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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1-9)
며칠 전에 우리 처제 전도사님 부부가 우리집에 왔다가 갔습니다. 한 열두시에 도착한다는 사람들이 오후 세시 반이 되어서야 왔습니다. 삼일절 공휴일로 3일 연휴라 동해안으로 가는차가 많아 차가 많이 막혔던 것입니다. 한시간 30분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려 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그동안 목회하시느라 고생하셨다면서 봉투를 하나 준비하여 제게 내밀었습니다.... 뭘 이런걸 다...하면서 받았습니다. 참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은혜받는 비밀입니다.
처제 전도사님은 이 근래 머리가 너무 아프고 무겁고 일어서다가 핑 돌고 어지럽고..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고...이거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나? 돈이 많이 들텐데..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자면서 밤에 잠도 설쳤는데 언니 사모님이 새벽기도 가는 소리를 듣고 나왔습니다.
나도 새벽 기도 갈래 하면서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처제 전도사님 생각에 내가 새벽기도에 참석하여 형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왔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그렇게 머리가 무겁고 아프던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이 3월 2일 토요일입니다. 그 새벽에 하나님이 노전도사님을 터치해 주셨습니다. 내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내 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그를 고쳤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오늘 성경의 엘리야, 그는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하늘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 믿음의 사람 엘리야가 지금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든 현실이 절망스러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야는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고 내가 할 일도 다 끝난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제 족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성령의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호렙산으로 가자,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일찍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호렙산으로 가자.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40주 40야를 달려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습니다.
첫째, 엘리야는 왜 호렙산으로 갔을까요? (19:8)
호렙산은 먼곳입니다. 멀고 먼 길입니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호렙산 까지, 그는 먼 길을 갔습니다. 하루가 아닙니다. 이틀이 아닙니다. 일주일이 아닙니다. 밤낮 40일을 걸어갔습니다. 밤에도 걷고 낮에도 걸어갔습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 간 까닭은? 무엇입니까? 오래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당나라의 선승인 조주 선사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뜰 앞의 잣나무를 보라)’ 고 했습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그 먼 길을 온 것이 무슨 목적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호렙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냥 갔습니까? 아무 뜻 없이 갔습니까?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설교하는 요한에게 갔습니다. 그들은 왜 요한에게 갔습니까?
그들은 왜 광야에 나갔습니까? 너희가 광야에 왜 나갔느냐? 이것은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물었던 말입니다. 너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느냐? 아니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러 갔느가? (마태11:7-8)
요한이 전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왔습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광야에 나갔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왜 호렙산에 갔습니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물었던 말씀입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여기,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광야에 요한에게 갔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갔습니다. 호렙산에 간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 말씀을 들으려고 갔습니다. 오늘 교회에 온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나님 앞에 서라 하셨습니다.(19:11)
하나님은 먼저 엘리야에게 ‘엘리야, 굴에서 나오라, 하나님 앞에, 산에 서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호렙산의 동굴 속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엘리야야 동굴 밖으로 나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오셔서 ‘아담아’ 하고 부르시던 하나님입니다. ‘가인아’ 하고 부르시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아’ 부르시던 하나님입니다. ‘모세야’ 하고 부르시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내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내 모든 사정도 알고 계십니다. 내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동굴 밖으로 나오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동굴이 있습니다. 혼자 그곳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렵고 힘들 때에는 자기만의 동굴에 피하려고 합니다.
아무도 만나기 싫어합니다. 세상만사가 싫어지고 귀찮아 질 때가 있습니다. 증세가 좀 심해지면 우울증이 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이 가진 잘못된 생각을 네가지 우상으로 설명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이 중 동굴의 우상이라는 것은 평생 동굴에 살던 사람이 가지는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을 말합니다. 우리 속담에서 우물안 개구리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사람은 보통 내가 가진 지식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착각합니다. 자기 생각을 절대화하고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는 것을 동굴의 우상이라 한다. 베이컨은 그래서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굴은 나만의 주관적이 세계, 착각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그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라.. 나의 착각에서 빠져 나오라.. 나의 잘못된 생각에서 빠져 나오라.. 엘리야의 생각은 모든 사람이 주를 배신하고 떠났다... 나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아집의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편견의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외로운 동굴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동굴에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서라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정직한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진실한 모습으로 서야합니다. 서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납니까? 엘리야의 눈앞에서 갑자기 토네이도같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사방의 돌들과 바위들과 모래가 바람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강한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산을 가르고 돌을 쪼갰습니다. 온 세상을 쓸어갈 것 같은 바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이런 바람을 경험합니다. 이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날려 버립니다.
재산을 날립니다. 건강도 날라갑니다. 남편도 날라가고 아내도 날라갑니다. 자식도 날라갑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아끼던 물질도 날라갑니다. 아끼던 것도 날라갑니다. 그때 우리는 절망스럽습니다.
언젠가 감리교 본부에 갔습니다. 목사님 한분이 몽골 선교사들을 상대로 집회를 했다고 합니다. 집회 후에 어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교사는 옛날 삼풍백화점 사장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잘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집에 살았습니다. 고급승용차를 탔습니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저녁 이 사고로 500여명이 죽고 9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로 삼풍백화점의 사장은 그의 모든 것이 날라 갔습니다. 토네이도 같은 폭풍이 그를 공중으로 날리다가 내동댕이쳤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감옥이었습니다.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동굴과 같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갔습니다.
그는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하나님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집사였습니다. 돈도 많고 백화점 사장이고 건강하고 예쁜 아내도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필요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름뿐인 신자였습니다. 그는 예배를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건성으로 드렸습니다. 그는 기도를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기도를 하는 척 했습니다. 그는 봉사를 제대로 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구제를 제대로 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집사지만 전도를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를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자신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엘리야처럼 폭풍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나운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 버렸지만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폭풍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흔들렸습니다. 서 있던 엘리야가 넘어졌습니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나며 땅이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땅 사이로 시뻘건 불이 이글거렸습니다. 땅이 진동하고 흔들립니다.
지진은 우리 삶의 터전을 무너뜨립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무너뜨립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일본의 쓰나미, 2012년 동 일본의 쓰나미는 바다 밑에서 일어난 지진이 그 원인입니다.
쓰나미는 모든 것을 쓸어갔습니다. 배도 쓸어갔습니다. 차도 쓸어갔습니다. 집도 쓸어갔습니다. 사람도 쓸어갔습니다. 농토도 쓸어갔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도 쓸어갔습니다.
엘리야는 지진과 시뻘건 불을 보았습니다. 엘리야 앞에 지진이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지진과 같이 내 인생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마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것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두려운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엘리야는 그곳에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눈길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셋째,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9:12)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렸고 자신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배교하지 않은 7천의 사람이 남아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 너만 남은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마음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의 그 사장 이한상 집사님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에서 7년을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때 손에 잡히는 게 있었습니다. 성경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성경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에 걸친 예수의 물음은 심장을 때렸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던 모든 것, 돈이나 직장, 친구와 가족, 그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이한상 집사에게
'한상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한상 집사가 눈물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왜 나를 죽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죄인이면 저만 죽이시지 왜 그 많은 사람까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음에 주신 단어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조건, 무작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사업 경력이 아깝다며 작은 회사를 맡기려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 것을 다시 좇지 않겠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나서겠다.’ 고 결심했습니다.
2002년 7월 출소한 뒤 하나님 뜻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아는 선교사를 만나러 몽골에 갔습니다. 기도 중에 '이곳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몽골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갑자기 폭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만나러 가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처럼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동굴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할 사명을 깨닫고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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