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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선 할머니가 2011년 열린 구순잔치에서 오세호(왼쪽)·세민 신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4형제 신부를 길러낸 이춘선(마리아) 할머니가 11일
하느님 품에 안겼다. 향년 94세.
고인의 장례 미사는 13일 속초 교동성당에서 춘천교구 총대리 하화식 신부를
비롯한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슬하에 7남 1녀를 둔 이 할머니는 1971년 사제품을 받은 오상철(춘천교구
원로사목 겸 영동지구 고해신부) 신부를 시작으로 오상현(김화본당 주임)ㆍ
세호(운교동본당 주임)ㆍ세민(청호동본당 주임) 등 네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유일한 딸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다. 2006년에는 손자
오대석(내면본당 주임) 신부가 사제품을 받았다.
8대를 이어온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네 아들이 성소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과 함께 성모님 앞에 앉아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고, 힘든 일이 닥치면 끊임없는 기도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바쁜 삶 속에서도 틈날 때마다 성인전과 교회 서적을 읽으며 자식들에게
신앙 지식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따뜻한 어머니였지만 신앙 교육만큼은 엄격하게 시켰다. 아들이 주일미사에
빠지면 어김없이 매를 들었고 혼쭐을 냈다. “영혼의 양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밥도 먹을 자격이 없다”면서 밥도 굶길 정도였다.
이 할머니는 사제가 된 아들들에게 종종 편지를 보내 착한 목자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행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늘 기도하는 사제, 묵상하는 사제, 무슨 일이 있어도 신자들
앞에서 미소를 보이는 사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내 오세민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첫 임지로 떠나던 날에는 오 신부가 백일 때
입었던 저고리와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따리에 싸서 건네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본지가 2012년 사제 성화의 날 특집으로 마련한 ‘네 아들 신부에게
보내는 91살 어머니의 편지’(2012년 6월 10일자)에서는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은
성체조배를 하며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면서 “성체를 항상 가까이
하며 예수님과 친교를 맺고,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야 행복한 사제로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2011년 6월 강릉 임당동성당에서 열린 구순(九旬) 잔치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내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 덕분에 지금까지 정말 행복
하게 살았다. 기도와 희생밖에는 한 게 없는데,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셔서
은총 속에 살 수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느님 자녀로 살아온 90년
인생의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오세민 신부는 장례 미사 고별사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식들을 많이
보듬어주시고, 장례 미사 성가도 직접 고르시며 이별을 준비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장례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슬퍼하지 않게 두 번 웃겨드리라’고
부탁하셨다”면서 갑자기 선글라스를 꺼내 껴 이 할머니의 바람대로 신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가 직접 고른 장례 미사 성가는 입당 ‘주님은 나의 목자’(50번), 화답송
‘주님은 나의 목자’(54번)였다. 미사 참례 신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 이 할머니는
성체 성가로 ‘주여 임하소서’(151번), ‘무변 해상’(251번) 등 두 곡을 골랐다.
마지막(파견) 성가는 ‘한 생을 주님 위해’(248번) 였다. “한 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드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셨네….”
<평화신문 임영선 기자>
<가톨릭 성가 248번 한 생을 주님 위해>
첫댓글 산부님 아드님을 4분이나 하느님 섬기며 살으시라고 교육하신 거룩한 어머님 지금 은 하느님 품에서 편히잠드소서 존경하고 머리숙여 집니다 많이 느끼겠읍니다♡♡♡
주님,
하느님 품으로 가신 이춘선 마리아에게
영원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