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
사실 뭐 제가 중환자 였겠습니까?
외국인에다 대화도 원활하지 않고 또한 과거 병력이나 약물 복용 따위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넣어 놓은거겠죠.
응급 구조는 원래 그런 겁니까?
대원들부터 의사들 까지 엄청 뺨을 때리더군요.
썽질 같어선 벌떡 일어나 불꽃 왕복 싸다구를 날려 드리겠으나....
약에 쓸래도 기운이 없어서..ㅋ
옷은 또 왜 모조리 배껴서 알몸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요강까지 옆에 두고 한발짝도 못 움직이게 했는지.
천하에 급할 게 없는 나의 보스도 한달음에 병원에 달려왔다가
절대 면회가 안 된다고 심각한[?] 상태라고..
따위의 말을 의사에게 듣고 갔답니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내 집 문 따는 거 따위 일도 아닐테니
아마 곧 문이 열리리라는 생각을 병상에서 하고 있었네요.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병에 이런 저런 장치들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고
진정제를 얼마나 독하게 썼는지 눈에 촛점도 안 맞고
그저 멍~
찬찬히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과연,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내일 하시는 한눈에도 위중해 보이는 어르신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계시던.
식사 마저 금해지던 하루의 중환자실 신세를 끝내자
저는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일반 병동으로 옮겨 졌지요.
아픈 사람들 많기도 합니다.
병실 수가 턱없이 부족한지 복도며 틈나는 공간엔 다 환자 침대 입니다.
저는 간호사실 옆에 마련된 넓다란 복도에 누워서 오만 아픈 러시아 사람들 오고감을 관찰할 수
있었지요.
의사들은 제게 올 때 마다 왜 그리 사팔뜨기 연습을 시키던지요.
촛점 맞추어 또렷하게 눈을 떠 보이는 일.
내가 멀쩡하다고 답하는 일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복은 모조리 원피스 형인데 제일 작은 사이즈도 제겐 너무 커서 입거나 벗거나 매 한가지여서
몸을 반쯤 흘리고 다녔으니까요.
한번도 현지인의 집에 방문한 적이 없어 그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병원에서 나오는 밥을 먹으며
-아..마트에서 이 재료를 그렇게 많이 팔더니 아렇게 해 먹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입맛에 덜 맞기도 했지만
다 맛보고 느껴 보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기쁜 소식이 날아들기도 했습니다.
집 문이 열렸다고...
할렐루야!
하지만 일요일이 되어 버렸고 저는 이제 진정제는 주었지만 주사도 안 주는 나이롱 환자가 되어
삼엄한 경비 속에 병원에 갖혀 하루를 더 보내야 했습니다.
바깥 바람이 쏘이고 싶어 일층으로 내려 갔지만
착하게 생겼지만 자신의 임무를 아주 성실하게 수행하던 젊은 경비는 단호하게
-제부시까..어쩌고 저쩌고-
저를 잡아채서는 다시 제 병상에 데려다 놓고서는 뒤돌아 가면서 체크를 하기를
몇 번이나..병원비 안 내고 도망 갈까봐 그러나 싶어서 이내 포기하고
잠만 디립다 잤지요.
약이 독해서 먹는 것 마다 토할 것 같고 사물이 두 개 세개로 보여 의사 몰래 약을 끊었는데
한번은 간호사가 내 옆에 들러 붙어서는 약을 입에 넣는 것 까지 체크를 하기에
약먹고 물까지 먹고 삼키는 척 하다 뱉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길고 긴 일요일이 지나고 마침내 월요일이 왔습니다.
담당의가 회진을 왔어요.
주말이라 내내 인턴들이 봐 왔던 거죠.
너 한국 사람이야?
너 여기 일하러 왔어?
너 말도 못 하면서 여기서 어떻게 일해?
갸우뚱한 표정으로 러시아말로 질문을 퍼붓다가 이내 휑 가버렸고
쫄병 의사가 와서 사팔뜨기 검사와 관절 망치로 관절 때리기를 엄청 아푸도록 꼼꼼하게 한 이후에
-나르말라-를 외쳤습니다.
문제없다. 괜찮다. 이런 뜻이지요.
일하는 애에게 오전에 와서 퇴원을 도와달라 연락을 했습니다.
12시를 예상하고 있었지요.
ㅠㅠㅠㅠㅠㅠㅠ
애간장 타는 줄도 모르고 이 나쁜 녀석 다섯시에 온다더니 여섯시가 되어서야 나타납니다.
기사가 어쩌고 거쩌고...
또 매뉴얼에 올라 있는 거짓말 중 하나를 하네요.
시간이 늦어 퇴원을 못 할까봐 애가 타는 데....
허얼..
진짜 '에따 러시압니다'.
여기는 러시아라는 뜻으로 세상과 다른 러시아 만의 문화나 세계를 일컸는 겁니다.
병원비 한푼을 받지 않고 패스포드 검사만 아주 꼼꼼히 한 끝에
십분도 걸리지 않아 퇴원을 시켜주는 거예요,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원~
러시아 친구에게 물어보니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온 환자는 5일째 되는 날 까지의 병원비는 전액 무료라는 겁니다.
암튼,
공산주의 시절의 복지가 남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공짜로 치료 잘 받고 집에 오니 내게 그토록 험난하던 집 문 열기가 거짓말처럼 말짱하게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새 키를 받아들고 집 안으로 한발짝 땠을 때의 그 복잡미묘하던 감상이란.
샤워를 좀 하고 한숨 돌린 다음
빠른 회복을 위해 원기를 보충하기로 합니다.
병원에 누워서 부터 제 입맛을 당기던 나의 애식[?]양고기를 먹어야지용.
걸어서 십오분 위치에 있는
평소 즐겨 먹던 양고기 샤슬릭 [꼬치구이]를 먹으러 갔지요.
제 입에 잘 맞고 양이 몸에 좋다는 군요.
우즈베키스탄식 양고기 샤슬릭과 화덕에 구운 담백한 빵 한조각을 먹어 치우고 나니
아,
이제 또 살겠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양꼬치를 먹고 아침 저녁으로 꼭 밥을 먹고
이것 저것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살살하니 컨디션은 서서히 올라왔고
이제 또 병원 가기 전의 내가 되었습니다.
내 보스는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 생활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
이미 외국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 이 험난한 땅이 자신에겐 한국처럼 편한 곳이 된 거지요.
그래서 제가 때때로 곤란한 상황을 만나고 아주 힘들기도 하다는 사실을 까먹은 게 아닌가 싶어요.
퇴원하고서 삼일 만에 만났는데
괜찮나?
하더라고용.ㅎ
키박스 교체하는데 든 비용이 무려.....
40만원,
눈 튀어나오지 않습니까?
병원비 보다 더 비싸게 먹힌 것 같고..
그래도 그게 싸더라 비싸더라 한마디 않고 바꿔놓았더군요.
저처럼 혈압이 낮고 몸에 비축분 지방이 부족한 사람은 살면서 요런 류의 펀치를 언제나
조심해야지 싶어요.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효!!
여긴 한국과 8000킬로 떨어진 머나먼 나라..
문화와 사고 이런 것들이 너무도 다릅니다.
그들의 느긋함을 넘어서 타인에 무관심하고 대책없는 태도에 한방 크게 맞아
잠시 주저 앉고 휘청했지만,
저는 이내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과정이 긴 인생의 한 페이지 일뿐 제 삶을 지배할 순 없으니까요.
무언가 많은 걸 배운 기분도 드는군요.
이번 주말에도 양꼬치를 먹으러 갈 것입니다.
부엌엔 애호박새우젓 찌개가 끓고 있네요.
울 엄마 알면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면서 당장 기들어오라고 전화통이 깨져라 소리지르실테니
여러분...엄마한테는 비밀입니당......
아.....남자용 새끈한 셔츠 대여섯 장[100부터 120까지 싸이즈 다양]과 여성용 재단이 재미난 티랑 원피스 몇 장 새로 추가 되었습니당...오홋!!
첫댓글 잘~한다~!
오뚝이 레이나 홧팅!
몇일날오세요??
건강하세요 ^^
역시 언니~ ^^
언니 멋져요!!!! 화이팅~!!^^
ㅋㅋ 모야~ 남얘기 같잖아~
언니 그 양고기 ㅋㅋ 저도 맛보고싶으네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