.
계절이 갈수록 점점 수위가 높아지더니 저와 애인이 되어 데이트하는 공상까지 쓰지 뭐예요...이러다 말겠지 했는데..2년이 지나자. 웬걸. 선생님 다리를 쓰다듬는 꿈을 꾸다가 몽정하고 말았다느니 키스니 유방이니...
그 나이의 중고생들 관심사가 그말고 더있겠나 이해는 했지만...고3때는 이제 제법 깊이도 있어졌고 내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더군요.
명문대에 진학하고부터는 세상보는 시각이라든가 견해가 나같은 아니 저도 능가할 정도라서 저도 배우고 깨닫는 바가 많아졌지요. 어느새 제자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제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했고요.
그 이전인가 간혹 인생의 의미나 가치..사랑등에 대해 늘어놓기도 했는데 제가 마침 매우 힘든 시기라서인지 정말 마음에 닿아오지 뭐예요.
그로부터 편지는 일변했지요. 사랑하는 선생님도 아니고 사랑하는 재인씨 제 실명을 부르며 사랑을 고백해대는 거예요. 사랑이 죄라면 사랑에 빠지게 한 상대방도 엄청난 죄인이잖느냐...하여간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다나.
부담되면서도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축복같기도 하고..
그러더니 매계절마다 오던 편지가 뚝 끊기더군요. 난 무슨 사고를 당했나 삼돌이 학교나 지역에 대한 인터넷 정보도 검색해봤다니까요. 그 공백의 한달여동안 제 마음에 어느새 깊숙히 들어와있는 삼돌일 깨닫게 되었지요.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난 것인가. 혹은 다른 여자가 나타난건가.
그 허탈..실망..절망..이라니...
그러나!!
거의 공황상태이던 어느 날. 삼돌이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어요! 그간 사진도 간간 보내주어 알았지만 사진보다 더욱 성숙하고 멋진 신사가 되었더군요. 말문이 막힌 내게 말하더군요.
'편지를 쓰다가 문득 이게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깨달아지더군요. 난 벌써 투표권도 있는 성인인데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데 재인씨가 어떤 상황이든 상태이든 사랑할 자신이 있는데....
늦었다는 것을 알 때가 가장 빠른 때란 격언을 떠올리고 선생님을 찾아나섰지요. 어렵지 않았어요. 처음의 그 먼친척 고모할머니로부터..시작해 가정 형편이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지금 어떤 사정인지 모두 알며 이해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 사랑을 받아주십시오!'
그 사연을 듣고는 부러운 일방 내게도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나 회고했는데.....비슷한 추억은 있었으나...
.............좋은 이웃이 생겼구나......
2020.6
첫댓글 어찌 나에게는
그 런 학생이 없었는지
차암내원 ~~
그건 아마도 내가 이쁘게 생기지 않아서려니 ...
픽션 이라 잼나게 잘쓰시는군요
진심 칭찬입니다
감사해요
수고 하셨어요
무이장파노 님^^
드물지 않게 더러 봅니다. ^
학교라서 그렇지 문인들 혹은 예인들은 더 많을듯..ㅜ 스포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