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눈이 내렸었다 금정역에는 (수필)
창조문학 연간지 원고 * 2014년 1월 발행
이희문
그날 눈이 내렸었다,
다 저녁 우당문학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깨와 모자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사당역주변 라운지가 좋은 건물 아니면 선바위 기슭 고즈넉한 레스토랑에서 우당문학회는 정기회의를 마직 막 달에는 치른다,
겨우내 내린 눈이 얼음으로 뒤바뀐 길바닥을 오리처럼 걸으며 마지막 치르는 우당문학회 불빛 속에 얼굴을 디밀으려 오리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길바닥이 짓궂거나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은 것은 불참하고 싶어도 핑계거리가 안 된다
관악산 남태령 비탈길에서 살짝 벗어난 기슭에 르네상스식 레스토랑이 있다 세븐데이
운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우당문학 문인들처럼 삶의 저편을 그리워하며 孵化하려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구라파의 푹 썩은 전설 같은 고풍스러움을 실감나게 설치해 놓고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작이나 백작으로 변해서 위풍스러워 지게 된다,
그 바람에 분위기 좋아진 공작이나 백작들이 귀족의 휴식을 만끽하게 된다,
남달리 추억을 붙들고 있었던 비밀스러운 詩章을풀어놓고 뒤바뀐 분위기 속에서 웃고 있다
친정엄마라는 詩를 한복 자락에서 고른 여류시인의 낭독은 그렇지 않지만
백작과 공작들은 구라파식 포도주에 잘 익은 세월을 칼질한다,
갈기갈기 칼질이 끝나면 불거져 나오고 마는 이야기들이 있다 각자 그 때 그 이야기들
애낳는 이야기 빼고 이야기들이 다 풀어져 나오고 나면 땅거미 짙은 시야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옷자락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쯤에서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내리는 눈 속에서 선바위역을 향해 오리걸음을 시작한다,
그리고 들어서게 된 지하철,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구겨진 자루 같은 노인들 틈새에 끼어 앉는다,
경마역 대공원역 지나 과천역에서 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부인이 탔다
그러자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아기를 품은 부인에게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가 귀족처럼 정중하게 말하고 있다
“앉으세요,”
아기를 품에 안은 부인은 발그스름하게 웃으면서 앉았다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빠르게 지나고 있는 금속의 소리에서 환승의 음악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승 소리 속에 섞여 있는 “서울 천안 방면으로 가시는 손님은 금정역에서 환승하시기 바랍니다,”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갈 곳이 화성고을이니 수원 방향으로 갈아타야 한다,
땅속에서 솟고 있는 지하철 유리창 밖을 보며 주섬거리고 있을 때
“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를 부축하고 서있는 아가씨가 백작이 되었던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친절했는지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그만 그 자리에 앉고 만다,
백작이 되었던 사람은 수원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하는데 할머니를 부축하고 서서 극구 권하는 아가씨의 성의를 외면할 수 없어서 아기를 품은 부인 옆에 앉아서 안산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는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면서
밤빛이 짙은 속에서 내리고 있는 금정역의 눈발을 보면서
첫댓글 잘 쓰셨습니다.백작,공작....ㅎㅎ 근데...
아가씨가 백작님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했다면~~더 좋았을텐데^^..그만 꿈을 깨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