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_의미
< #김흥호_교수 의 글>
어느 날 #류영모 는 ‘ #생명’이란 도장을 새겨 가지고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찍어 주신 일이 있다. 크기는 옛날 엽전만 하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어 더욱 엽전을 연상하게 한다. 구멍은 떳떳할 상(常)자의 입 구(口)에 해당한다. 상 위에는 없을 무(無), 아래는 날 생(生), 상 왼편에는 아닐 비(非), 오른 편에는 목숨 명(命)이라고 새겼다. #無常生_非常命 이다. 生必無常이요, 命是非常이다.
大塊能變如常 小我執着欲常 逢變乖常 呼吸代謝百年九億 吸始以生 呼終而死 一生一死 不外氣息之頭尾也. 一吸無常 恍兮反呼 一呼非常 惚兮復吸 一息之間 可見生之無常 命之非常 一呼一吸卽 生命之 左右也. 呼吸死生 各二極而反復 氣息生命 自中正而剛健 中正之謂常 知常之 謂道 一陰一陽 謂之道 釋生命卽曰 無常生 非常命 知常處中 於東於西 無非生命.
류영모는 언제나 삶이 덧없어도 목숨 같이만이라고 하셨다. #목숨은_至誠不息이다. 자면서도 숨은 쉬고 깨면서도 숨은 쉰다. 마찬가지로 #말씀은_살아서도_말숨_쉬고_죽어서도_말숨_쉰다. 말숨은 유의식, 무의식, 유무를 초월하고 말숨은 생사를 초월한다. 대괴(大自然)는 계속 변하고 발전해야 언제나 살아있고 늘 건강하다. 그런데 사람은 계속 변하여 발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아에 집착하여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갑자기 죽어서 봉변을 당하면 괴상하고 허무하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멸망이지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우선 #육체의_생명 부터 헤아려 보자. 사람은 백 년을 산다 해도 삼만 육천일, 숨은 9억 번 쉬고 끝이 난다.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죽음에의_존재 이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생명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을 힘차게 쉴 수 있어야 한다. 힘껏 #들이쉬며 살기 시작하고 힘껏 #내쉬며 죽어간다. 9억 번 숨도 한 번 숨이나 마찬가지다. 한 번 잘 쉬면 9억 번 쉰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끝에 숨을 들이쉬어 폐에 바람이 차면 그것으로 끝이고, 또다시 그 숨을 내쉴 수 없다. 이것이 숨이다. 들이 쉬고 내 쉬고 내 쉬고 들이 쉬면 더 들이 쉴 수 없으니 기가 막히고, 내 쉬면 더 내 쉴 수 없으니 아찔하다.
#기가_막히고_아찔한_것이_호흡이다. 세상에 나오면 #기막힌_일생 이요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찔한 일이다. 그러나 호흡은 들이쉬고 내 쉬면서 몸 전체를 살리고 있으며 사람은 나고 죽어 가면서 인류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호흡이나 사생은 들어갔다 나갔다 살았다 죽었다 마치 #문처럼_열렸다_닫혔다 하면서 집 전체를 살려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짝은 언제나 꼭 맞고 #돌쩌귀 는 잘 돌아가야 한다.
잘 돌아가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꼭 맞는 것을 #정(正)이라 한다. 그래야 집안사람은 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꼭 맞고 잘 열리는 中正이 되어야 아무 문제없이 영원히 살 수 있다. 아무 걸림 없이 잘 통해야 길이 될 수 있다. 한번은 밟고 한번은 어두운 것이 해와 달의 길이다. 생명 도장의 내용을 해석하면, 산다는 것은 한없이 위험하고 죽는다는 것은 한없이 고귀하다. 언제나 위험은 멀리 할 줄 알고 존귀를 보존하고 살아가면 어디서 살든지 행복 할 수 있다.
류영모는 중정을 #팽이 에 비유했다. 팽이는 바로 서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서서 돌아가지 않으면 쓰러지고 무너진다. 언제까지나 바로 서서 돌아가게 하려면(知常處中) #채찍으로_쳐서_돌려야_한다. #하나님의_채찍 이 道라는 것이고 자기가 자기를 쳐서 바로 잡는 것이 自中正이다. 자기가 자기를 바로 잡는 것이 #修身이며 #自治다. 자기 속에 자기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 #자유다.
一陰一陽이요 자치이며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생명은 한없이 올라가기 위하여 한없는 지혜와 노력을 쏟아 붇는 것이 #知常處中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지상처중이다. 지상처중은 어디서나 주인(隨處爲主)이 되는 것이요, 언제나 세상을 이기면 그 곳이 천국(立處皆眞)이다. 생명은 자기를 알고 자기를 이기는 것이 인간생명이다. 자기를 알아야 능히 변(能變)하고 자기를 이겨야 언제나 그만하고(如常) 언제나 새롭다. 생은 한없이 새롭고 명은 한없이 빛난다. 생은 더러움이 없고 (無常生), 명은 어둠이 아니다(非常命). 생명은 #지혜 와 #사랑 이요, #정직(正)과 #진실(中)이다. 정직을 義라 하고 진실은 仁이라 한다. 생명은 浩然之氣이며 至剛至大한 것이다. 생명은 세계를 긍정하고 사는 자기를 부정한다. 자기를 긍정할 수도 있고 자기를 부정할 수도 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열매는 #着實해야 성숙하고 #果斷성 있게 창조해야 한다. #성숙한_지성 과 #창조적_지성 이 일음일양이요, 그것을 道라고 한다. 도는 일음일양이요 #일좌(一坐) #일식(一食)이다. 일좌는 정직이고 일식은 진실이다. 생명의 본질은 정직과 진실이다. 생은 진실(仁)이요 사는 정직(義)이다.
류영모의 ‘ #소식(消息)’이라는 글이 있다.
消息消息何消息 宇宙氣候年消息 尋消耳息人消息 興消寢息自消息 寢食無恙一姑息
父母有養多子息 九億四千萬回消 無量不可思議息 壹氣衆生同胞消 非候一也獨胎息
消遣有待食消化 體息無他要氣息 隱顯事物萬化消 活殺心身一氣息 便消利息死消息
通息窮消活消息 歌消舞息固孤單 消舞息歌眞如息 消息象中消息者 氤氳氣壹統萬息
心可配地身奉天 脫情則生套則殞 直前勁志動地來 向上毅氣冲天去
내쉬고 들이쉬는 것이 #호흡 인데 호흡이야말로 하나의 ‘ #소식’이다. 소식이라면 편지라는 말이 되는데 인생이라는 것도 하나의 편지다. 소식, 소식 하는데 무슨 소식이 가장 중요할까. 우주기후가 평탄히 돌아간다는 평소식이다. 우주와 기후에 아무 이상도 없는 덕으로 오늘도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소식을 묻지만 깨어났다 또 자고 쉬는 것이 ‘ #내소식’이다. 침식에 이상이 없어서 우리의 전통적 문화가 이어지고, 부모님의 은덕으로 우리의 자손이 이어진다. 일생을 살려면 9억 4천만 번의 숨을 쉬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각처럼 신비한 것은 없다.
같은 공기를 숨 쉬며 모든 만물이 하나의 동포를 이루고 수많은 계절을 지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길러내고 있다. 때를 끊고 기다림은 음식을 소화하고 지식을 소화시키기 위해서요, 땅에 누워 깊이 쉼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다시 깨어나기 위해서다.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만물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신의 뜻을 살펴야 하고 몸과 마음을 살피고 죽이어 자기의 영혼을 일깨워 살려야 한다. 언제나 안일과 #利害 는 #죽은_소식 이요, 숨이 통하고 이치가 통하고 신에게 통하는 것이 #산_소식 이다. 노래가 그치고 춤이 멎음은 너무도 고독한 처사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소일하는 것이 흥겨운 삶이다.
소식 가운데 기쁜 소식은 어린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어린아이 는 #메시아 며 구세주며 우주를 다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운은 내려오고 땅의 기운은 올라간다. 비가 오고 이슬이 맺혀 농사가 풍년이 되듯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기도가 합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언제나 몸은 기운차게 올라가고 마음은 겸손하게 내려와야 한다. 인간은 자연을 벗어나서 유희 삼매하는 것이 사는 것이요, 사람이 구습에 짓눌리면 죽는 것이다.
생명은 언제나 옛것을 넘어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옛 껍질을 벗고 새로운 삶을 사는 창조적 지성이 올라가는 생명이다. 깊이 생각하고 높게 살아가는 것이 #참_생명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