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화로 뜬금없이 인천 장발장 얘기 들었냐더군요.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한번 자료 찾아보라며, 자기는 그 기사와 영상을 보고 5분을 울었답디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반성했답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아오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잊고 살았던 게 그리 후회되더랍니다. 사실 이 친구는 참 정이 많은 친구입니다. 낭만적인 벗입니다. 비탈길을 힘겹게 손수레 끌고 올라가시는 어르신을 뵈면 긴 언덕 끝까지 밀어드린 후 언덕배기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안주 사서 고단한 하루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추운 길바닥에서 노숙하고 있는 이에게 자기 외투를 벗어주고 가는 그런 친구입니다. 이 친구의 마음 씀이 그러함에도 장발장 얘기를 들으며 자신이 부끄러워, 그들이 안쓰러워, 다른 이들의 따스한 온정에 감동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인천 장발장 부자’기사가 넘쳐나더군요. 지난 10일 인천의 한 마트에서 있었던 일로, 34세 아버지가 12세 아들과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가 종업원에게 적발되었고, 바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됩니다. 가장인 아버지는 홀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부정맥,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지병 때문에 택시기사 일마저 6개월 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배고픔을 못 참아 훔쳤다는 겁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마트 주인은 처벌하지 않겠다며 용서해줬습니다. 출동했던 경찰관은 이들 부자를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대접해줬습니다. 이 장면을 본 60대 남성이 이들에게 20만 원의 돈이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졌답니다. 마트 주인은 딸 결혼식 축의금 중 500만원을 기부하였고, 마트에 50만원을 선결제한 후 이들 부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차감해 주라는 이도 있었습니다. 마트엔 쌀, 라면, 계란, 사과, 즉석밥 등 이들을 위한 물품을 사주라는 이들이 넘쳐나고 행정복지센터와 지구대에 후원 문의가 폭주하였답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이 가장의 치아가 거의 빠져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본인은 물론, 노모, 두 아들의 치과 치료 지원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인천 중구청은 30대 가장과 모친을 만나 근로 의사를 확인한 뒤 자활센터 등을 연계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답니다.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관련 동영상을 보며 저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를 수도 없이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후원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이 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이 30대 가장은 기초생활수급자로, 기초생활급여 137만원, 주거급여 15만원, 아동수당 10만원 등 명목으로 매월 162만원을 받고 있답니다. 4인가족의 최저생계와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입니다. 매달 20일에 수급비를 받는데, 다음 달 수급비가 나오기 전 1~2주는 처참한 보릿고개를 지나야 한답니다. 그래서 좀 더 현실화된 급여가 돼야, 현대판 장발장이 더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을 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수보회의에서“장발장 부자의 얘기가 많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며 “흔쾌히 용서해 준 마트 주인, 부자를 돌려보내기 전 국밥을 사준 경찰관, 이어진 시민들의 온정은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진 시민들의 온정은 큰 감동을 주고, 우리 사회가 희망 있는 따뜻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민들의 온정에만 기대지 말고, 복지제도를 통해 제도적으로 도울 길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주기 바랍니다."고 말을 이었다고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따져볼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진입했습니다만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가 곳곳에 있습니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14년에 동반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한동안 복지 이슈가 되었고, 지난 11월에도 성북구 네 모녀 사건이 다시 크게 이슈화되었습니다만 그 이후 복지 관련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아직은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택적 복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할 때입니다. 복지 포퓰리즘은 물리쳐야 합니다. 선택적 복지를 강화하여 촘촘한 복지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 생각됩니다. 올해 복지예산이 72.4조원이었고, 내년 예산은 82.8조원이랍니다. 14.2%의 증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촘촘한 선택적 복지를 기획하고 실현하여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올해 들어 사회복지사 자격증 보유자 100만 시대가 열렸지만-저도 그 중 한 명입니다-복지사의 처우는 매우 열악합니다. 복지 업무에 종사하는 이가 행복하지 않은데 수혜자에게 행복이 전파될 수 있을런지요? 또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수없이 되물어봅니다.
삶이란 무엇인가(모셔온 글)=====================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굼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꽃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자신이 꽃을 피운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쪽을 떼어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세 물처럼 흐물흐물해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이고 해삼인지 반성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없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넥타이를 맬 때마다 번번이 쩔쩔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다 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오천 원을 주어야 할는지 만 원을 주어야 할는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 값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공중전화 부스에 말끔한 전화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으면
혹시라도 새것인가 싶어 카드 투입구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밀어 넣어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택시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번 타기가 머뭇거려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뛰는 것.
쓰레기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뚱이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한 바가지의 물을 쓰면
나 아닌 남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뒤에
첫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 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르륵 차르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단칸방에 살다가, 아파트 12평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한 평도 안 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