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안주만 먹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애주가 입장에서는 얄미운 행동이다. 사진은 1920년대 발행된 대중 종합잡지 ‘별건곤’의 주국헌법. 주국헌법은 좋은 주도와 나쁜 주도를 설명한 글이다.
한국의 술 문화를 연구하며 개인적으로 술의 역사에서 가장 궁금한 시기는 100년 전쯤의 일제강점기다. 한국의 술 문화와 제도가 일제에 의해 요동을 치고, 새로운 술들이 마구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시 막걸리만 마셨을 것 같지만 의외로 다양한 술이 유통됐다.
1930년대 초에는 일본 기린 맥주와 삿포로 맥주가 서울 영등포에 공장을 세웠다. 경북 포항에서는 산토리가 포도를 재배, 와인을 만들었다. 안동소주는 흑국균을 이용, 본격적으로 수출까지 했다. 위스키도 한국에서 판매했다. 당시 맥주를 저장할 냉장고가 없어 우물 속에 넣어놓고 마셨다. 흔히 ‘짝’이라고 불리는 전용 맥주 상자가 없었던 시절이라 왕겨를 넣어 병을 보호했다.
이때에도 술의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을까? 의외로 흥미로운 자료가 남아 있다. 별건곤에 게재된 주국헌법(酒?憲法)이다. 별건곤은 1926년부터 1934년까지 발행된 대중적인 종합잡지다. 건곤은 ‘천지’라는 뜻으로, 별건곤은 ‘별천지’ ‘별세계’ ‘특이한 세계’ 라는 뜻이다. 잡지는 특권 상위층에만 향유되던 근대적 교양과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주국’이란 술의 나라. 주국헌법은 ‘술의 나라 헌법’, 한마디로 좋은 주도와 나쁜 주도를 설명한 글이다. 특히 나쁜 주도를 십불출이라고 기록했다.
대표적으로는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것’, ‘남의 술에 자기 자랑하는 것’,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것’, ‘상갓집 술 먹고 노래하는 것’, ‘남의 술만 얻어먹고 제 술값은 안 내는 것’, ‘남의 술자리에 자기 친구 데리고 오는 것’, ‘술자리에서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술자리에서 얄미운 행동은 같았다.
더불어 술을 마시기 좋은 때도 소개해 놨다. 이 부분은 오히려 지금보다 낭만적이다. ‘천리 타향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비낀 바람에 가랑비 내리는 저녁때’, ‘눈이 하얗게 내린 달밤’, ‘꽃이 피거나 잎이 떨어질 때’ 등이다. 여기에 ‘우울하거나 슬플 때’와 ‘통쾌하고 흥분되는 날’도 마시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전통주는 가장 암흑기를 거친다. 일제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제는 어머니들이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를 금지하고, 획일적인 술 제도를 만들었다. 또 오로지 일본식 청주인 사케를 빚는 방식으로 술을 만들어야 맑은 술이라는 ‘청주’ 이름을 쓰게 했다. 우리 전통방식으로 맑은 술을 빚으면 ‘청주’란 말을 사용할 수 없었다.
주국헙법이 게재된 월간지 별건곤은 1934년에 폐간당했다. 당시 한국의 전통주 문화는 일본의 주세법에 의해 계속 사라져 가고 있었던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의 주국헌법은 우리 술의 낭만을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교수
첫댓글 최악--술버릇
<<대표적으로는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것’,
‘남의 술에 자기 자랑하는 것’,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것’, ‘
상갓집 술 먹고 노래하는 것’, ‘남의 술만 얻어먹고 제 술값은 안 내는 것’, ‘
남의 술자리에 자기 친구 데리고 오는 것’, ‘
술자리에서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술자리에서 얄미운 행동은 같았다--->>
춘수운영위원선배님
귀한정보...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