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아바타, 장수만 청장의 낙마]
함바집 수뢰 의혹에 발목 잡혀
- '7·4·7' MB노믹스 등 大選 밑그림 그린 공신
- '장관 위의 차관' 신화도
- 불같은 추진력·뚝심으로 각종 개혁 선봉에 섰지만, '함바집' 결국 못 빠져나와
16일 물러난 장수만 방위사업청장(61)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바타요, 이명박 정부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영남(부산)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했고 이 대통령이 다니는 소망교회 신자다. 이른바 '고·소·영' 3박자를 모두 갖췄다.
MB 정권의 공신이기도 하다. 대선 때 일류국가비전위 정책조정실 부실장으로 7(7% 경제성장)·4(1인당 소득 4만달러)·7(7대 강국) 공약으로 대표되는 'MB노믹스'의 얼개를 그렸고, 인수위에서는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를 MB 곁으로 이끌어 챙겨준 사람이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다. 그는 강 위원장의 경남고 후배이자 재정경제원 후배다.
▲ 작년 8월 방위산업 개혁을 내걸고 취임했던 장수만 방위사업
청장이 16일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의를
표명했다. 작년 한 회의장에 들어서는 장 청장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2008년 초 조달청장에 임명된 뒤 2009년 1월 국방차관으로 옮긴 그가 이 정권의 실세(實勢)라는 사실은 그해 8월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은 자신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청와대에 국방예산 감축안을 올린 그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 장관은 대통령실장 등에게 보낸 서한에서 "차관의 행동이 자칫 일부 군인들에게는 하극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썼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개각에서 이 장관이 교체됐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일부에서도 "장관도 잘못했지만 차관도 잘못했다. 차관도 바꿔야 장관의 영(令)이 선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임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장 청장이 이번 정권에서 장관 자리에 한 번은 오를 것"이라는 말들을 해왔다.
장 청장의 몰락이 MB 정부에 뼈아픈 것은 이런 그의 정치적 위상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MB식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했고, 이 대통령은 추진력과 뚝심이 남다른 그를 조달청, 국방부, 방사청 개혁을 위해 잇따라 특파(特派)했다. 그는 인수위 시절엔 "당선자가 한번 시작한 일은 확실히 실천하고 끝을 본다. 눈치나 살피며 '복지부동(伏地不動)'하는 공무원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국방차관 시절엔 예산편성, 연구개발, 수출정책 등 방사청의 핵심기능을 국방부로 옮기는 작업을 추진했고 방사청 폐지 의견까지 낸 적도 했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업무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몇몇 군인들에게 반말을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 8월 방사청장으로 옮긴 뒤에는 무기획득 시스템을 바꾸고 방산(防産)수출을 늘리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작년 방산 수출액은 역대 최고인 11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작년 말엔 과장급 134개 자리 중 51%인 69개를 바꾸는 방사청 개청(2006년) 이래 최대규모 인사를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방위사업청에 대한) 부정과 비리의 이미지도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본인이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물러나게 됐다. 'MB 국방개혁'의 기수가 낙마한 셈이다.
* 참조 : 조선일보 주용중 기자님(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