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12편
노지심이 언덕을 몇 개 넘어서 가 보니, 커다란 소나무 숲이 있는데 그 가운데 산길이 나 있었다. 산길을 따라서 반 리를 채 못 가서 머리를 들어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절이 보였다. 바람에 절의 풍경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문을 보니 그 위에 주홍색 현판이 걸려 있는데 ‘와관지사(瓦罐之寺)’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쓰여 있었다.
다시 4,50보를 걸어가서 돌다리를 건너가니 오래된 절이 하나 나타났는데, 큰 절이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돼서 거의 다 무너져 있었다. 노지심이 절 안으로 들어가 객방으로 가 봤더니, 대문도 없어지고 사방의 벽도 다 허물어져 있었다. 노지심은 생각했다.
“큰 절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허물어졌지?”
이번에는 방장으로 가 보았더니, 바닥에 온통 제비 똥만 가득했다.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 자물쇠에는 거미줄만 잔뜩 쳐져 있었다. 노지심은 선장으로 바닥을 치면서 소리쳤다.
“지나가던 중이데, 아무도 없소?”
한참 동안 소리쳤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주방으로 가 보니, 가마솥도 없고 부뚜막도 다 허물어져 있었다. 노지심은 보따리를 내려놓고 선장을 들고서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주방 뒤로 돌아가 보니, 조그만 방이 하나 있는데 늙은 승려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들 얼굴이 누렇게 뜨고 굶주려 야위었다. 노지심이 소리쳤다.
“어이! 중놈들아! 어째 이럴 수가 있냐? 내가 그렇게 소리쳤건만 한 번도 응답하지 않느냐!”
한 승려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소리를 낮추시오.”
“나는 지나가던 중인데, 밥이나 좀 얻어먹을까 하오. 무슨 일이 있소?”
“우리도 지금 사흘 동안 밥을 먹지 못했는데, 당신한테 줄 밥이 어디 있겠소?”
“나는 오대산에서 온 중인데, 죽이라도 한 사발 얻어먹읍시다.”
“당신은 살아 있는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온 스님이니, 우리가 밥을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절의 스님들도 모두 떠나고 양식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노승들도 지금 사흘째 굶었습니다.”
“헛소리! 이렇게 큰 절에 양식이 한 톨도 없단 말이오?”
“이곳은 작은 절이 아니기 때문에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한 떠돌이 중이 도사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 본래 있던 것들을 다 부수고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스님들도 다 내쫓았는데, 우리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들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도 못 먹고 있습니다.”
“헛소리! 그까짓 중 한 놈과 도사 한 놈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관아에 고발하지 그랬소?”
“스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관아는 여기서 아주 멉니다. 그리고 설혹 관군이 온다 하더라도 저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저들은 눈 깜짝 않고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는 놈들입니다. 지금 방장 뒤편에 기거하고 있습니다.”
“그 두 놈은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중은 최도성인데, 별명이 생철불(生鐵佛)입니다. 도사는 구소을인데 별명이 비천야차(飛天夜叉)입니다. 저들이 출가인이라고는 하지만 녹림의 도적과 다름없습니다. 출가인이라고 하는 것도 실은 신분을 감추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노지심이 노승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노지심이 선장을 쥐고 뒤편으로 돌아가 보니, 아궁이에 풀로 만든 덮개가 덮여 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노지심이 가서 덮개를 열어 보니, 좁쌀죽이 끓고 있었다. 노지심은 욕을 퍼부었다.
“이 늙은 중놈들이 도리를 모르는구먼! 사흘 동안 굶었다고 하더니 여기서 죽을 끓이고 있잖아! 출가인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거야!”
노승들은 노지심이 죽을 찾아낸 것을 알자, 소리를 지르면서 사발·밥그릇·국자·물통 등을 모두 가지고 도망쳤다. 노지심은 배가 고팠지만, 죽을 먹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궁이 옆에 부서지고 칠이 바랜 밥상이 하나 있는데, 위에는 재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노지심은 선장을 옆에 세워 놓고 아궁이 옆의 풀을 한 움큼 뜯어서 밥상 위의 재와 먼지를 닦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솥을 들어 죽을 밥상 위에 쏟아 부었다. 지켜보고 있던 노승들이 죽을 먹으려고 모두 달려들었다. 노지심이 그들을 밀쳐내자 누구는 넘어지고 누구는 달아나고 했다. 노지심이 손으로 죽을 떠서 몇 입 먹었는데, 한 노승이 말했다.
“우리는 정말 사흘 동안 먹지 못했소! 이제 겨우 좁쌀이나마 좀 생겨서 죽을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빼앗아 간단 말이오!”
노지심이 몇 입 먹다가 그 말을 듣고서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지심이 손을 씻고 선장을 들고 나가 보니, 부서진 벽 틈으로 한 도사가 보였다.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쓰고, 몸에는 베적삼을 입고, 허리에는 여러 가지 색으로 꼰 허리띠를 맸는데, 멜대를 매고 있었다. 멜대 한쪽의 대광주리에는 생선 꼬리가 삐져 나온 것이 보였고, 연잎으로 덮은 고기도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술병이 매달려 있었다.
노승들이 나와서 그를 가리키며 노지심에게 말했다.
“저 도사가 바로 비천야차 구소을입니다.”
노지심은 그 말을 듣고 선장을 들고서 뒤를 따라갔다. 도사는 노지심이 따라오는 것을 모르고 곧장 방장 뒷담을 돌아갔다. 노지심이 뒤따라가서 보니, 푸른 홰나무 아래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탁자 위에는 몇 가지 반찬 그릇과 잔 세 개, 젓가락 세 쌍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 뚱뚱한 중이 하나 앉아 있는데, 눈썹은 칠을 한 것 같고, 얼굴은 새까맸다. 몸은 고깃덩어리 같은데 가슴 아래쪽에 시커먼 배가 드러나 보였다. 옆자리에는 나이 어린 여인이 앉아 있는데, 도사는 광주리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노지심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중이 깜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사형! 이리 와서 앉으시오! 같이 한 잔 합시다!”
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말했다.
“너희 둘은 어찌하여 절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았냐?”
“사형께서는 일단 앉으셔서 소승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노지심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말해! 말하라고!”
“이 절은 본래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밭도 넓고 승려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 아래 있는 몇 명 노승들이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렸으며, 돈으로 여자들을 사기도 했습니다. 주지도 저들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저들이 주지를 무고하여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절이 이렇게 폐허가 되었습니다. 승려들은 모두 떠나 버렸고, 밭은 모두 팔아먹었습니다. 소승과 저 도사는 새로 이곳의 주지로 와서 산문을 수리하고 절을 다시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 여인은 누군데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거냐?”
“사형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낭자는 앞마을 왕유금의 딸입니다. 전에 그녀의 부친은 이 절의 시주였는데, 지금은 가산을 탕진하여 생활이 어렵습니다. 집안 식구도 없는데 남편마저 병이 나서 절에 쌀을 꾸러 왔습니다. 소승은 시주의 체면을 봐서 술을 대접하는 것이지, 별다른 뜻이 없습니다. 사형께서는 저 늙은 짐승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노지심은 그가 이처럼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말했다.
“저 늙은 중들이 나를 희롱하다니!”
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다시 주방으로 갔다. 노승들은 죽을 먹고 있다가 노지심이 분노하여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노지심이 노승들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본래 너희들이 절을 다 말아먹고는 도리어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느냐!”
노승들이 일제히 말했다.
“사형께서는 저들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지금 여인까지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형께서 계도와 선장을 가진 것을 보고, 저들은 무기가 없어서 감히 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희들의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다시 가서 저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십시오. 사형께서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있는데, 저희들은 죽도 제대로 못 먹고 있습니다. 아까 사형께서 죽을 조금 먹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네들 말이 맞소.”
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다시 방장 뒤편으로 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노지심은 크게 노하여 발로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생철불 최도성이 박도를 들고 뛰쳐나와 노지심에게 달려들었다. 노지심은 고함을 지르면서 선장을 휘둘러 최도성과 싸웠다. 둘이서 4,50합을 싸웠다. 최도성은 노지심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막는데 급급하다가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구소을은 최도성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노지심의 등 뒤에서 박도를 들고 달려와 공격했다.
노지심은 한창 싸우고 있다가 문득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으나, 고개를 돌려 볼 수가 없었다. 그때 그림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노지심은 누군가가 기습하려는 것을 알아채고, ‘받아라!’ 하며 소리를 냅다 질렀다. 최도성이 당황하여 선장을 막으면서 사정권 밖으로 물러섰다. 그 순간 노지심은 몸을 돌려 세 사람이 삼각형으로 대치하였다. 최도성과 구소을이 합세하여 10여 합을 싸웠다. 노지심은 첫째로 먹은 것이 없고, 둘째로 길을 너무 많이 걸었고, 셋째로 힘이 넘쳐나는 둘을 대적할 수가 없어서 빈틈을 보이다가 선장을 끌고 달아났다. 둘은 박도를 휘두르며 산문 밖까지 쫓아왔다. 노지심은 또 10여 합을 싸우다가 또 선장을 끌고 달아났다. 둘은 돌다리까지 따라왔다가,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다리 난간에 앉아서 쉬었다.
노지심은 멀리 달아나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고서 생각했다.
“보따리를 절에 두고 왔는데, 달아나느라 못 챙겨 왔네. 먼 길을 가야 하는데, 노자도 없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절로 돌아가자니, 저 두 놈을 대적하기가 어렵네. 헛되이 목숨을 잃을 수는 없잖아?”
할 수 없이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몇 리를 가다 보니, 앞에 큰 숲이 나타났는데 모두 적송(赤松)이었다. 노지심은 숲을 보며 말했다.
“대단한 숲이로군!”
숲을 보고 있는데, 나무 사이에서 그림자 하나가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침을 퉤 뱉고는 사라졌다. 노지심은 생각했다.
“길을 가로막고 강도짓을 하려는 놈이로군. 이곳에서 노략질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중이라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침을 뱉고 사라진 것이렸다. 저놈이 오늘 재수가 없어서 임자를 만났다! 나도 영 기분이 좋지 않은 판이었는데, 잘 걸렸다. 저놈의 옷을 벗겨다가 술이나 사 먹어야겠다.”
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송림 안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야! 숲속의 좆같은 놈아! 얼른 나와라!”
숲 안에 있던 사내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데, 저놈이 도리어 나를 도발하는구나!”
사내는 박도를 들고 숲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민대가리야! 넌 오늘 죽었다! 내가 너를 찾은 것이 아니다.”
노지심이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려주마!”
선장을 휘두르며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가 박도를 휘두르며 싸우려고 나오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중 목소리가 친숙한데?”
그리고는 사내가 말했다.
“어이! 목소리가 친숙한데, 누구냐?”
“한 3백 합 정도 싸우고 나서 이름을 말해 주마.”
사나이는 크게 노하여 박도를 휘두르며 선장을 맞이하였다. 두 사람은 십여 합을 싸웠다. 사내는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한 중이구나!”
또 4,5합을 싸우다가, 사내가 소리쳤다.
“잠깐 멈추시오! 할 말이 있소,”
두 사람 모두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자, 사나이가 물었다.
“정말로 이름이 뭐요? 목소리가 대단히 친숙하오.”
노지심이 이름을 말하자, 사내는 박도를 내던지고 절을 하였다.
“사진을 모르시겠습니까?”
노지심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사대랑이었군!”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숲으로 들어가 좌정하였다. 노지심이 물었다.
“사대랑! 위주에서 작별한 후 어디서 어떻게 지냈소?”
사진이 대답하였다.
“그날 주점에서 형님과 헤어진 후에, 다음 날 형님께서 백정 정가를 때려죽였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도망쳤습니다. 포졸들이 사진이 형님과 함께 김노인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우도 위주를 떠나 왕진 사부님을 찾아 연안부로 갔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을 찾지 못하고 북경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동안 지내다가 노자도 다 떨어지고 해서 이곳에서 노자나 챙기려고 했는데, 뜻밖에 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무슨 까닭으로 스님이 되셨습니까?”
노지심이 지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얘기하자, 사진이 말했다.
“형님이 배가 고프시다니, 여기 고기와 떡이 좀 있습니다.”
노지심이 음식을 먹는 동안, 사진이 말했다.
“형님께서 보따리를 절에 두고 오셨다니, 저랑 같이 찾으러 가십시다. 만약 그놈들이 돌려주지 않으려 하면, 해치워 버리면 되지요.”
노지심이 말했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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