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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62강 – 2 – a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三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一
四. 普賢菩薩의 二千答
2. 二十門의 十住答
(8) 童眞住
가. 菩薩의 十種辯才
나. 菩薩의 十種自在
(9) 法王子住
가. 菩薩의 十種無着
나. 菩薩의 十種平等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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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가 오기 까지 우리가 화엄경 10무진장품에서 배워왔듯이,
10무진장품은 무진장 창고가 있음으로 해서 회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에, 10회향품 도솔천으로 넘어가기 전에 제일 마지막
이 뭡니까?
승야마천궁품ㆍ야마천궁게찬품ㆍ10행품!!!!!!
‘열 가지 바라밀 행이 충족되면, 열 가지의 무진장창고가 생겨진다.’
10무진장 창고를 가지고 회향의 길을 바랑을 짊어지고 떠나지요.
그러면 거기에 보면 첫째는 10무진장 제 1번이 뭡니까?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信藏(신장)!
범어사는 입구에 딱 들어오면, “의상교” 라고 하는데를 지나고 나면,
야~~참! 그 분의 선근이 너무나 있어서 그런지 김선근인가? 금선근인
가? “김선근”이 바위에 새겨놨습니다. 선근공덕을 지으라고요.
선근이 바로 신심입니다. 신심을 다른 말로 선근이라고, 신근이라고도
하고요.
기신론에서는,
“有法이 能起摩訶衍信根故
(유법능기마하연신근고)로” 하지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공덕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善根”
이라고 하는데요. 범어사는 세 분의 아주 특출한 이름이 계십니다.
*
옛날부터 바위에 새겨놓은 분들이 “김선근” 이름을 딱 읽고 올라와야
돼요. 이름을 읽고 그 다음에 딱 올라가면 생각을ㆍ사유를 끊지말고
계속 자기의 사유를 살피면서, 계정을 살피면서 가야되는 “김사철”
생각ㆍ생각에 염념이 끊어지지 않도록 염불하라고 金思轍(김사철)이라
했습니다.
서너 발자국 가서 왼쪽으로 살짝 고개 돌리면 “金永悳(김영덕)”이 있습
니다. 3김이 범어사에 있습니다. 왼쪽 바위에는 길 永자. 영원토록
悳 = 선근을 짓는다는 뜻이거든요. “김선근ㆍ김사철ㆍ김영덕”
그런데 범어사에 30년 살든 20년 살든, 강사로 살든 학인으로 살든,
까막눈이 돼서 한 번도 못 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것 보고 자기 가슴에
새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일주문 밖에는 계단이 보통 다섯 개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속 5계 = 신도 5계입니다.
살ㆍ도ㆍ음ㆍ망ㆍ주 ←이것 조심해서 일주문 들어섯. ←이렇게 됩니다.
그렇지요? 일주문 통과하면 계단이 보통 열 개입니다.
해인사나 범어사 들어가면 열 개 지요?
‘여기서 부터는 출가문이니까 더 조심해.’ ←이런 뜻으로...
대웅전 올로갈 때는 계단이 보통 다섯 개입니다.
계향ㆍ정향ㆍ혜향ㆍ해탈향ㆍ해탈지견향. 단단히 하라는 말이지요.
童眞住(동진주)
菩薩의 十種辯才(보살10종변재)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辯才하니 何等이 爲十고?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다.
1. 먼저 믿음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2. 투철한 도덕 정신이 있어야 되고,
3. 戒藏(계장)이 있어야 되고,
계장이라고 해서 “청정계장” “게장”아닙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
그 다음에
4. 慚藏(참장) = 자기 부끄러운 줄 알고,
愧藏(괴장) = 남 부끄러운 줄 알고, 그러면
5. 聞藏(문장) = 법문이 들리지요. 그 다음에 남의 말 잘 들은 사람들은
6. 施藏(시장) = 잘 베풀어 주거든요. 베풀어 주는 사람들은
7. 지혜와 방편이 생겨지지요. 지혜와 방편이 생겨진 사람들은
8. 念藏(염장) = 기억력이 뚜렷해져 念藏이 생겨지지요. 염장이 생겨진
사람들은 어느정도 사마타 수행이 쑥~~ 깊어져 8부 능선을 넘어가니까
자기 몸에 스며들기 시작해서 뼛속까지 스며들어서
9. 持藏(지장)이 되지요. 완전히 수지가 되는 것이지요.
몸이 화엄경이 되지요. 문신이 아니고, 완전히 문심이 되어 무늬가 마음
에 새겨지지요. 그 다음에 거기서부터 뱉어내면 辯才(변재)!
10. 辯藏(변장)이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여기서 辯才라고 하는 것도 10무진장품 하고 같이 여러분이 한 번 비교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所謂於一切法에 無分別辯才와
이른바 일체법에 대해서 무분별 변재라.
無分別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것이, 童眞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해석
을 했고, 무분별로 넘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분별심이 없거든요.
선악ㆍ시비ㆍ희로애락 ←이와 같은 데서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이렇게 하는 것이지, 아주 과도한 욕심이 별로 없
지요.
“온갖 법에 분별이 없는 변재와” ←이것을 우리는 이제까지 화엄경이
전체적으로 깨물고 있는 것이,
“일체법이 무분별이요. 일체법이 무소작이고,
일체법이 무소주고, 응무소주 이생기심.”
구마라집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하지만,
현장법사께서는 “도무소주 응생기심.”이라 하지요.
도무소주 = 모두 도자. 그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
이생기심이 아니고요. 응생기심 = 응당히 어디에도, 아무데도 전혀
머물지 말고 마땅히 그 마음을 일으켜라.
都生其心! 현장법사의 번역이 구마라집의 번역보다 더 좋지요.
금강경 “應無所主 而生其心”
다시 해봅시다. “都無所主 應生其心”
都無 = 전혀. “도무소주 응생기심” 비슷하지만, 구마라집 보다는 조금
버전업 된 같습니다. 어때요? 저만 그러나요? 느낌이 더 좋지요?
응무소주만 비싼 소주가 아닙니다. 도무소주도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진로소주는 소주도 아니지요.
1. 所謂於一切法에,
일체법에ㆍ일체법ㆍ일체법ㆍ일체법은 유위법 무위법이 다 포함이 되고,
선악ㆍ시비ㆍ희로애락ㆍ5온개공ㆍ12연기법 다~~. 다 들어갑니다.
어떤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고 하면, 색성향마촉법이 다 들어가는데요.
화엄경이 전체가 깨물고 있는 것이 뭡니까?
승혜보살장에 나오는,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요지일체법자성무소유)”
야마천궁게찬품 각림보살장에 나오는,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응관법계성일체유심조)”
똑 같습니다. ←이것이 여기 전체에 되어있습니다.
온갖 법에 분별이 없는 변재와,
“분별”이라는 말은 지혜롭게 쓸 때도 있고, 망상분별로 쓸 때도 있고요.
여기는 망상이라는 뜻이 있지요.
“전도망상ㆍ몽상.” 또
2. 於一切法에
無所作辯才와, 짓는 바가 없는 변재와,
소꿉장난 하는 아이들이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익을 보려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3. 於一切法에
無所着辯才와, 집착이 없는 변재와,
4. 於一切法에 了達空辯才와,
일체법이 모두 공한 줄을 아는 것!
색즉시공 수상행식이 역부여시인줄, 5온개공을 아는 변제와,
5. 於一切法에 無疑暗辯才와, 온갖 법에 무의암.
어두운 의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명ㆍ번뇌덩어리 자체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의심이 있으면, 의심할 疑자 앞에 돌 石(석)자를 붙이면 장애가
돼서 “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 ‘돌이 있나? 없나?’ 조심스럽잖아요. 그렇지요?
그것이 “礙(애)”입니다.
밥 먹을 때 돌이 한 서 너 개만 한 숟갈에 올라가 놓으면 참 골러내기가
곤란하잖아요. 그것이 장애된다는 礙입니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 해석하시기를 이렇게 해놨지요.
礙 ←이 장애를 해석하시면서, 현려.
눈 앞에서 장애가 있는 것을 “障(장)이라고 한다.
所知障ㆍ煩惱障(소지장번뇌장)이라 한다.”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장애, 은밀하게 장애가 있는 것을 “煩惱礙ㆍ智礙라고 한다.”
智礙와 煩惱礙. 하나는 所知障과 煩惱障.
所知障과 煩惱障. ←여기는 왜? 障자를 썼고,
智礙와 煩惱礙. ←여기는 왜? 礙자를 썼느냐?
礙는 눈감고 가만히 장님 점자 짚듯이 더듬어 보는 것 있잖아요.
그것을 礙라고 한다면,
눈앞에 있는데 앞이 캄캄해 막혀서 못 건너는 장애가 있는 것은,
障자다 이 말입니다. 앞이 탁 가로막혀 버리는 것.
“觸事面墻(촉사면장)이라. 일이 딱 들이쳤을 때,
눈앞에 담벼락이 막힌 것처럼 되는 것을 障이라고, 원효스님께서
그것은 뜻을 밝혀서 얘기하는 것이고, 하나는 뜻을 돌려서 얘기한 것
이다. 이렇게 소지장과 번뇌장과, 지혜와 번뇌는 같은 것인데 이렇게
해석한다.” 하시면서 기신론 별기에서 자세하게 써놓으시고 이 장애
에서 또 따로 한 번 더 써놓으셨지요.
원효스님의 소지장과 번뇌장을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해석하는 번뇌장ㆍ
소지장하고 다르고, 기신론에서만 하는 해석을 가지고 하지요.
그것을 지욱스님께서는 실차난타 번역을 하시면서 열망소에서 조금
착각을 하셨지요.
그래서 강백스님하고 각성스님께,
“어떴습니까?” 여쭤 보니까
“그것 원효스님이 제대로 본 거예요. 지욱스님이 그렇게 보면 안 되는
데 그렇게 봐버렸더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비슷하지요?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영상 꼭 보시길...)
그런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지요.
여기는 공부 많이 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於一切法에 어두움에 의심이 없는 辯才.
환~~ 하다는 것이지요.
6. 於一切法에 佛加被辯才와,
일체법에 대해서 부처님이 가피하는 변재와,
7. 於一切法에 自覺悟辯才와,
일체법에 대해서 스스로 깨닫는 변재와,
스스로 깨닫는 “自覺悟”도 범행품 말미에 같이 물려있는 게송이지요?
“知一切法. 일체법을 알아라.”
일체법을 어떻게요?
“卽心自性이다. 마음이 자성으로 되어있는데,
成就慧身하면 不由他悟라.”
성취혜신에, 내가 비로자나 부처님이 되는데 있어서, 남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대혜종고스님은 서장에서,
“장사점비에 불비타력이라.
장군이 팔을 드는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이랬
지요.
8. 於一切法에, 온갖 법에서,
文句差別善巧辯才(문구차별선교변재)와,
이것은 여러분께서 글귀가 차별하고 교묘한 변재가 안 되실 것 같아서
제가 여러 주를 좀 달았습니다. 한번 보세요.
도표 p2(162강-1-b에 在) 동진주에 보면,
도표→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를 참고해 보시라고,
①번부터 ⑥번까지 친절하게 참고 표시까지 해놨습니다. 그렇지요?
여덟 번째 해놓고 유식에는,
도표→ 自性唯識(자성유식)이 있고,
相應唯識(상응유식), 所變唯識(소변유식)이라든지
分位唯識(분위유식)이 있습니다.
分位唯識은 우리 흔히 “불상응법”이라고 해서 방향이라든지,
시간이라든지, 모양이라든지 이런 것을 가리키는 분류법인데요.
거기서 名身(명신)ㆍ句身(구신)ㆍ文身(문신). 이런 것의 신의 개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자꾸 “이것이 컵이다ㆍ
잔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증어해서 말을 붙여서 이름이 된 것
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도표→ “增語로 爲性(증어위성)한다.”
해놨습니다. 그 다음에 句身은, 文句 구구절절이 하는 것은 뭡니까?
말을 보태서, 그것도 구절ㆍ구절ㆍ구구절절이 말을 자꾸 보태는 것을,
句를 보태서, 한마디ㆍ한마디 계속 붙이는 것이 구가 되고 절이 되고 그
렇잖아요?
그런데 그것의 전체가 文章(문장)이 되면,
도표→ “名句의 所依로 顯義(현의)라.”
명구를 의지해서, 이름과 그 구절을 의지해서, 뜻을 밝힌다. 그러니까
이것이 글자가 한 글자ㆍ한 글자,
語자ㆍ一자ㆍ法자ㆍ文자. ←이렇게 되어 있는 것도 누가 만들었지만,
한 자ㆍ한 자 만들었는데요.
어느 생각 속에서 공통분모로 나와서 글자로 자리하고 있으면서 글이
가지고 있는 것은 뭐냐?
뜻을 알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글만 읽기 위해서 있고 번역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뜻으로 해서, 그 뜻을 정확하게 잘 이해한
다는 뜻으로 “문구ㆍ차별ㆍ선교라.” 이렇게 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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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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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의상조가 아니라 "의상교" 일 듯 하다고요? 橋라는 말씀이죠?
범어사를 한 번도 못가봤으니 캄캄이지만,
옳다고 여깁니다.고맙습니다. (교를 조로 들리다니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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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을 정확하게 잘 이해한다는 뜻으로
문구 차별 선교라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