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장 19절 – 22절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아버지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볼 때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를 옆에서 듣는 사람들에게 얻으려고 하는 평가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의를 가지고서 하나님께서 당연히 자신들에게 복을 주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세리는 남들이 볼 때나 그 자신 스스로 볼 때에도 아무런 의가 없는 자였음을 인식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세리는 자기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붙잡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죄악과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기에도 합당하지 못한 자임을 인하여 애통해 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이 세리의 기도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시온성전의 파괴를 목도하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나라나 우상들에게 도움을 바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지런히 기도했지만 자신들의 죄를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했더라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정확하게 쓸모없는 들포도와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같아서 경건의 모양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이방인들과 같았습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어서 이방인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들포도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실 수 있고 잊어 버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분노하셨을 지라도 사랑하셨고 그러므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는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때에 예레미야선지자는 낙심하기 보다 도리어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영영히 잊으시지 않으실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언제인가 다시 회복하시며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선지자는 날마다 목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을 보면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바로 되지 않습니다. 먼저는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함을 인식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길로 행하게 될 때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 집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너무나 비극적이고 아파도 지금은 하나님의 다르심의 때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이 운동이나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감에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루실 회복의 역사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럴찌라도 그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긍휼이 여기심이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시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사람들이 볼 때 철저하게 버림받은 존재처럼 보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