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문화재에 대해 전혀 모를 때이므로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낮은 산이고 놀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 이외는 없었다. 건천학교 근무시 아이들이 이 산을 쳐다보면서 보0산이라고 하여 야단을 치기도 하였다. (이 산이 학구였다.)
소풍에서 돌아와 하숙집 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보0산이 맞고, 한 술 더 떠 반대편 용명3리(자연부락명이 밀구라고 기억된다)를 넘어가는 고개를 ㅈㅈ산이라고 하고, 보0산에 샘이 있는데 막대기로 쿡쿡 찌르면 그 앞 동네 처녀가 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웃기려고 지어 낸 이야기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4310년 쯤인가 책에서 읽고 비로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속도로로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창 밖으로 쳐다 보기만 하다가 4323년인가 친구 한 사람과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올라가니 산 기슭에 유학사란 절이 있고 이 절의 약수가 바로 보0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기어코 그 보0산의 중심을 보기로 작정하고 올라 가 보니 정말 셈물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손질은 하지 않았고 자연 그대로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0. 멀리서 본 여근곡 (사진은 최근의 것임)
0. 여근곡에서 나오는 물을 끌어다 만든 유학사의 약수
0.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갔던 곳 (여근곡은 멀리 보인다.)
0. 설화에 얽힌 유래
선덕여왕 5년의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 두꺼비(개구리라는 설도 있음) 우는 소리가 왕궁안 옥문지에서 요란히 들려왔다.
한 겨울에 두꺼비소리라니 가당치 않은 일이다.
신하들은 틀림없이 어떤 불길한 흉조라고 수근거리고 있는데
현명한 여왕은 무슨 생각에서였음인지 두 사람의 장군을 불렀다.
『지금 당장 달려가 서북쪽 여근곡에 적을 섬멸하라』라는 것이니 여근곡에 출전할 것을 명령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는 500여명의 백제 기습군사가 숨어서 진을 치고 있었다.
출동한 신라군은 계곡 속에 숨어 잠복하고 있던 적군을 포위해서 섬멸하고 말았다.
그 뒤 신하들은
여왕에게 어떻게하여 적군의 매복을 알아차렸느냐고 물었다.
『하얀 것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곧 이것은 서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두꺼비가 하얀 것은 여성의 기운이 왕성한 그 곳 옥문의 여근곡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옥문에 들어간 것은 힘을 잃고, 맥을 추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고 선덕여왕은 설명을 했다고 전한다.
첫댓글 우리나라 지리적 산세, 아니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男根峰 女根谷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산세지명이 각 지방 마다 전해오는 것이 많지만, 오작교가 소개한 女根谷은 그 형상이 지금까지 그림으로 보아온 女根谷 중에서 가장 형상화 되어있는 것 같군! 가까운 곳에 이런 신비한 산세가 있다는 것을 자네 덕분에 처음 알았네. 좋은 정보 고맙네.
멀지 않는 곳이니 한 번 가보시고 약수도 한 잔 마시면 시원할 것이네.
경주 가는 길에 우측으로 보이는 그 산을 보고 보0산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나도 들었어. 가보지는 못했는데....언제 한번 가볼까?
맞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보면 보입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경주로 갈때마다 말로만 들은 여근곡이 도대체 어디인가 하고 창을 열고 살펴 보았지만 확실하지 않았는데 오늘 좀 알것 같군. 재미있게 소개해 주어 잘 읽었네.
일반국도로 가야 현장에 갈 수 있으니 시간 있을 때 한 번 가보게나. 여근곡에서 나오는 약수도 한 잔 하고 회춘할 지 안느가?
남자로 태어나서 관심이 매 하가지인지라, 그 곳에 한 번 가봤으면 싶네.
오랜만일세. 한 번 가보게나 여근곡에서 나오는 약수 마시고 회춘 할지 누가 아는가?
女根谷 이라 흥미 있는 지세인데 최근 사진 모습은 너무나 뚜렷한 형상인듯 참 희안하다고나 할까 역사도 깊고 큰 공을 세운 지세인데 산이름도 고상하게 개명하여 홍보하면 가치가 안될까??
이 부근의 사람들은 아예 보0산이라고 한다네 한 번 가보게네 정말 신기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