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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연합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OHC 170.1) 천연 계에 나타난 다양한 사물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모든 사물들은 그들의 특수한 행동범위가 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은 한 큰 전체 속에,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하나이셨고, 이 위대한 중심으로부터 모든 같지 아니한 부류와, 다양한 재능들을 통하여 이 놀라운 연합은 확산된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재능들을 존중하고, 이기심 없는 행동과 사상 속에 또는, 선함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있고, 역사하는 대리자로서, 전체를 통하여 순환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합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는 행위가 아니요, 성령께서 품성을 꼴 짓는 결과이다.(OHC 169.4)
이 말씀에서 어떤 종류의 연합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양성 안에서의 연합이다. 우리 마음들은 동일한 통로로 가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동일한 사업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여러 능력에 따라 사업을 주셨다. 행해져야 할 여러 가지 사업이 있으며, 여러 다른 능력을 가진 일꾼들이 필요하다. 우리 심령이 겸손하고,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겸양(謙讓:겸손과 양보와 사양)과 낮게 되는 것을 배웠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좁은 길 안에서 전진할 것이다.(2SAT 263.3)
그리스도와 신자들과의 연합은, 피차간의 연합을 하나의 필연적 결과로 이루어 줄 것이며, 그 연합의 유대는 지상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매일, 매 시간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연합하고, 그분과 교통하는 길밖에 없다.... 은혜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 우리의 기쁨, 우리의 유용성은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연합과 우리가 그분 안에서 발휘하는 믿음의 정도에 모두 좌우된다.(AG 211.3)
하나의 가지가 다른 가지에게서, 생명력을 빌려오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은 포도나무의 줄기에서 와야 한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매일, 매 시간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연합하고, 그분과 교통하는 길밖에 없다.... 은혜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 우리의 기쁨, 우리의 유용성은,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연합과 우리가 그분 안에서 행사하는, 믿음의 정도에 모두 좌우된다.(SD 290.4)
그대들은 사단의 활동 아래 있는 세상의 위험과 불행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정력을 쓸데없는 탄식에 소모하지 말고,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나가서 일하라. 깨어라. 그리하여 멸망해 가는 자들에 대한 책임을 느껴라.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들은 영원한 행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들이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영혼은 그 앞에 있는 가능성과, 그 영혼에게 주어진 영적 특권들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를 얻으면 소유할 수 있는 능력과, 순종하면 생명의 시여자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영생 때문에 매우 귀중하다. 하늘에서 볼 때, 한 영혼은 재산과 가옥과 토지와 돈으로 이루어진, 온 세상보다 더 귀중하다. 한 영혼의 회개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인도된 한 영혼은 그의 주변에, 하늘의 빛을 퍼뜨려 도덕적 암흑을 뚫고, 다른 영혼들을 구원할 것이다.(6T 21.2) 우리는 능력과 가능성을 최고의 상태로까지 발전시킬, 이처럼 놀라운 동기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사업에서 난쟁이가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아프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남녀들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다. 생명력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다. 성장은 생명력에 대한 증거이다.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9T 184.2) 하늘을 향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정(情:사랑의 친근감과 온유하신 그리스도 품성)을 맞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하라. 그 어떤 개인과 국가도 습관이나 사고가 완전할 수 없다. 서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각 민족이 서로 섞여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공동의 목적을 가지도록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좋은 본이 될 것이다.(UL 281.3)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의무가 다 중하다. 주께서는 봉사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정확하게 측정하신다. 사용하지 않은 능력들에 대해서도, 사용한 능력과 똑같이 책임을 추궁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했어야 할 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PK 488.1)
지금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과, 모든 교인들이 자신의 사업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철저하게, 일치시켜야 할 때이다. 끊임없는 경성과 열렬한 기도와, 그리스도와 같은 언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바라시는 바가 무엇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9T 185.1) 영광의 왕이시며 하늘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높은 위치에서 사람들의 상태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연약함과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을 동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떤 분이 되는지 보여주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하늘 왕궁을 떠나 그분의 신성을, 인성으로 바꾸어 입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품성을 이루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부자들과 거처를, 함께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빈곤 속에서, 비천한 부모의 태생으로 태어나셔서 멸시받는, ‘나사렛’ 마을에서 사셨다.
도구를 다룰 만한 나이가 되자마자, 그분께서는 가족의 생계를 돌보는 짐을 나누어졌다.(9T 185.2)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만나서 견디어야 하는, 유혹을 당하고 시련들을 견디기 위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인류의 선두에 서셨다. 그분께서는 유혹 받는 자들을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 알기 위하여 인류가 타락한 원수에게서 당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셔야 한다.(9T 185.3)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간이 멸망을 당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이시며 계몽자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주신 것들 외에 다른 계시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그것을 주셨을 것이다.(8T 266.1)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의 개성을 갖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형체로 세상에 오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그분의 무한한 희생을 통하여,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고자 왕의 의복과 왕의 면류관을 벗어 놓고, 그분의 신성을 인성으로 입으셨다.(9T 68.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심판주가 되셨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심판주가 아니시다. 천사들도 아니다. 인생을 스스로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완전한 생애를 하신 분께서 우리를 심판하셔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심판주가 되실 수 있다.
형제들이여, 이 사실을 기억하겠는가? 목사들이여, 이 사실을 기억하겠는가? 아버지 어머니들이여, 이 사실을 기억하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심판주가 되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심판자로 임명되지 않았다. 그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대 스스로를 징계하는 일뿐이다. 그대들이 스스로를 재판 자리에 결코 앉히지 않기 위하여, 그분께서 주시는 명령을 명심하도록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탄원하는 바이다. 이 기별이 날마다 내 귀에서 울렸다. “재판석에서 내려오라. 겸손하게 내려오라.”(9T 185.4)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만이 범법을 속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타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하늘과 조화시킬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책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매우 가증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틀림없이 분리시킬, 죄의 수치를 자진해서 떠맡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참의 심연(深淵:매우 깊고 깊은 죄악의 저주)에까지 내려가실 것이었다.(RC 50.2)
은혜와 평강의 생애- 만일 그대들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벧후1:5-7) 한다면, 그대들은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베드로후서 1장’에서 발견할 것이다. 이 덕성들은 놀라운 보배이다. 그것들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사13:12) 한다.(9T 186.2)
우리는 이생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우리가 가진 재능을 최선 껏 활용하여, 은혜에 은혜를 더하고, 능력에 능력을 더하므로 우리가 하늘에 능력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마28:18)다고 말씀하신다. 무엇 때문에 그분에게 이 권세가 주어졌는가? 우리를 위하여 주어졌다.
그분께서는 그분이 우리의 맏형님으로서 하늘로 돌아가셨고, 그분께서 받으신 무한한 권세를,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를 바라신다.(9T 186.4)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교회에 주신 교훈을 생애에 실천하는 자들은 위로부터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서 덧셈의 계획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말과 행위로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아야 한다.
그분께서 생애하신 원칙들이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꼴 지어야한다.(9T 186.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분명히 닻을 내리게 될 때, 우리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 인류의 선두에 서서 죄의 점이나 흠이 없는 품성을, 계발하기 위하여 인성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기 때문이다.(9T 187.1)
왜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약하고 무능한가?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품성을 연구하는 대신에, 자아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의 기질을 연구하므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개성과 우리의 특성에 맞는 위치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생각하기 때문이다.(9T 187.2) 형제들이여, 이 모든 것을 다 내어버리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기호와, 우리의 공상에 계속 골몰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동료 일꾼들을 우리에게서 분리시키는, 우리 자신의 특성과 성격과 개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유지해야 할 품성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품성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간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형제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만나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는 마음과 행동의 연합을 주실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자아에 대하여 죽고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 줄, 하나의 활동적인 산 원칙, 하나의 능력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9T 187.4) 연합을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라.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것을 위하여 일하라. 그것은 영적 건강, 고상한 사상, 고결한 품성, 하늘에 속한 마음을 가져다주고, 이기심과 악한 추측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대들을 사랑하사 자신을 주신 분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이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다른 사람들을 그대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라. 그리하면 그대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하늘우주 앞에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 앞에서, 그대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 보여 줄 것이다. 그대들이 보여주는 모본으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9T 188.1)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묶여지는 이적이 이루어진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주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함께 앉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증거를 생활로 보여주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때, 그분의 은혜가 그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신다.(9T 188.2)
엘렌 G. 화잇은 의심의 그림자를 어떻게 쫓아 버렸는가?— 사단이 나의 길 위에 악마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에, 나는 그것을 바라보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그와 그의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함으로써, 마귀를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그 그림자를 가르고 나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고후3:18)른다. 믿음을 말하라.
그대가 표현하는 모든 의심은 뿌려진 씨앗이며, 그 씨는 어떤 이의 마음 가운데 뿌리를 내릴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마디의 의심이라도 말하여, 그대를 복종상태 아래 붙잡아 둘 마귀의 놀라운 능력을 인하여, 그를 찬양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사셨으며 속량하셨다. 사단은 나를 주관할 아무런 권세도 없다.(2MCP 675.1)
사랑은 자아가 가려질 때 저절로 솟아 나옴—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려질 때, 참된 사랑은 저절로 솟아 나온다.
그것은 감정이나 충동이 아니라, 성화된 의지의 결정이다. 그것은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과 영혼과 품성 전체의 변화, 즉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사는 것에 있다. 우리의 주인이시오 구세주께서는, 그분에게 우리 자신은 드리라고 요청하신다.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자아를 하나님께 넘겨 드리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서 적합하다고 보시는 대로, 사용되도록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순복하는 지점에 이르지 않는 한,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게, 유용하게 혹은 성공적으로 일하지 못할 것이다.(1MCP 206.1)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기도를 올리면서, 그 기도에 이 말씀을 하신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요17:17).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 이다.”(요17:17-19 참조).
이 말씀을 주의하라.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그분은 완전한 모본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완전한 순종의 생애를 사셨다.
그리고 그분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저희도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 이다.” 무엇으로? 정서로? 감정으로? 아니다. 진리로 말미암아서이다. 우리는 감정을 신뢰할 수 없으며, 진리를 알아야만 한다.(1SAT 16.2)
여기 다른 성경 말씀이 있다.(신명기13:1-5.인용). 여기에 계명이 그들 앞에 품성의 시험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었나니.” 그리고 그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이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계명을 행하는가?
우리는 그분의 율법의 바로 그 핵심에 놓으신 안식일 계명의 원칙을 우리의 생애에 실천하기 위해 연구하는가?(1SAT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