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읽기] 페스트 1부 1 / 어느 한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한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좋은소식]

[페스트] 1부 1

이 기록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에 오랑[알제리 북서부 오랑 주 북부의 주요 도시]에서 발생했다. 보통 경우에서 좀 벗어나는 사건치고는 그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다. 오랑은 언뜻 보기에는 사실 평범한 도시고,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프랑스의 현청 소재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거리 자체는 못생겼다. 고요한 모습의 도시여서 세계 각지에 있는 수많은 무역항과 구별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령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으며 공원도 없는 도시다. 거기서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도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중성지대라고 할 수 있는 그 도시를 어떻게 설명하면 상상이 될까? 그곳에서는 계절의 변화도 하늘을 보고 분간한다. 봄은 오직 공기의 성질로, 또는 어린 장사치들이 교외에서 가지고 오는 꽃 광주리로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봄은 시장에서 매매되는 격이다. 여름에는 태양이 지나치게 건조한 집들을 태워 벽돌을 뿌연 재로 뒤덮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덧문을 닫고, 그 그늘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가을에는 이와 반로 진흙의 홍수다. 겨울이 되어야 겨우 좋은 날씨를 볼 수 있다.

어느 한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한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어가는 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 작은 도시는 기후 때문인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동시에, 그리고 열광적이고도 무심하게 이룩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심심해서 습관을 붙여보려고 그런 데 열중한다. 우리 시민들은 일을 많이 하는데, 언제나 그것은 부자가 되려는 욕심에서 하는 일이다. 그들은 특히 상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빌리면 사업하는 데 우선 관심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단순한 기쁨에 대한 취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며 영화며 해수욕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단히 절제가 있는지라 그런 재미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위해서 보류해두고 주중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쓴다. 저녁때 그들은 퇴근 후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 모여 앉는다거나 늘 같은 거리를 거닐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집의 발코니에서 쉰다. 아주 젊은 패의 욕망이 거세고 무뚝뚝한 데 비해 나이가 든 패의 장난이란 볼링 클럽이나 친목회 모임에 참석하거나, 카드 노름에 돈을 듬뿍 거는 정도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아마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도시에서만 특별하게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카드놀이나 카페에, 그리고 잡담에 소비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도시들이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간혹 딴것에 대한 의혹을 가진다. 대체로 그런 것이 그들의 생활에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의혹을 가졌을 뿐이고, 그만큼 늘 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오랑은 분명히 의혹이 없는 도시, 즉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장에서는 사랑하는 방식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른바 성관계라고 하는 그런 행동을 통해서 이내 서로를 마멸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만의 오랜 습관 속에 얽매이게 된다. 이 양극단 사이에는 중용이라고는 거의 없다. 그것도 역시 특이한 것은 못된다. 딴 곳과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시간과 반성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도시에서 더 독특한 것은 죽음에 이르러 직면하는 곤란이다. 하기야 곤란이라는 것은 좋은 말이 못 되고, 더 정확히 말해서 불편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병이 들어서 유쾌한 일은 결코 없지만, 어떤 도시나 나라에서는 병중에라도 의지할 곳이 있어 어쨌든 그럭저럭 견디어 나갈 수 있다. 병자란 부드러움을 필요오 하며 그 무엇에 의지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오랑에서는 극단적인 기후라든가, 거래하는 사업의 중요성이라든가, 장식의 무의미함이라든가, 황혼의 덧없음이라든가, 쾌락의 성질이라든가 하는 그 모든 것이 건강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병자는 아주 고독하다. 더위에 말라 터질 듯한 몇백 개의 벽돌 뒤에서 덫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전화로 또는 카페에서 어음이니 선하증권이니 할인이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비록 현대적일지라도 그 죽음이 그런 무미건조한 도시에 그렇게 들이닥칠 때 불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알게 되면 우리 도시에 대한 분위기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아무것도 과장해서는 안 된다. 강조해야 할 것은 이 도시와 생활의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습관만 들이면 사람들은 그날그날을 거뜬히 보낼 수가 있다. 그러한 습관만 들이면 우리의 도시는 모든 것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아마도 삶이란 그다지 보람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적어도 우리 고장에서는 난잡한 것을 모른다. 그리고 솔직하고 동정심 많으며 활동적인 우리 주민들은 여행객들의 마음속에 늘 점잖은 느낌을 남겨주었다. 경치도 별로고 초목도 없고 넋도 없는 이 도시는 마침내 아늑하게 보여 결국 사람들은 거기서 잠들어버린다. 그러나 이 도시가 완만한 선을 이룬 만(灣) 앞에서 반짝이는 언덕에 둘러싸여 헐벗은 평원 한복판에 우뚝 서서 비길 바 없는 경치와 접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두는 것이 공평하리라. 단지 이 도시가 만에 등을 돌리고 있어서 바다를 보려면 도시를 벗어나야만 하는 게 유감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그해 봄에 사건들이 생겨서 그것들이 내가 여기서 그 기록을 만들려고 뜻을 품은 —우리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일련의 중대 사건들의 첫 신호가 되리라는 것을 이곳 시민들이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어떤이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보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반대로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기록 작가란 사람이 그러한 모순을 참작할 수는 없다. 그의 임무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었으며, 따라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의 진실성을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인정해줄 수 있는 목격자가 몇천 명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단지 ‘이런 일이 생겼더라’고 말하는 것뿐이리라.

그뿐이랴. 때가 오면 언제고 인정받게 되겠지만, 그 필자가 우연한 사정으로 얼마만큼의 진술 내용을 수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또 사태의 압력으로 그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 휩쓸려 들게 되지 않았던들 이런 종류의 일에 어울릴 만한 명분도 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역사가의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연유이다. 물론 역사가라면, 그가 비록 본직이 아닌 경우라도 항상 자료는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필자도 자신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 우선 자기가 목격한 것과 다음으로 남이 목격한 것 —왜냐하면 그의 직분 때문에 이 기록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내막 이야기를 모두 수집해야 했으므로—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침내 그의 수중에 들어오고야 만 서류들이다. 그가 좋다고 판단할 때는 거기서 잘라내어 그것들을 마음껏 이용할 생각이다. 그는 또한 ……그러나 이제는 아마도 주석이나 말막음은 그만두고 이야기 자체를 시작할 때인 성싶다. 처음 며칠 동안의 경위는 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