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 미륵불용도사
충남 예산군/ 보덕사 대련사 향천사 화암사
충남 당진군/ 영탑사 영랑사 보덕사
충남 홍성군 미륵불용도사
용도사는 대한불교/용융종
충남 예산군 보덕사
충남 예산군 대련사
대련사(大蓮寺)는 예산군 광시면 동산리 산11번지 봉수산(鳳首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대련사는 삼국시대인 656년(백제 의자왕 16) 의각(義覺)·도침(道琛) 두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이름인 대련사는 근처의 임존산성 안에 연정(蓮井)과 연당(蓮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 때인 845년(문성왕 7) 무주 무염(無住無染)이 중창했다. 그런데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기의 연혁은 잘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시대 중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서 후기의 기록인 《범우고(梵宇攷)》·《가람고(伽藍考)》 등에 절 이름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조선시대에도 법등을 계속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절 이름이 ‘大連寺’로 적혀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 〈대흥군(大興郡)〉 <사찰>조에, ‘대련사는 군의 남쪽 10리 떨어진 봉수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다. 규모는 법당 3칸, 선당(禪堂) 5칸, 승당 5칸, 법전(法殿) 5칸, 향로전 3칸, 정문 12칸이다.’ 라고 되어 있어 당시로서는 비교적 대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1765년 사이에 전국의 읍지를 모아 만든 책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연혁은 1975년 원통보전을 해체 복원했을 때 발견된 1849년의 법당 중수시 쓴 〈대련사법당중수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상량문을 보면, 1648년(인조 26) 중수되었다가 1691년(숙종 17)에 화재로 당우 전체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745년(영조 21)의 중수를 통해 다시금 절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 무슨 연유에선가 또다시 절은 퇴락되어 불상도 봉안하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승려들은 절을 떠나고, 결국 대련사는 빈 절이 되어 버렸다.
이 때 보월 대윤(普月大允) 스님이 중창의 서원을 세워 사람을 모으고 비용을 구하여 점차 절의 당우를 새롭게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1836년(헌종 2) 노전(爐殿)을 새로 지었으며, 1843년 수선당(修禪堂)을, 그리고 1849년(헌종 15)에 법당을 중건함으로써 14년간에 걸친 중창 불사를 완성해 내었다.
최근에는 법당 오른쪽에 새로운 요사를 건립했다.
충남 예산군 향천사
향천사(香泉寺)는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산57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향천사는 655년(백제 의자왕 15) 무렵 의각(義覺)이 창건한 고찰이다. 의각 스님은 백제의 고승으로서, 652년 일본에 건너가 백제사(百濟寺)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 해에 중국 당나라에 가서 불법을 닦았다. 스님은 이 때 오자산(五子山)에서 3년 동안 석불 3,053체를 비롯하여 전당향(涅檀香) 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의 불교조각을 조성했다.
의각 스님은 655년 백제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는데, 귀국하면서 이들 석불을 싣고 바다를 건너 왔다. 그런데 백제 오산현 북포 해안에 이르렀으나 마땅한 절터를 잡지 못해 석불들을 몇 달 동안 그대로 배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배 안에서 치는 종소리가 해변 마을에 진동했다고 하여 이 부근의 마을 이름을 종성리(鍾聲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인연 있는 절터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금오(金烏) 한 쌍이 날아와 지금의 향천사 터를 알려주었다.
충남 예산군 화암사
화암사(華巖寺)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202번지 용산(龍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에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 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 1788∼?)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曺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처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金興慶, 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충남 당진군 영탑사
영탑사(靈塔寺)는 당진군 면천면 성하리 560번지 상왕산(象王山)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확한 자료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절에 전하는 석탑과 마애불 등이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러한 창건설화가 등장한 것 같다. 한편 절이름인 영탑사는 유리광전 뒤 암반에 놓인 석탑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대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으나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영탑사는 군의 서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따라서 조선후기 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798년에는 연암당(鍊岩堂) 지윤(智允) 스님이 유리광전을 중수하였다.
충남 당진군 영랑사
영랑사(影浪寺)는 당진군 고대면 진관리 529번지 영파산(影波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760년(영조 36)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이르기를, ‘현(縣)의 서쪽 십리에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조선 후기에 이미 존재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한편 절에서 전하는 말로는 아도(阿道) 화상이 삼국시대인 564년(신라 진흥왕 25)에 창건하였고, 신라말 도선(道詵) 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창건이후 절은 고려시대 들어 대각국사 의천이 1091년(의종 8)에 세 번째로 중창하였고, 1678년(숙종 4)에 호암(護岩) 국사가 네 번째로 중창하였다고 한다. 위의 창건과 연혁은 구체적 자료나 사실에 근거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 이러한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사찰의 정확한 창건내력이 전하지 않을 때 새롭게 절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법맥의 유구함이나 전통의 장구함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위대한 인물들을 창건의 이야기로 덧붙이는 경우이다. 창건주라는 아도 화상이나 도선, 그리고 대각 국사 등이 중창주로 등장하는 영랑사의 역사도 이러한 맥락이라 생각된다.
충남 당진군 보덕사
보덕사 앞은 본래 바닷물이 출렁이는 해안이었으나, 지금은 제방이 쌓이면서 호수와도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방이 축조되기 전의 보덕사는 전형적인 해안 사찰로서 기암절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모습이 절경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앞쪽에 넘실대던 바닷물과 파도가 사라져 버려 옛 자취를 상당히 잃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웅전이나 범종각, 요사채 등은 깍아지른 절벽에 차곡차곡 세워 놓은 특이한 구조이고, 대웅전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곧바로 서해의 누런 바닷물이 한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이 다가오는 그런 곳이다.
이 사찰은 17세기 경에 바닷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세워졌으나 언제부터인가 점차 퇴락하기 시작했다가, 지금의 주지로 계신 정안 스님이 절을 처음 찾은 1980년 무렵부터 점차 신앙심을 회복하게 되었다. 당초 쓰러져가는 인법당 한 채만이 겨우 불법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후 오랜 발원 끝에 1988년 무렵부터 대웅전과 범종각·일주문·요사 등을 새로 짓는 큰 불사를 이룩하여 오늘날과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보덕사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당진에 도착해서 서해 바닷물과 함께 널따란 갈대밭을 보고 싶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특히 여러 가지 세속의 일로 상념이 많은 사람들은 대웅전에 올라가 부처님께 절을 올린 다음, 바닷가쪽으로 난 넓은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길 권한다. 시원한 전경에 눈이 탁 트이고 상큼한 바닷내음을 맞으며 복잡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걷히면서 머릿속이 맑아질 것이다.
첫댓글 도량 구경 잘했습니다 ()
감사합니다_()_
산행할때 들린 도량이군요
설명 곁들인 사찰 구경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