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휴대폰 액정(겔럭시1)이 작은 것으로 쓰다가 액정(노트3)이 큰 것으로 바꾸면 그림도 크고 글씨도 커서 사용하기가 매우 수월합니다.
TV도 20인치 보다가 50인치 바꿔서 보게 되면 화면이 커서 현장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크다는 생각이 점점 없어지면서 큰지도 모르고 삽니다.
사람의 욕심도, 행복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움에 만족하다가 점점 식상하게 되고 행복한 줄 모르고 더 크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나 봅니다.
종교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순수하게 출발했지만, 사람과 돈이 모이게 되면서 부터 처음의 순수하고 작은 행복감이 사라져 가고, 점점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갈구하게 됩니다.
처음의 보았던, 처음에 느꼈던, 그런 초발심.. 이것을 지켜나가는 것도 삶의 철학(一心)이 아닐까요?
*하루는 경석이 증산상제님께 아뢰기를 "세상사람들이 저의 걸음걸이를 보고 '용이 움직이고 호랑이가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나이다." 하니, 증산상제님께서 웃음 띤 얼굴로 그 뜻을 설명하여주시기를 "경석아, 용행호보(龍行虎步)가 분수를 알고 지키면 나라도 흥하고 가정도 흥하지만, 용행호보가 분수를 망각하면 국가도 망하고 가정도 없어지게 되느니라. 나는 천지의 복을 갖고 있나니, 네가 마음을 잘 닦아 나의 명을 잘 이기어 받으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447-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