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야 나 좀 붙잡아줘
(김영랑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의 화답시 )
인묵 김형식
오매, 바람나겄네
풍각쟁이 바람잡이 개울물 건너 장터로 몰려가아
오빠는 두근두근 건너다보며
오매, 바람나겄네
선머슴아 삼삼오오 쥐불 들고 산야로 내 달리어 싱숭생수웅
오빠야 나 좀 붙잡아줘
오매, 바람나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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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겄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겄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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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겄네’ - 가을을 느끼는 감회를 이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단풍 들었네’가 아니라 ‘단풍 들겠다’이다. 김영랑의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를 읽으면 마치 가을을 맞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연정의 감정이 물씬 풍겨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장독대에 감잎이 날아오르자 ‘누이’가 깜짝 놀랐다가 ‘골 붉은’ 감잎인 것을 알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다. ‘어머나 깜짝이야. 단풍이 들겠네’ 하고. 그런데 골 깊은 감잎이라…… 여기서 ‘골’은 ‘물체에 얕게 팬 줄이나 금’을 말한다. 감잎에 팬 줄이 깊단다. 이런 언어구사를 보면 역시 김영랑이다.
누이의 삶은 살림살이로 점철되어 있는 모양이다. 당대 처자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는가. 벌써 추석이 내일모레다. 게다가 바람도 잦아진다. 그러니 살림살이를 하는 처자는 걱정이다. 살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자 - 그런 누이의 마음을 읽고는 시 속 화자는 누이에게 ‘나를 보아라’고 하고는 같은 말을 외친다. ‘오매, 단풍 들겄네’라고.
시의 구조가 아주 단순하다. 1 연에서 감잎을 보고 놀라는 ‘누이’의 마음과 모습을 그린 후 2연에서 ‘누이’의 그런 모습을 보는 화자인 ‘나’의 마음을 그려놓았다. 누이의 마음이 단풍 드는 것은 ‘감잎’ 때문이고 화자의 마음이 단풍드는 것은 누이 때문이다. 독자는 감잎에서 누이로 다시 화자에게로 연결되는 아주 멋드러진 감정의 전이(轉移)를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 속 ‘누이’를 많은 사람들은 ‘동복(同腹) 누이’로 읽는다. 표준어를 기준으로 누이를 해석한 결과이다. 그러나 ‘오매, 단풍 들겄네’에서 보듯이 시 속 화자는 호남 방언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누이’ 역시 호남 지방의 일상적인 호칭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누이’는 누나나 여동생이 아니라 ‘동네 처녀’이다. 감잎을 보고 놀라는 동네 처녀가 제시되고, 그 처녀를 보고 마음에 단풍이 드는 화자는 동네 총각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누이야 나를 보아라’가 아니라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하지 않았겠는가. 추석 쇨 걱정, 바람이 잦아지며 날씨가 추울 것을 걱정하는 동네 처녀가 감잎을 보고 단풍 들겠다고 하니 그 말을 받아 내 마음도 단풍이 들었는데 왜 모르냐고 하소연하는 것으로 읽힌다.
감잎에 놀라 붉어진 처녀의 얼굴, 그 처녀를 사랑에 빠져 마음이 온통 붉게 물든 동네 총각. 그래서 겉으로는 가을에 느끼는 감회일지 몰라도 그 이면에는 연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 김영랑은 동네 처녀 누구로부터 마음에 단풍이 들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김영랑 시인의 약력>
김영랑 (1903~ 1950)
전남강진 출생
박용철이 발행한 <시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
<문예월간>, <문학>, <시원> 등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아름다운 시를 발표했음.
<영랑시집> <영랑시선> 등의 시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