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화*도(遷化*圖)-윤향기
동안거를 끝냈는가
한 벌 옷이 외출을 하네
저당 잡힌 묵언수행과 가압류된 묵은 소유
한 덩이 달 반죽 속에 훌훌 날려 버린다
소몰이 창법으로 쏟아내는 들숨날숨은
팔천 가닥 자비면발을 실실이 뽑아낸 것
늪보다 어두운 숲길을 허기지게 걸어가네
귀를 끌어당기는
꿀벌 색 날갯짓의 처음과 끝 그 사이 길로
네발 달린 짐승이 되어 마침내 기어가서
몇 과 사리로 영근 들꽃 같은 세속의 말
담담히 베고 누워 나뭇잎 경전을 덮는다
어디쯤인가
빙하기 살찐 보름 한 입 베어 물고 잠이 들면
바깥을 닫은 거기서부터 벌써
묽다
*천이화멸(遷移化滅) 깊은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쓰러져 나뭇잎을 긁어 덮는 고승의 죽음의식.
— [열린 시학상] 2014년 12월 수상작
<감상>
한 생이 죽음으로 이행하는 자발적 제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면 되는지, 모태로 회귀하거나 천국으로 상승을 기대하였는
지를 짐작 해보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선 죽어야 한다.” “존재 가치 변화를 위해서”라는 통시적명제와 어떤 제의가 병존
하는 심층의 전제를 살핀다. 어떤 생이든 극단의 귀결이 ‘시작’으로 부터 ‘도달’이거나 ‘완성’이 목격 되므로 통과제의라고 범
박한 규정을 하고, 화상이 몸을 붓 삼아 대지에 비문을 쓰니, 시인이 받아 스푸마토(sfumato) 처리했다 여기며 읽은 시가
「천화도」이다.
위의 시를 들춰 말하자면 “옛날 스님들은 늙어 기력이 쇠하면 명이 다하는 때를 예지하고 목욕을 하고, 옷 갈아입고, 골 깊
은 산을 찾아간다. 갈수 있는 곳까지 걷다가 기력을 다 소진해 넘어지는 그 자리에 눕는 것이다. 남은 힘을 다해 나뭇잎을 긁
어 덮고 눈에 띄지 않게 이승을 뜬다.”는 죽음의식 장면을 그린 시이다. 시인은 말한다. 이렇게 살지는 못할 지라도 나이 들
수록 가진 것을 나누는데 힘쓰라고.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는데 어차피 빈손으로 갈 텐데 살아서 다 털고 가자.”라고 한다.
윤향기 시인은 군상들의 물고 할퀴는 사태에 한 웃음을 보내고, 다소곳이 앉아 한 화상의 행장을 마지막 갈피까지 다 살피
고 나서 마침내 우리에게 시말을 건네는 것이다.
흔한 다비식도 없이 유명의 봉분도 없이 쓸쓸하게 스러져간 생을 넣고 하늘과 땅을 겹치는 시적 데칼코마니를 실현하면서
안개처럼 미묘하게 시어들을 변화시켜 상관물 사이의 윤곽을 무너트려가며 시의 명암을 조율하고 있다.
시인의 시는 화상이 육신을 뉜 자리를 찾아가 화엄(華嚴)을 그의 머리맡에 살며시 내려놓는 의식 차례인 것이다. 위의 시
「천화도」를 읽고, 포자로 도(道)를 번식하는 자였었든, 윤회의 점자를 더듬는 자였었든, 경건이 뒤밀이 하는 자발적 장례에
“관다발, 헛 관다발 식물처럼 살다 가시니, 다음 생은 종자라도 남겨 볼 양치식물이라도 되시라, 떨치고 가시는, 아! 염치 있
는 화상이여”라고 나직이 진혼곡을 부르는 내가 참 겸연쩍다.
-류현승(시인)
천년학 (서편제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