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하늘나라 바라기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루카 4,40).”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모두가 온전해졌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 안에서는 모두가 온전하다. 그 나라가 땅으로 내려오고, 그분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로 들어오셨다. 그러니 그분을 만나 청한 이는 모두 당연히 회복되고, 마귀는 쫓겨나고 온전해졌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그대로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2).” 구세주가 오셨으니 예언한 대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 거다.
장애인 올림픽이 한창이다. 그중에서 메달을 딴 선수도 그렇지만 참가와 완주 그 자체로 감격이고 감동을 주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경기 승리가 아니라 인간 승리다. 그 선수들은 다른 장애우들에게 말한다, 밖으로 나오라고. 자신도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 스포츠의 도움으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메달을 딴 기쁨이 아니라 장애를 극복한 감동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더 많은 시설이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적은 숫자이지만 그들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회 또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도와 시설보다 더 중요한 건 비장애인이 사고방식을 바꾸는 거다. 시각장애인이 커다란 안내견과 함께 식당에 들어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먼 거 같다.
우스개로 하늘나라 시민은 모두 장애인이다. 손과 발이 죄를 짓게 하니 그중 하나씩 잘라 버리고, 눈이 죄를 지으니 그중 하나를 빼버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마태 18,8-9). 신체는 장애를 가졌어도 영혼은 온전하고 완전해진 이들이 있는 곳이 하늘나라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는데 아내가 도와줘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고, 그 등수는 10위였지만 마치 1등 한 거처럼 기뻐하고 거기 관객들 모두 환호했다. 깊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없는 팔로 포옹하는 장면에 눈물이 났다. 아주 잠시지만 하늘나라를 살짝 들여다보고 거기 사는 기쁨, 하늘나라 시민이 된 기쁨을 미리 맛보여줬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진짜 신원을 알아봤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하셨다(루카 4,41). 사람들이 당신을 해결사로, 요술쟁이로, 로마군을 몰아내고 불의한 관리들을 처벌 해줄 위대한 임금과 전사로 여길까 봐 우려해서 그러셨다고 한다. 옛날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도 신앙으로 그것들과 비슷한 것을 얻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속내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하늘나라와 하느님과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면 다른 무엇에서 여기서 수고하고 고생하는 의미와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비록 서툴고 자꾸 실수하고 번번이 실패해도 내 영혼은 하늘나라와 하느님을 목말라한다. 이 세상에서 자라나고 있는 그 나라를 찾고, 거기 사는 맛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 주님이 곧 하늘나라입니다. 죄 안 짓기를 바라고 지옥 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주님과 맺은 우정을 깰 수 없어서 주님 말씀에 충실합니다. 죄인이 무슨 수로 하늘나라 시민이 되겠습니까?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밖에서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쉬고, 안에서는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