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효도와 충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顔回曰(안회왈) 回之未始得使(회지미시득사) 實有回也(실자회야)
안회가 물었다. "제가 일찍이 가르침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실로 저 자신에 얽매였으나,
得使之也(득사지야) 未始有回也(미시유회야)
이제 가르침을 얻고 나서 비로소 저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되었습니다.
可謂虛乎(가위허호)
이를 허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夫子曰(부자왈) 盡矣(진의) 吾語若(오어약)
공자가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너에게 말하리라.
若能入遊其樊(약능입유기번) 而无感其名(이무감기명)
네가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 활동하더라도 명성 따위에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入則鳴(입즉명) 不入則止(불입즉지)
네 의견을 들어주면 말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그만 두어라.
无門无毒(무문무독)
마음의 문과 벽을 없애고 도에 안주하며,
一宅而寓於不得已(일택이우어부득이) 則幾矣(즉기의)
부득이한 운명에 따른다면 거의 완전하다고 하겠다.
絶迹易(절적이) 无行地難(무행지난)
자취를 끊는 것은 쉬워도 , 걸어 다니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란 쉽지 않다.
爲人使易以僞(위인사이이위)
사람에게 부림을 당할 때에는 거짓을 행할 수 있지만,
爲天使難以僞(위천사난이위)
하늘의 부림을 당할 때에는 거짓을 행하지 못한다.
聞以有翼飛者矣(문이유익비자의) 未聞以无翼飛者也(미문이무익비자야)
날개가 있어서 난다는 말은 들었어도, 날개없이 난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聞以有知知者矣(문이유지지자의)
일이 있어 사물의 이치를 안다는 말은 들었어도,
未聞以无知知者也(미문이무지지자야)
앎이 없이 사물의 이치를 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瞻彼闋者(첨피결자) 虛室生白(허실생백) 吉祥止止(길상지지)
저 빈 곳을 보라. 텅빈 방에는 밝은 햇빛이 차 있지 않은가. 복된 일도 저기에 머문다.
夫且不止(부차부지) 是之謂坐馳(시지위좌치)
그런데도 아직 마음을 비우지 못함을 좌치라고 한다.
夫徇耳目內通(부순이목내통) 而外於心知(이외어심지)
무릇 귀와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앎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
鬼神將來舍(귀신장래사) 而況人乎(이황인호)
장차 귀신도 머물게 되리라.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是萬物之化也(시만물지화야) 禹舜之所紐也(우순지소뉴야)
이는 바로 만물을 교화하는 법도이며, 우와 순 임금도 으뜸으로 삼았던 것이다.
伏羲几蘧之所行終(복희궤거소행종) 而況散焉者乎(이황산언자호)
또한 복희나 궤거가 평생을 두고 실천한 바였다. 하물며 보통 사람에 있어서랴.
* 이 대목에서 장자는 마음의 재계를 강조하고 있다. 즉 작위를 버리고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야 일체의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눈과 귀로보고 들어야 사물의 참된 모습에 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그는 허(虛)와 무(無)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장자가 유가의 중심인물인 공자를 통해 자기의 지론을 펼치는 것도 재미있는 착상이다. 이는 역설과 해학으로 일관한 그다운 수사법이라 할 수 있다.
戀命
作詞 & 作曲 : 川內康範
唄 - 青江三奈
히토리데 이키테모 이노치와 이노치
一人で 生きても 命は いのち
혼 자 서 살아가도 사는것은 사는것
후타리데 이키테모 이노치와 이노치
二人で 生きても 命は いのち
둘 이 서 살아가도 사는것은 사는것
다카라 카케테루 아나타 히토리니
だから 賭けてる あなた 一人に
그래서 걸고있죠 당신 한사람에게
쓰마즈키 쓰마즈키 얏토노 코토니
つまずき つまずき やっとのことに
넘어지고 넘어지며 어렵사리 겨우
쓰칸다 혼토노 코이다카라
つかんだ ほんとの 恋だから
붙잡은 진실한 사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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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코데 신데모 이노치와 이노치
どこで 死んでも 命は いのち
어디서 죽어도 사는것은 사는것
도코데 이키테모 이노치와 이노치
どこで 生きても 命は いのち
어디서 살아도 사는것은 사는것
아우모 사다메요 와카레모 사다메
会うも さだめよ 別れも さだめ
만남도 운명이요 헤어짐도 운 명
코노 요노 키마리오 노리코에테
この 世の きまりを のりこえて
이 세상의 틀에박힌 격식을 뛰어넘어
타가이니 아즈케타 코이이노치
たがいに あずけた 恋 命
서로서로 맡겨놓은 사랑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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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니 치라소오토 이노치와 이노치
なんに 散らそうと 命は いのち
어찌 떨어진다해도 사는것은 사는것
난니 사코오토 이노치와 이노치
なんに 咲こうと 命は いのち
어찌 핀다해도 사는것은 사는것
다카라 쿠이나쿠 후타리테 모에테
だから 悔いなく 二人で 燃えて
그러니까 후회없이 두사람이 타올라
이노치 히토쓰니 토케앗테
いのち ひとつに 溶けあって
생명을 하나로 녹 여 서
아나타토 아게루 코이 하나비
あなたと 揚げる 恋 花火
당신과함께 올리는 사랑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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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이정희의 어퍼컷 / 정영무
지난 화요일 밤 첫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으로 이정희 후보가 화제다. 토론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에서부터 속이 시원하다는 찬사까지 반응이 다양하다. ‘지지율 0.7%에 휘둘린 토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라는 신문 제목도 보인다. 이 후보 자신은 “정말 답답한 분들 많으니까 그분들 말씀을 터놓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이 후보의 직설이 품격이 있는지 또는 어느 쪽에 유리한지 따질 생각은 없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말의 가치는 얼마나 참되며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가, 검증에 충실한가를 기준으로 볼 일이다.
다카키 마사오가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박 후보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현찰 6억원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당연히 모든 유권자의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그만큼 드러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엊그제 한 모임에서도 “6억원이 무슨 이야기야, 지금 돈으로 얼마지”라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고 ‘전두환 장물 6억원’을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더욱 많은 듯하다. 나이가 들거나 생활이 바쁜 사람들 중에는 신문을 보지 않고 인터넷과도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정치적 식견은 텔레비전과 이웃의 전언이라는 폐쇄회로 속에서 굳게 형성된다.
공중파 방송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알에서 막 태어난 새끼 거위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여기는 각인효과가 있다. 정치 이미지는 그처럼 한번 만들어지면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건 머리에 든 생각이 아니라 감성이며, 유권자들은 정책 같은 복잡한 정보보다 이미지 정보를 편리하게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영향력이 지대하며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할 방송이 정권에 장악돼 있다는 데 있다. 다카키 마사오나 6억원이 근래 처음 공중파를 타다시피 한 것은 이미지 조작·왜곡으로 실체와 동떨어진 이미지를 구축해왔음을 뜻한다. 공중파는 박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에 철저히 복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틀어막았다. 검증은 야권의 정치공세로 매도하고 감싸기에 급급했다.
지난 11월15~21일 공중파 메인뉴스 조사에서 대선이 코앞인데도 대선 뉴스는 다 합쳐 4분30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후보의 유세지역을 따라다니거나 후보 간의 갈등을 단순 중계보도 식으로 비춰주는 데 그쳤다. ‘호떡 사먹는 박 후보’ ‘애니팡 점수 4000점’ 식의 보도로 대선을 너무나 가볍고 얄팍한 선거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박 후보의 ‘단독’ 토론에서는 민감한 질문은 쏙 빼고 미리 작성된 대본에 따라 어느 부분에서 옷을 가다듬고 어느 부분에서 눈시울을 적실지 사회자가 호흡을 맞췄다고 한다.
얼굴의 잡티까지 잡아주는 고화질 텔레비전 기술을 구가하면서 정작 중요한 검증 절차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치고 불편한 진실은 묻어버린 것이다. 홍성담 화백이 논란이 된 출산 그림을 내놓은 것도 온갖 언설이 난무하지만 실체와 이미지 사이의 괴리를 누구보다도 직시했기에, 그 고통을 예술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듯 나는 자연스레 점령군에 장악된 방송의 마이크를 잠시 탈취한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정희 후보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바보상자와 그 배후세력에 진실의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점령군과 방송사는 전열을 가다듬겠지만 마이크 탈취 사건이 두 차례 더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만인 환시리의 엄청난 ‘방송사고’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