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집 맛난 얘기] 죽변항 해물포차
바람이 달라졌다. 새파란 가을 바다를 내 몸에 불러들이고 싶은 계절이다. 동해 깊은 바다 찬물에서 뒤척이던 신선한 해산물로 여름내 잠잤던 미각을 깨울 때다. 식재료 신선도가 음식 맛을 좌우하고 음식 맛은 식당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산물을 식재료로 쓰는 횟집은 더 그렇다. 횟집 주인은 해산물의 움직임만 보고도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죽변항 해물포차> 주인장 임동욱 씨는 울진 죽변항에서 나고 자랐고 임씨를 키운 8할은 고향 죽변 바다와 해산물이었다. 해산물에 대해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해산물이다.
- 닭새우
임씨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고향의 다른 또래들처럼 바다와 놀았다. 여름이면 물 밖보다 물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을 정도다. 그에게 바다는 어머니였고 세계였다. 그러나 물 밖 세상은 낯설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서울 변두리에서 막회 집을 하던 계부 밑으로 들어가 함께 일을 했다. 바다에서 갯것과 자란 임씨의 일 솜씨와 요리 솜씨는 뛰어났다. 고향인 죽변항에서 강원도 주문진, 대진, 거진까지 알고 있던 인맥을 통해 물 좋은 자연산 해산물만 가려 썼다. 고향에서 해먹었던 방식대로 문어, 골뱅이, 물가자미 막회를 만들었는데 서울 사람들은 그 맛에 환호했다.
닭새우, 참골뱅이, 문어 등 포장마차형 횟집
고향 죽변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년간 횟집을 하면서 맺은 동해안 여러 포구의 지인들로부터 해산물을 공급받고 있다. 또한 산지에서 점포까지 해산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리한다.
- 닭새우
닭새우 못지 않게 동해안 수심 150m의 심해에서 잠수부가 잡아 올린다는 참골뱅이(2만5000원)도 이 집의 주요 메뉴. 싱싱한 생물을 삶아 골뱅이 고유의 맛과 쫄깃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냉동 골뱅이는 속살을 뺄 때 잘 빠지지 않는다. 특히 맨 끝 쪽의 내장 부분이 그대로 붙어있다. 생물 골뱅이는 삶아 놓으면 내장 부분도 구수하고 파삭한 느낌이 난다. 꽤 먹을 만 하다. 그러나 냉동 골뱅이나 선도가 떨어지는 골뱅이의 내장에서는 역한 냄새가 난다. 참골뱅이를 먹을 때 주의할 것은 골뱅이 내장 속에 순두부처럼 생긴 하얀 독소가 들어있는데, 이를 제거하고 먹어야 한다. 이것을 먹으면 현기증이 나고 어지럽다.
닭새우나 참골뱅이만큼 깊은 바다는 아니지만 비단멍게(1만8000원)도 동해안 수심 30m에서 잡는다. 동해바다 향기를 간직한 비단멍게는 표면에 돌기가 없고 매끈하며 붉은 비단보다 고운 색감을 자랑한다. 보드라운 비단멍게 속살을 삼키면 허한 가슴이 단풍으로 물들 것 같다.
- 참문어, 소라 등
호남지방에서 홍어가 받는 귀한 대접을 영남지방에서는 문어가 차지하고 있다. 문어는 제사상과 잔칫상은 물론, 귀한 손님 접대용으로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해산물이다. 문어는 청정해역에서 나올 뿐 아니라 양식이 되지 않아 모두 자연산이다. 이 집에서는 포항 이북에서 나는 참문어(피문어)를 선별해 쓴다. 문어의 연중 시세가 일정치 않아 문어숙회를 시가대로 받지만 요즘에는 대(大)자 기준, 5만원을 받고 있다.
문어는 클수록 맛이 좋은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주인장 임씨에 따르면 삶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크기에 동해안에서 잡히는 문어가 육질도 부드럽고 문어 고유의 맛도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오래 문어를 접해본 사람은 육안으로 문어를 살펴보면 대번 안다. 그 맛과 육질의 상태를.
주머니가 가벼운 고객을 위해 임씨가 개발한 해물라면(4000원)도 단골들 사이엔 마무리 메뉴로 알려져 있다. 새우나 문어 등 해물 삶은 물에 라면을 끓이되 라면 스프는 넣지 않는다. 대신 고추기름을 넣어 얼큰함을 강조하고 오징어, 마른 꼴뚜기, 홍합, 비단조개, 꽃게 등 그때그때 나오는 해물을 넣어 끓였다. 좀 더 고급스럽게 먹고 싶은 고객은 여기에 닭새우 등 비싼 해산물을 추가한다. 물론 추가하는 해산물만큼 라면 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맛난 해물을 먹다 보면 기본 안주로 나오는 달걀 지짐과 콩나물국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평상시에 이런 음식을 먹기 쉽지 않다. 달걀 지짐은 프라이와 부침과 지짐의 어느 영역으로도 가둘 수 없는 독특한 달걀 요리다. 무심한 듯 담백한 콩나물국도 각종 향미의 파고에 시달린 혀와 입 안을 담담하게 달래준다.
- 해물라면
9월이다. 가을이 오는 소리 이미 문 밖에 가득하다. 가을 닮은 사내가 썰어주는 해물을 씹으면 어느새 우리 마음은 가을 향기로 가득 차지 않을까? 그래도 남은 빈 자리는 소주 한 잔과 사랑으로 채울 일이다. 지금은 고독이라는 병에 대처해야 하는 계절이니까.
<죽변항 해물포차>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3가 150-2 전화: 02-466-7769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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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좋은정보 감사 한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