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전 병금 목사(한국기독교 장로회 총회장) 1. 들어가는 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동서 냉전의 세계 질서가 붕괴되었지만, 세계 도처에서는 여전히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지금까지 이데올로기 틀에 갇혀 있던 각 민족들이 자기 본래의 민족과 국경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이데올로기나 민족의 문제로 국가와 민족이 서로 갈라지는 시대는 아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특정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할 식량, 질병, 인구폭발, 환경, 핵 확산, 자원의 고갈, 대체 에너지 개발, 전쟁 억제 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우리 후손들이 이 지구에 계속 생존할 수 있느냐는 미래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세계화'는 오히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약소국을 강대국의 경제질서에 강제로 편입하려는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으로 전락하여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각 나라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혹은 세계화를 내세우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하에서 한국 교회는 민족주의 문제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 글에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세계의 유일한 분단 국가로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의 입장에서 민족주의 문제를 검토하고,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민족주의(nationalism)의 허와 실
민족주의는 "지역, 문화적 활동, 언어, 사상, 그리고 국가라는 기구의 공통점과 생물학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혈연적 집단의 공통적 생각"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이후에 구체적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이 때 등장한 민족주의는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나라나 민족들에게 무자비한 침탈을 감행하였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천황제와 군국주의는 최악의 민족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성격이 함축되어 있어서 항상 팽창주의 정책을 통하여 약소국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내국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할 염려가 있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하여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토착적, 비민주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였다. 그러나 약소국 민족주의는 강대국에 대한 종속을 줄이거나 없애려 하는 저항 이데올로기로 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주와 해방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불편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약소국의 민족주의를 1) 대내 억압적이고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며, 2) 국제 분쟁을 유발하며, 3) 대외 팽창적 이라고 비판하면서 '세계화'를 주장한다. '세계화'의 열풍은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어 일국 패권주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전 세계에 몰아쳤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구체화할 수 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 문물이 세계를 제패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IMF, 세계 은행, WTO 등의 국제기구를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보편 원칙인 양 전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결국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시장 경제 논리와 미국 문명이 세계에 전파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국내외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패권주의도 팽창적 민족주의 혹은 국민주의(nationalism)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족주의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지나친 민족주의의 추구가 민족 내부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세계화'의 패권주의적 성격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약소국의 입장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출현한 저항적 민족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 한국 민족주의의 특징
북한의 핵 문제로 야기된 북미간의 갈등과 주변국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현재 한반도 내에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각축장으로 변절되어 민족의 생존이 절대적인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한민족에게 민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특별히 반만년 동안 단일 민족으로 하나로 살아오다가 현재 분단되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특별한 입장을 요구한다. 우리 민족의 민족주의 개념은 19세기말 침략주의 성격을 띤 제국주의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말의 한국은 한반도를 둘러 싼 동아시아 일본 세력의 침략과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세력에 대항하여 민족 자주국가를 수립해야 하는 시대적 명제를 안고 있었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勒約)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경찰과 군대를 해산하고, 드디어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선포하는 폭압을 자행함으로써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촉발시켰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의식 내지 민족주의의 성격은 자국에 침략해 들어오는 외적을 무찌르는 데 목표를 둔 저항적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자존을 위한 민족주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분단 시대가 고착되면서 위정자들은 국가주의적 체제를 강화해 갔다. 그들은 분단 국가의 정당성과 필연성, 절대성을 실재로 강조하면서 분단 국가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민족주의 이름으로 오히려 국가주의적 체제를 강화하였다. 분단 국가들이 그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표방한 민족 주체성은 사실은 분단 국가 상호간의 대립주의, 폐쇄주의, 침략주의를 양성하는 국가주의적 이론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격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면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 시대의 한국 민족주의 목표는 국민 주권주의의 확립과 민족 통일 문제로 직결되며, 이 두 가지 문제는 언제나 동일선상에 있는 한 가지 문제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국민 주권주의의 확립이 전제되지 않은 통일 문제 논의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며, 또 국민 주권주의와 통일 문제를 따로 떼어 이해하려는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론도 미완성의 이론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3. 성서의 가르침에 나타난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할 때, 그 핵심 내용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며, 예수 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이상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예수의 사역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는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 자체는 구약성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신구약 중간 시대의 묵시문헌에서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약 140여회 나오는데, 이 용어는 주로 예수에 관한 보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나라' 표현은 예수나 초대 기독교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대 사회에 충만했던 묵시문학적 종말 사상에서 연원(淵源)한 것이다. 예수는 이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 나라'란 개념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 , 막 1:15)' 혹은 '하늘 나라( , 마태 4:17)'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상징언어로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낸다. 마태복음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늘 나라'는 용어는 공간적 개념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하는 천상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논의를 효과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종말적으로 성취할 구원 세상, 즉,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종말적 세계라고 간략하게 정의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의 통치권을 회복하여 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여 사악한 자들은 징계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 나라' 개념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그의 통치권을 회복하여 다스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메시야가 도래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해 줄 것을 대망하던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인자' 메시야의 도래로 이루어 질 전 우주적 구원을 소망하게 되며 전 세계를 포용하는 희망을 갖게된다.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이루어질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 더 나아가서 전 창조 세계까지 포괄하는 우주적 차원의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종말적 구원이 실현된 세상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불의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차별과 억압, 가난과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전망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예수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적대시하며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상종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을 뿐 아니라(요한 4:1-42), 이방 도시인 두로와 시돈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다(막 3:7-12). 하지만 예수는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다. 예수는 항상 자기 동족인 유대 민족을 향한 애끓는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셨다.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이 도시가 멸망하게 될 것을 안타까워하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 24:37) 라고 애통해 하였다. 결국 예수는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면서, 유대 민족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고 해방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바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그의 삶을 헌신하였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원사도는 유대인을 주 선교 대상으로 삼았으며,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임명받았다(갈 2:7-9; 행 15:22-25). 바울은 안디옥을 선교 거점으로 하여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지역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특별히 안디옥 사건에서 바울은 베드로와 심하게 다투고 면박하면서 까지 이방인들을 옹호한다(갈 2:11-13). 바울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방인들을 옹호하기 위해 율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인론을 전개하기도 한다(갈 2:14-18). 결국 바울은 이방인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기 동족인 베드로를 반박하며 유대 민족의 특권으로 상징되는 율법을 비판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바울은 유대 민족에 대한 민족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원줄기에 접붙임을 받은 존재로 거명한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유대인을 차별하며 멸시하는 로마 교인들을 비판하며,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참 뜻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유대인을 옹호한다(롬 11:11-24). 더 나아가서 그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롬 9:4) 그의 골육의 친척인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원한다고 강변한다. 바울의 이와 같은 외견상 모순되는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울은 어떤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때는 이방인을 옹호하고, 어떤 때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옹호하는 것일까?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구현인 것이다.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참고: 롬 10:12; 골 3:11) 라고 선언함으로써, 기독교의 진리는 인종과 사회적 계급, 성의 모든 차별을 뛰어 넘어 차별이 없는 평등과 정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는 유대인의 차별과 소외도, 이방인의 차별과 소외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되어 정의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예수와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음의 진리, 곧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었다. 이것은 세계주의적 보편적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와 바울은 자기 유대 민족이 이 하나님 나라의 대열에서 소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 그것은 상황의 문제이다. 민족의 문제를 절대화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억압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내세워(이 경우는 대개 강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약자를 억압하는 세계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한다) 어느 민족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고, 모든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며 살 수 있는 평등의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5.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정신의 융합 : 3.1 운동
우리 역사상 3.1 운동은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이상이 잘 조화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일제 하 우리 민족의 불행과 수난의 근본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서 기인하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아직도 연약한 요람기에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민족의 선각자로서, 온 정열을 민족의 개화, 그 후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하여 싸웠다. 송 건호에 의하면 "3.1 운동 때까지만 해도 조선 민족의 항일 세력의 본거지 하면 그것은 기독교였다.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수많은 기독교인을 체포, 고문, 학살한 것도 항일세력인 기독교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33인 대표를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앞장서 일제와 투쟁한 것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 실제로 기독 교회의 이념적 확신과 역사 의식, 그리고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교회의 통로가 없었다면,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 발발의 점선이 교회 산재의 지형도와 중복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의 반수인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유 관순은 그 당시 감리교인 이었다), 일제 진압 과정에서 피해자의 30%가 기독교인이었으며, 만세 운동의 궐기 회집 장소도 대부분의 교회당이었다. 3.1운동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는데, 그것은 단순히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 참여한 것이라기 보다는 확실한 기독교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참여한 것이다.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과 민족 사랑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한 예로 이미 모세, 삼손, 다윗, 다니엘의 사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비하고 있던 한국 기독교인들은 3.1 운동의 만세 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 <독립단 통고문>을 뿌렸다. 내용은 1) 매일 3시에 기도하고, 2) 주일은 금식하고, 3)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에는 이사야 10장(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에는 예레미야 12장(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 수요일에는 신명기 28장(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에는 야고보서 5장(고난 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에는 이사야 59장(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에는 로마서 8장(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다') 등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선인들을 엿보게 된다. 그러므로 3.1운동은 기독교 신앙과 민족적 양심이 결합하여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기독교인의 민족의식의 성격은 기독교 신앙이 정의, 자유, 평화에 기반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대에 둘 수 있다면, 민족적 양심은 자주, 평등, 해방을 목표로 한 독립국가, 민족자주의 건설에 있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는 접점에 3.1 운동에 참여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 신앙'이 서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3.1 운동은 민족운동이면서 인류양심의 회복,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당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민족을 핍박한 일제에 대한 항거이자,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인류의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려는 운동이기도 하였다. 또한 3.1 운동은 당시 남녀, 연령, 종교와 이념, 지역을 초월한 일치된 정신으로 민족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던 운동이었다. 이 같은 정신은 50년이상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민족으로 남아 있는 조국에 그 평화통일의 토대를 구축하는 정신적 기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6. 한국 기독교의 나아갈 방향
민족을 떠난 종교는 살수가 없다. 한국 기독교는 먼저 한국 민족 공동체를 섬기도록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모세와 예수, 바울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뜨거운 민족애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민족 통일에 관심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이 세상의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을 구원하는 교회로,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를 구체화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한국 교회는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과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분열로 인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상실하였다. 3.1 운동 당시 우리 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 더 나아가서 타종교와도 연합하여 민족의 독립 운동을 선도하였으며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시대에 민족 통일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한국 교회에게 가장 먼저 요청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연합과 일치의 정신이다. 한국 교회는 교파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루는 데 노력해야 하며, 연합을 통하여 대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 교회는 분단된 우리 민족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를 주체적 입장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이에 적극 대응하며, 민족의 평화 통일을 이루는 데 노력해야 한다. 남한 사회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분단 이데올로기를 교육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적인 통일 공동체의 성격에 대한 교육과 의식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통일 공동체는 국수주의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세계 공동체를 품는 역사적, 민족적 비전과 함께, 통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반영하는 내용을 담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 교회는 북한에 대하여 핵을 포기하도록 요구함으로써 한반도를 비핵화 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핵 문제는 한민족을 공멸로 몰아가는 매우 위험한 요소이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우리는 남북한간의 대화를 계속하며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주장(예: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정책)에 동조하기보다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를 평화적이고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민족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복음의 진리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2003년 2월 13일에 발표된 반전 평화기독연대(준)의 성명서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 이 성명서는 미국에 대하여 1) 이라크에 대한 모든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 2) '한반도의 핵 위기' 조장을 중단하고 남북한의 평화 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 줄 것, 그리고 3)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세계 국가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열강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며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세계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소수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이 항상 작은 자들의 유익을 먼저 의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약자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요즈음 문제가 되고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레 19:33-34) 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땅에서 차별 받고 학대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직면하여 그들을 나의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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