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 월 19 일에는 37 회 서울회원과 대전회원과의 맞남의 행사가 있었다.우주시대에 걸맞게 독킹이라고 해두자.모교 정문앞에 관광버스 한대를 대절해 놓고서 사람을 기다린다.대전의 최천범 회장은 예정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버스에 오르지못하고 버스의 앞뒤를 왔다갔다한다.마치도 땅거미가 지는 사립문 밖에서 서성이면서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은 심정으로 먼 앞을 바라보면서 한사람이라도 더 나타날것을 기대하면서.
예정시간인 오전 9 시가 지나 9 시 10 분에 26 명으로 마감을 하고 모두들 모교 후원의 정원으로 몰려간다.현정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작은 정원에 위치한 현정탑에서 일제히 묵념을 올린다.현정탑에 참배하고 버스에 올라서서는 이곳저곳에서 웅성인다.오늘이 4.19 날이며 우리들은 누구인가 ? 바로 4.19 의 주역들이 아닌가.나라의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면서도 가히 혁명이라고 까지 불렀던,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던 4.19 민주화 운동은 43 년이 흘렀다고 해서 이렇게 빛이 바랬단 말인가. 비록 주역이었던 우리들이 현직에서 퇴역한지 여러해가 흘러갔지만서도.
버스T/V YTN뉴스 화면에 4.19 기념행사 장면이 나온다.대통령이 분향을 하고 묵념을 올린다.그러자 이것만으로 그냥 만족해야지 하는 체념의 목소리가 들린다.그런데 갑작이 T/V 화면에 순교자들의 묘비가 보이는가 싶더니 한 묘비가 크로즈엎 되어 비친다.중앙 대학교 고병래라는 글자가 또렸하다.야 ! 저기 고병래 나왔다 ! 누구 입에선가 함성이 나오고 일제히 T/V 화면에 시선이 집중한다.그리고나서 고병래와 학창시절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의 추억담이 잠시 오간다.
예정시간을 조금 지나서 출발한 버스는 금새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휴게소에 잠시들러 티-타임을 갖기도 하면서 우리의 낭만버스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간다.1시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고 실제로 잘 소비도 되지않고 하여 간식거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앗뿔사 !!! 이것이 회장단의 실수였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입이 심심하니 대책을 세우라고 하면서, 한친구가 끈임없이 쏟아내는 죠크를 들으면서,씨즌이 씨즌인지라 정치에 관한 열변을 토하는 한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차창밖의 계절을 읽어 볼 겨를도 없이, 우리의 버스는 어느새 독립기념관의 주차장에 안착하여 우리들을 토해 놓는다.
나는 15 년 전에 두어번 다녀간 이후로 오늘 처음온다.주변의 많은 변화를 느꼈다.주차장에서 기념관에 이르는 보도를 고무판과 나무판으로 깔아놓아 걷기가 아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그리고 휘날리는 태극 깃발의 숲을 광장의 좌우에 개설하여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준다.또한 이름만 들어도 우리를 꿈틀하게 하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거대한 비석이 대전 어느 기업가의 후원으로 광장에 세워저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 조상님들의 웅대한 기상을 느끼게 하여준다.
기념관에 들어서서는 웅장한 석주에 새삼 놀랐다.전에도 보아왔던 건물 기둥이지만 당시에는 무심코 보고 넘어 갔던 것이다.구라파 지역 여행을 해본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름있는 성당 한두곳을 방문하게 되고 ,성당 건물에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돌기둥들을 바라보면서 한번쯤은 감탄하고 돌아 왔을것이다.그런데 이곳 독립기념관의 돌기둥들은 구라파에서 본 그 어느것보다도 둘레가 컸으며 높이 또한 빠지지 않음을 발견하고 나는 새삼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반원형으로 배치된 거대한 전시관들이 제1호관 부터 7 호관 까지 늘어서 있으며 이들을 2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둘러 본다는 것은 무리이다.물론 어느 부지런한 친구들은 시간이 될때 까지 열심히 돌아 다니는 자도 있었으나 나는 제1호 선사시대관과 마지막 제7호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관 만을 둘러보기로 하였다.이야말로 코메디였다.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이었다.어쨋거나 십수대의 버스로 몰려온 초등학교 학생들의 조잘대는 줄 속에 파묻혀서 걸었다 그리괴 순간 초등하교 시절의 가물가물한 추억을 떠올려 귀여운 이들 어린이 들에게 오버랲 시켜 보았다.
지정된 12 시가 되니 모두들 날엽하게 버스에 올라 탄다.과연 이들이 70 노인들인지 몸노림들이 가쁜가쁜하다.식사시간엔 소주 46 병을 치우고도 허트러 지지않고 끗덕 없으니.서울 회원들보다 조금 일찍 12시 30분경에 병천 아우네 순대집에 도착하여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점심시간이 다소 지나서 출출한 판이라서인지 이곳 저곳에서 빨리 대령하라고 난리들이다.식당의 심부름하는 아가씨가 뛰어 다니면서 커버를 잘해 준다.
서울회원들은 천안역 까지는 국빈 대우를 받으면서 잘 왔으나 천안에서 아우내 장터 까지 오는데는 만원 버스에 40분간을 매달려서 오기도 하였다고 한다.그리고 서울은 개별 출발이라서 다같이 동시에 도착하지 못하고 삼삼오오 나뉘어서 도착하고 있었다.도착 할 때마다 방안은 앉은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온통 반갑다, 오랫만이다,소리로 소란스럽다.이러기를 대여섯번이나 하고 나서야 서울 회원들의 꼬리가 방안에 다 들어왔다.
이어서 대전회장과 서울회장의 간단한 인사가 있었고 연회시간으로 들어갔다.
짝으로 들여놓은 소주병이 금새 바닥이 나고 풍성하고 훈훈한 장면이 한동안 지속되었다.오후3시가 넘어서자 이제는 목까지 차올라 왔는지 자리를 떠서 밖으로 옮기는 자가 속출하고 커피로 입가심하는 자가 속출하여 연회를 종결하였고,서울 회원들 까지 대전의 버스에 실었다.통로 까지 꽉들어차서 입추의 여지가 없는 버스는 천안역을 돌아서 서울회원들을 내려 주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서 우리들의 버스는 대전으로 머리를 향한다.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서, 비록 테입이 자주 끈어지지만, 밉지 않은 노래소리를 들으면서,이곳 저곳에서 간간이 터지는 죠크를 들으면서,양념삼아 예의 정치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둔산을 거처서 오후 5 시가 넘어서 출발지 모교 정문에 우리들의 버스는 정차한다.
오늘 대전 27 서울 30 전체 57명 정도가 참석하였는데 몸이 불편함에도 대전의 박천규와 서울의 이호영이가 참석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인다.그리고 천안에서 근무하는 정동주가 점심시간을 내어 우정 참석하여 주었고 ,천안의 터주대감 송각준회원은 내집에 오신 손님들인데 다 접대를 하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하면서 대전 서울 각각에 금일봉 까지 내주었다.이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한번 보낸다.
첫댓글무엇보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대전 서울의 회장단과 총무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논산에서 참석한 유지찬,임헌구, 홍기표, 천안의 송각준 정동주가 참석하여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네 서울 친구들을 천안역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간 대전친구들 우정에 고맙고 이 날의 일들을 소상히 엮어서 모두에게 전해주는 강태용에게 특히 감사합니다
첫댓글 무엇보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대전 서울의 회장단과 총무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논산에서 참석한 유지찬,임헌구, 홍기표, 천안의 송각준 정동주가 참석하여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네 서울 친구들을 천안역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간 대전친구들 우정에 고맙고 이 날의 일들을 소상히 엮어서 모두에게 전해주는 강태용에게 특히 감사합니다
공학도 맞어 !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기분이난다네, 그날의 행적을 자상하게 그려주었어. "오늘이 4.19 날이며 우리들은 누구인가 ? 바로 4.19 의 주역들이 아닌가" 혼돈의 그날을 되세겨 주었어. 태용이 !! 수고 많았어.
나도 참가할 예정이었는데 집안에 갑자기 불가피안 일이 생겨서 참석을 못해 아쉽구려. 강형을 만날수 있는 기회였는데...... 글을 읽는 동안 그 분위기에 젖어들어 동참한 기분을 느꼈답니다. 고맙소, 수고 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