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30장 1 - 9절
1 야게의 아들, 아굴의 교훈입니다.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 가르침을 선포하였습니다.
2 나는 정말 짐승같이 무지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총명을 갖지 못했다.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했고, 거룩하신 분을 아는 지식도 갖지 못했다.
4 누가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왔던가? 누가 자기 손바닥에 바람을 모았던가? 누가 자기 옷에 물을 댔던가? 누가 땅 끝을 만들었던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네가 알면 말해 다오.
5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하다. 그분은 자기를 피난처로 삼는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지 마라. 그분이 너를 책망하고 거짓말쟁이로 생각하실까 두렵다.
7 내가 두 가지를 여호와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이루어 주소서.
8 곧 허황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가난도 부함도 허락하지 마시고,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9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배불러서 '여호와께서 누구인가?'하고 당신을 부인할까 두렵습니다. 아니면 내가 가난하여져서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까 두렵습니다.
<묵 상>
잠언에는 솔로몬의 잠언 이외에도 다른 지혜자의 격언이 담겨있습니다. 30장과 31장에는 각각 아굴과 르무엘 왕의 잠언이 실려있습니다.
1. 지혜자의 고백 (1-9절)
"야게의 아들, 아굴의 교훈입니다.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 가르침을 선포하였습니다."(1절) 1절은 30장의 표제로서 지혜자의 이름과 출신, 그리고 잠언의 대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들 아굴, 그의 아버지 야게는 이스라엘 이름이 아닙니다. 아굴은 이방인으로 다른 번역에 의하면 맛사 출신의 지혜자입니다. 성경에 이방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곳곳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를 도운 라합이나, 예수의 족보에도 등장하는 룻 같이 말입니다. 잠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는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의 백성을 가르치십니다. 아굴은 이방인이면서 그의 지혜가 잠언에 담길 만큼의 지혜자이지만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합니다.
"나는 정말 짐승같이 무지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총명을 갖지 못했다."(2절) 자신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짐승 같다고 말합니다. 그가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지식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한 생각과 경험의 한계에 갇혀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시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땅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고백입니다. 시편과 잠언 곳곳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고백합니다. 아굴의 겸손과 지혜는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경외함에 의한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하다. 그분은 자기를 피난처로 삼는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5절) 겸손한 지혜자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나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더할 필요도, 뺄 필요도 없이 순전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삶, 즉 구원받은 자의 삶을 뜻합니다. 이 명예로운 선택의 삶을 인생의 여정 속에 놓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자는 그분께서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지혜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곧 허황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가난도 부함도 허락하지 마시고,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배불러서 '여호와께서 누구인가?'하고 당신을 부인할까 두렵습니다. 아니면 내가 가난하여져서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까 두렵습니다."(8-9절)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그럼에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삶을 바라는 것은 혹 나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함에 있습니다. 본성의 욕구대로 사는 삶은 헛된 것을 구하게 하며 이를 위한 거짓말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구원하신 이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달라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십니다. 마음은 어디론가 향하게 되는 만큼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달라고 하시면 드리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돈에, 성공과 출세, 자녀에게 마음을 준 것처럼 하나님께도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그 의지는 아무에게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욕구, 다른 것을 취하겠다는 마음은 강한데, 하나님께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얻기 위하여 간절히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님 자체를 그리워하며 마음에 채우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욕보이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지혜로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마음과 말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율법을 쫓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쫓아 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겸손히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쫓아 살게 하옵소서.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내 안에 선하지 못한 다양한 죄의 모습들을 바라볼 때에도, 이 땅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본성대로 살아가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나의 삶을 주님께만 의탁하게 하옵소서. 내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옵소서. 허탄한 거짓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사건과 상황과 물질과 들려오는 말에 먼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그 일을 통하여 나를 부르시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감정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