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영미 복음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 복음주의 운동의 소중한 구심점 역할을 해온 로잔대회가 내년에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에서 개최된다. 한국 교회는 제1차 대회 때부터 꾸준히 참여해왔고, 로잔 정신을 국내교회와 학계에 소개·실천하기 위해 힘썼다. 그 영향과 결과를 계량적으로 제시할 순 없지만, 근본주의와 에큐메니컬로 양분된 한국 교회 안에서 일군의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라는 로잔 언약(제5항)을 균형있고 책임있게 실천하려고 분투해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로잔대회는 지난 50년간 한국 교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주목할 만한 영향을 끼쳐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려와 비판, 갈등의 모습도 보인다. 그동안 로잔과 특별한 관계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대형교회들, 심지어 로잔 정신과 상반된 행보를 보였던 인물들이 대회를 주도한 반면, 오랫동안 온갖 비판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로잔 정신을 실천해온 이들이 배제되면서, 비판과 우려, 갈등과 분열의 소식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4차 로잔대회를 바라보며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번 대회는 ‘로잔 언약 제5항‘의 의미와 가치를 한국적 맥락에서 깊이 성찰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며, 따라서 누구나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해 왔고, 때로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를 서로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친다.“
이런 반성과 결단은 당시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과 근본주의 사이에서 양극단을 배제하면서, 선교의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현실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진지한 몸짓이었다. 로잔 운동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규정하고, 그 의미와 범주를 꾸준히 심화·확대해 왔다. 따라서 이번 한국대회는 선교와 전도를 여전히 개인 전도와 영혼 구원에 한정하는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들, 특히, 젠더, 이념, 세대, 다문화, 분단, 전쟁 같은 난제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실천 가능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대회가 대형교회와 주류 신학자들만의 잔치가 되어선 안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로잔 언약에 큰 감동과 자극을 받고, 그 정신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온 일군의 학자와 학생, 목회자와 평신도, 교회와 선교단체 등이 한국 교회 안에 존재한다. 주류 신학과 교회의 기득권 세력은 그들의 몸짓과 외침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물론, 그들만이 로잔 운동의 유일하고 정당한 적자일 수 없다. 하지만 로잔대회에서 이들의 존재와 의견이 부정되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따라서 이들이 이번 대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것은 당연하고 소중하다. 부디, 이번 대회에 인력과 재정을 후원하는 다양한 규모의 교회들, 한국 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꿈꾸는 교우들, 이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사람들, 그리고 로잔을 사랑해서 전 세계에서 한국을 찾아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장벽 없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셋째, 이번 대회에서 제2의 빌리 그래함, 르네 파디야, 그리고 존 스토트의 출현을 기대한다. 로잔의 탄생은 일차적으로 당대의 양극단 사이에서 건강한 복음주의 선교 운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인력과 재정을 지원한 빌리 그래함의 막강한 역량 때문에 가능했다. 동시에, 로잔대회가 영미권의 보수적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잔치로 전락하지 않고, 제3세계의 참담한 현실을 반영하여 더 포괄적·개방적·진보적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르네 파디야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용감하고 탁월한 인물들 덕택이다. 끝으로, 영미의 보수적인 백인들과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의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인내와 지혜, 포용과 설득으로 양자 간의 타협과 일치를 이루어 낸 것은 전적으로 존 스토트의 공헌이다. 이번 대회도 다양한 지역, 인종, 신학, 이념, 성과 젠더, 쟁점들이 충돌하면서 진행 과정이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회 진행을 위해 엄청난 비용과 인력도 필요하겠다. 따라서 대회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인력과 재정을 지원할 든든한 후원자들, 대회의 정신과 가치에 선한 영향을 끼칠 탁월한 신학자들, 그리고 대화를 조율하고 풍성한 결실을 이끌어낼 현명한 조정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다양한 재능과 역할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때, 이번 한국대회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적 행사가 분열과 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회, 그리고 본질을 상실하여 위기를 자초한 한국 교회에게 하늘이 내린 은혜의 선물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복음주의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널리 확장되는데, 한국 교회가 의미있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