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를 가르쳐 주신 운해 선생님께서 내게 호를 만들어 왔다. 두 개 중 택일하라고 한다. 머뭇거리다가 남평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송하(松下) 해라.” 생각을 좀 하는 척이라도 하셨으면 좋으련만 바로 결정해 주신다. 그래서 미술판에선 송하라 불리게 됐다. 요즘도 남평 선생님은 늘 부르던 “송하”가 입에 익어서 그렇게 부르시곤 한다. 나 또한 한 번도 선생님의 이름 ‘김상립’을 불러 본 적이 없다. 그냥 ‘남평 선생님’이었다. 어떤 때는 이름 자체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글 판에서는 호(號)보다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예법에 어긋난다는 유교의 피휘 사상이 글 판에선 많이 희석된 모양이다.
구룡포 등대 박물관에 갈 때마다 동정 선생님이 생각난다. 문기둥에 박힌 ‘등대 박물관’이란 글이 동정 선생님의 글이다. 서예가이신 선생님이 내게 호를 하나 지어 주셨다. 늘 살찐 두꺼비 같은 놈이라며 놀리시더니만 ‘유당(榴堂)’이란 호를 내리신다. ‘석류나무유(榴)’에 ‘집당(堂)’ 자이다. 소세양이 기생 명월이, 아니 좀 더 품격 있는 글을 위해서 기명(妓名)보다는 본명인 황진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암튼 황진이를 꼬시려고 내민 글자가 ‘유(榴)’가 아니든가. 이 한 글자를 풀이하면 석유나무유(碩儒那無遊) 즉, 큰선비인 내가 여기 와 있는데, 너는 어째서 나와 함께 놀아 줄 생각 없느냐 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한세상 재미있게 놀다 가라는 말씀인 듯하다. 그래서 글 판에서는 돌아가신 동정 선생님이 주신 ‘유당’을 사용한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면 불명을 큰 스님에게 얻는다. 이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3년 동안 공부했으면 졸업장에 불명하나 적어야 하는데 난 사양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아직 불명을 받을만한 배움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다. 그냥 향을 팔에 놓는 연비 의식으로 졸업을 했다. 왜 남들 다 받는 불명하나 없을까 싶지만 내겐 신체적인 문제가 있었다. 봉분이 높아 비석은 애당초 보이지 않는 나의 신체적 결함, 대단한 똥배 때문에 졸업식 때 해야 하는 백팔배를 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중 대구 삼대 법사님이시자 나의 스승이신 보명 법사님에게 ‘해심(海心)’이란 불명을 얻고 좋아서 천방지축 사용하고 다닌다.
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고 문순공 하면 이황 선생을 떠올리는데 아마 족보 책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은 조상 중에 충무공과 문순공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알 것이다. 사암 선생이 누군가? 사암보다는 다산이 더 알려진 정약용 선생을 일컫는 말이다. 완당 선생보다는 추사가 더 알려진 김정희 선생은 호가 오백 개도 넘는다고 한다. 같은 맥락은 아닐지 모르지만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이고 샤롯브론테 의 본명은 커러벨이다. 샤롯브론테가 누구냐고? 제인에어 작가다. 마지막 잎새의 오 헨리도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이다. 윤영 선생 본명을 들었는데 잊어 버렸다. 뭐더라?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호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내 삶에 호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호를 지어 다녀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설혹 불러달라고 요청을 해도 친구들은 드디어 맛이 갔다고 생각하고 놀림만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것을 유식하게 사자성어로 명약관화인지 명관약화인지 암튼 뭐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호를 몇 개 가지고 있으니 영 쓰레기처럼은 살지 않았다 싶어 위안으로 삼는다.
“천안댁~” “함안댁~” 영화나 드라마 보면 이런 이름을 부르면 등장하는 사람은 거의 중년의 가사도우미분이 등장하곤 한다. 그래서 00 댁이란 말이 하대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질하여 요즘은 잘 사용을 안 한다. 이것을 택호(宅號)라고 하는데 우리는 ‘택구’라고 불렀다. 주로 친정집 동네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아 요즘처럼 수준 낮게 애들 이름을 붙여 “00 엄마”라고 하지 않고 “00 댁”으로 호칭 되었다. 근데 이 택호가 질이 떨어져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결혼한 여자를 그 신랑 성(姓)을 따서 ‘김실이’ ‘오실이’ 하는 것도 요즘은 여간해서 듣기 힘든 소리가 되었다. 우리 나이 대도 그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이 태반이다.
‘댁’을 경상도 사투리로 ‘띠기’이다. ‘선산 띠기’ ‘의성 띠기’ 울 엄마는 ‘대구 띠기’다. “야가 대구 띠기 큰 아 아이가.”(이 애가 대구댁 큰애가 맞구만.) 이젠 이 소리가 점점 듣기 힘들어져 가는데 누군가 택구 짓는 날을 잡아 집안이 모였다는 이야길 듣고 참 멋을 아는 집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택구 하나 짓자”
“택구? 뭔 개 이름이가?”
“엄마같이 대구띠기 같은 거 있잖아.”
마누라 눈동자에 검은색이 없어졌다.
첫댓글 유당선생님!!
ㅎㅎㅎ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엔 항상 사모님이 등장하셔 가족 간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는 무슨 띠기도 들어본적 없고 유당 같은 호도 없고 누구엄마도 별로 들은 적 없고 조선생으로만 ㅋ
유당 이정경샘이 호가 같아서 자기는 유당을 못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 택호도 그냥 아무에게나 붙여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택.호를 붙이는 날 동네 일가 종친들을 다 한자리에 불러다 놓고 음식대접을 하고 엄숙하게 택호를 부르도록 선포식 같은 것을 해야 택호를 붙일 수가 있었다하는데 그래서 가난한 집은 택호를 쓰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빵~ 터졌습니다.
유당 선생님,굿입니다.
실지로 사람들이 쓰는 호칭도 다양합니다.
아호니 법명이니 세례명이니 예명이니 필명이니 하면서요.
자신의 거처나 지향에 따라 이름을 짖기도 합니다.
요즘은 '윤슬'이니 '물결'이니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가 하면 별짜도 있어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파블로 빈살만 가르시아스'
이 사람의 주장에도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지구촌 시대에 외국인들의 편의를 고려해서 지었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