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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오진숙을 쳐다보느라 갯바위로 솟아오르는 초들물 파도를 보지 못해 바다에 빠질 뻔한 이감독이 간신히 솟아오른 파도 속에서 자세를 잡고 오진숙의 앞으로 펄쩍 뛰어 올라왔다.
오진숙은 이감독의 그 모습이 고소해서 웃었다. 웃으며 빈정댔다.
“발정 난 고양이 같네요.”
“뭐야? 하마터면 물에 들어갈 뻔했는데 그게 할 말이냐?”
오진숙이 당돌하게 말했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한마디 딸리지 않는 오진숙의 말에 이감독의 심장이 뒤집어졌다.
“왜 고양이 같냐면요.”
“그래 뭐야? 아낌없이 조잘대봐!”
뒤집어 쓴 파도의 물방울을 털어내는 이감독을 거들어줄 생각은 처음부터 없는 듯, 오진숙은 자신의 느낌을 이감독의 주문대로 지껄였다. 야한 농으로 자신을 무안하게 한 이감독에 대한 보복차원이었다.
“감독님은 동치미 먹어봤어요?”
“야! 미스오. 자네 눈엔 내가 유럽 사람처럼 보이냐?”
“호호호. 유럽 사람들 웃다 뒈지겠어요. 먹었으면 잘 아시겠네요. 사람이 말이에요. 동치미 먹을 때 말이에요. 두 가지 부류가 있거든요. 한가지는요. 동치미 무우부터 먼저 베어 먹고 국물 마시는 사람 있고요. 국물부터 먼저 마시는 사람이 있걸랑요.”
“난 어떤 사람 같냐?”
오진숙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마치 시험문제지에 아는 문제가 나온 그런 표정이었다.
“그야뻔하죠.”
“뭐가 뻔해?”
“감독님은요. 국물스타일이에요. 국물스타일이라도요, 국물부터 마시다 사래든 사람 있죠? 그런 스타일요.”
“뭐야?”
“왜요? 제 말이 틀렸어요?”
이감독은 털어내던 물방울을 내 팽개치고 오진숙을 쏘아봤다.
“미스 오! 자네 말이 좀 심하다?”
“감독님은요?”
“내가 어쨌는데?”
“전 어쨌는데요?”
“너 방금 날 발정 난 고양이니 동치미사래니 지능적으로 놀리고 있잖아?”
오진숙이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감독님. 되로 주면 말로 받는 거에요.”
“그럼 내가 되냐? 미스오, 넌 말이고?”
“그럴 수도 있죠. 공연히 국물부터 마시다 혼나지 마시고 앞으로는 신중하세요.”
이감독이 헤벌레 입을 벌렸다. 도저히 말로는 오진숙을 당할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감독이 신경질적으로 앞이마를 북북 긁으며 말했다.
“미스오! 너도 착각하지마라! 난 아무 거나 안 먹는다. 준다고 무조건 먹는 도치 같은 줄 아냐? 아무리 착각은 프리free라지만.”
오진숙이 발끈했다.
“도치형부가 어때서요? 도치형부 입이 감독님처럼 그렇게 헤픈 줄 아세요? 도치형부는요, 감독님매너하고 차원이 달라요.”
“야! 이제 보니 미스오, 너 도치 좋아하나보네?”
“좋아 할 수도 있죠. 허지만요. 착각 제발 좀 내려놓으세요. 전요. 죠지쟈키리스영화배우 같은 배우가 프러포즈해도 눈썹한번 안 떨어요. 그리고요. 아영이하고 성공할 때까진 연애 안한다고 맹세했걸랑요.”
“사랑이 무슨 맹세가지고 되는 줄 아는데, 사랑은 그런 맹세 같은 걸로 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야. 사랑이란 말이다. 미스 오 너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리 밀어내도 한번 달라붙으면 죽어도 안 떨어지는 고약한 놈도 있단다. 흐흐흐.”
오진숙이 눈썹을 치켜떴다. 분명히 약이 오를 때 하는 오진숙의 버릇인줄 이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오진숙의 염장을 푹 질러버렸다.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아니?”
“뭔데요?”
이감독이 세상에서 제일 능글맞은 표정으로 거침없이 말했다.
“미스 오, 너 같은 스타일이야!”
때마침 갯바위에 부딪친 파도소리도 컸지만 오진숙의 목소리가 더 크고 날카롭게 찢어졌다.
“뭐라구요?”
오진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지만 이감독의 두 손이 더 빨랐다. 그리고 일어서는 오진숙의 머리를 찍어 누르며 말했다.
“참아라. 성질은 인간성 망친다. 그래도 미스오 앞엔 내가 있잖니?”
오진숙이 이감독의 손바닥에 눌린 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감독은 오진숙에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했다.
“미스오야. 내가 얼마나 미스오를 위해 노력하고 있니? 곧 프로엔터테인먼트영화제작사에서 미스오를 피캅pickup할거다. 그러니까 성질 좀 죽여라. 큰물에 큰 고기 노는 법이다. 피캅만 되면 미스오는 크게 될 스타야. 미래의 스타가 성깔 때문에 인생 조져서 되겄냐?”
이감독의 말에 오진숙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네에? 정말이세요?”
이감독이 오진숙의 내리눌렀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떼며 말했다.
“이 물계통에서 나만큼 진솔한 사람 있더냐?”
“허긴요!”
오진숙은 이감독의 손바닥이 치워지자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나며 이감독을 끌어안으며 팔팔 튀었다.
“감독님! 고마워요. 전 그런 줄도 몰랐잖아요.”
“미스우하고 항상 붙어 있으니 말할 기회가 없었잖아?”
“어머머. 이제부터 아영이하고 따로 놀께요.”
이감독이 오진숙을 향해 눈을 까뒤집으며 물었다.
“근데. 너 벌써 미스우하고 말 터냐? 스타가 되려면 이직 갈 길이 먼데?”
오진숙이 입술을 삐딱하게 씰룩이며 대답했다.
“감독님이 그랬잖아요. 대통령도 없는 자리에서는 이놈 저놈 한다고요.”
“내가?”
“네에. 전 감독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감독님이 하면 하는 대로 다 따라하잖아요.”
“으흐흐흐. 오호호호.”
눈을 마주친 오진숙과 이감독의 웃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뒤섞였다. 그 웃음소리에 질린 마지막 노을이 섬 그늘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첫댓글 오진숙과 이감독은 금방이라도 화산처럼 폭발할려든순간
잘해주겠다는 말 한마디가 급선회하게 만들었군요,
이감독의 위치가 대단한 사람인가 봅니다.
여자들 마음은 다 그런거죠.
미워도 금세 풀어지는 건 모성애 때문이라지요?
고운밤되세요
오진숙과 이감독의 사랑 이야기
낚시하면서 늦추웟다 당겼다 하는 사랑 이야기
제미있게 봤슴니다.
남자의 말한마디에 여자는 죽고 사는건가~ㅎㅎㅎ
ㅎ
남자도 마찬가지죠.
여자의 한마디가 인생의 바탕을 바꾸기도하죠.
멋진밤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