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4장 7-9절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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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성자로 알려진 ‘성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겸손은 하늘에 오르는 첫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하나님은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시고, 사탄은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온다고도 했습니다. 겸손과 교만에 대한 네 가지 자기 평가서가 있습니다.
1. 참 겸손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2. 대단한 겸손은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3. 반면에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4.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중 하나에 속합니다. 삼손도 그렇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습니다.” 삼손이 먹은 이 꿀의 출처는 8절에서 말하길, 얼마 전에 삼손이 찢어 죽인 사자의 몸에 벌이 집을 짓고 꿀을 만든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인 입니다. 죽은 시체는 짐승 뿐 아니라 자기 부모라 할지라도 만질 수 없는 몸인데, 삼손은 죽은 사자의 몸에 있는 벌집에서 꿀을 떠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일은 성령이 충만하여 사자를 죽인지 얼마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신앙생활의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죄짓기가 쉽습니다. 유혹은 혼자 있을 때 더 강하게 찾아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부적절하게 만났을 때 혼자였습니다. 요셉을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과 단 둘이 있을 때 유혹했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한 결 같이 말씀하십니다. “심방은 항상 사모와 함께 다녀라.” 이유를 아실 겁니다. 아무리 내가 바르게 있어도 혼자 심방가면 위험하기도 하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한 이유는 바로 혼자서 꿀을 만났을 때 입니다. 믿음은 혼자 있을 때 증명됨을 잊지 마십시오.
두 번째 교훈은, 잘나갈 때 겸손해야 합니다. 삼손이 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이유는 그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립니다. 삼손의 부모님도 이제 결혼을 허락해서 같이 블레셋에 내려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포도원에서 사자를 죽이는 체험까지 했습니다. 이때 삼손은 “성령 충만한 내가 꿀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입니다. 비극은 겸손을 잃을 때 시작됩니다. 아주 작은 죄를 하찮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지방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합니다. 이력서를 쓴 것만 해도 수십 통입니다. 어렵게 면접까지 보아도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면접에서 줄곧 탈락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렵게 면접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 보라는 면접관의 말에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잇따른 질문마다 어려운 것 뿐이었습니다. 면접관이 말합니다.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이번에도 틀렸다 생각하고 의자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작은 핀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그것을 주어서 자신의 옷에 닦은 다음에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왔습니다.
그때 이것을 다 지켜보고 있던 그 회사의 사장님이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주어서 책상에 올린 것이 무엇입니까?’ ‘네, 핀입니다’. ‘왜 그걸 주워서 옷으로 닦은 다음 책상에 올려두었죠?’ ‘네, 다음에 누군가가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사장이 말합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우리 회사는 당신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 회사는 작은 핀 하나도 자신의 물건처럼 아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삼손이 힘이 없어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자세가 나빠서 무너졌습니다. 이후에도 삼손은 실력보다 자세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처음 삼손은 나귀 턱뼈로 수 천명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사자를 찢어죽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삼손이 어느 날 머리가 잘리고 두 눈이 뽑혀서 당나귀가 돌리는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됩니다. 처음부터 실패한 게 아닙니다. 삼손의 실패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실인으로서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죽은 사자에게서 꿀을 따먹은 것부터, 다음엔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되는 나실인이 술을 즐겼습니다. 처음엔 꿀, 다음엔 술, 다음엔 여자에 빠집니다. 삼손이 넘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만이었습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함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신학교 때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당시 순진한 신학생으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신학생이 있었답니다. 이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기로 유명했답니다. 저녁마다 신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항상 목소리가 쉬어 있을 정도였는데요. 이 신학생이 그러더랍니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사창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 친구들과 교수님까지 말렸답니다. 그 마음은 좋으나 자네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다네, 좀 더 준비하게. 그때 신학생이 말합니다. 저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십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사창가로 갔답니다. 그 후로 학교에서 그 신학생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 많이 하는 신학생이 왜 넘어졌을까요?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삼손처럼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약한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강한척 하는 게 부끄러운 겁니다. 고린도전서 1장 28-29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부족한 것, 미련한 것, 약한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더 강해도 좋고, 담대해도 좋고, 건강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고 교만한 것보다 약해서 겸손함을 원하신답니다.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몽당연필이다.’ 언젠가 테레사 수녀를 직접 보고 인도 켈커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루는 봉사활동 중 쉬는 시간에 테레사 수녀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요.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더랍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더래요.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저렇게 작고 약한 사람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세상 그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해 내는구나.’ 하나님과 함께함이 강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